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7년 8월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2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받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여권이 검찰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현직 법무부 장관도 여권의 문제 제기에 일부 공감하고 나서 실제 재심청구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故)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 내용을 언급하며 "이 모든 정황은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수사,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가리킨다. 한 전 총리는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지금도 고통받는데, 넘어가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 뇌물 혐의를 씌워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며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하고 그것이 검찰과 사법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재심청구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씨의 비망록에는 "뇌물을 줬다고 한 진술은 검찰의 회유에 따른 거짓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주민 최고위원 역시 "2018년 공개된 사법농단 문건에도 한명숙 총리 사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며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여당과 청와대를 설득해야 하는데 키가 될수 있는 사건이 한명숙 사건이라는게 핵심 내용이다. 대(對) 국회전략 문건에선 한명숙 총리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면서 대법원 무죄로 파기환송되면 사실상 어려워질거라 기록돼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당 원내대표와 법률가 출신 최고위원이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최고위원회에서 공식 언급한 만큼,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 재심청구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후보 경선 비용 명목으로 당시 한신건영 대표였던 한씨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2010년 재판에 넘겨졌다.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전세금으로 사용한 수표 1억원이 한신건영측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 전 총리는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만기 출소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열린 법사위에서는 한 전 총리 관련 검찰의 강압 수사 의혹을 놓고 여야 공방이 이어졌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당시 관련 증언이 조작됐다는 당사자의 비망록이 언론에 공개됐다. 수사 관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의원도 "2018년 공개된 사법농단 관련 문건에 보면 과거 대법원이 한 전 총리 사건을 전부 무죄로 하면 정부를 상대로 상고법원을 설득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래통합당 정점식 의원은 "이미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 증언 당사자의 비망록은 증거로 제출돼 판단을 거쳤다"면서 "한 전 총리가 주장하지도 않는 일부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진상조사에 나서야한다는 얘기는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고 사법불신을 높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장관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이미 확정판결이 난 것"이라면서도 "증인이 남긴 방대한 비망록을 보면 수사기관이 고도로 기획해 수십 차례 수감 중인 증인을 불러 협박, 회유한 내용이 담겼다. 한 번 과거사를 정리했다고 해도 (검찰이) 다시 그런 일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다. 끊임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듯 반복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고 비망록도 법원에 현출돼 재판부 판단을 거친 만큼 재심청구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대신 검찰의 강압수사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향후 검찰 개혁의 명분으로 활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