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밤 (미국 동부 시각 2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데 한국의 의료장비를 지원해줄 수 있겠습니까?'(트럼프 대통령)
'국내 여유분이 있으면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다만 미 FDA의 승인절차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오늘 중 승인될 수 있도록 즉각 조치하겠습니다.'(트럼프 대통령)하지만 10여일이 지난 2일 밤까지도 한국산 의료장비에 대한 미 FDA의 공식적인 승인은 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요구한 한국산 의료장비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키트다.
이날 현재까지 미 FDA가 공식적으로 긴급승인한 진단키트 등은 모두 20여건이지만 한국 제품은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3개 회사 진단키트에 대해 사전승인(pre-EUA)을 내주었다'며 '하지만 해당 업체에게는 통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답답한 상황이다. 미 FDA로부터 승인과 관련된 통보는 어떤 것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FDA에 긴급사용승인(EUA)을 신청한 한 업체 관계자는 "심사중이라는 연락만 받고 있다"며 "결론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결과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에 대해 그는 "양국 대통령이 '빨리 해줘라'해서 하는 것이 이 정도인 것 같다"며 "원래 FDA 승인을 받으려면 몇 년씩 걸린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도 사태 초기에는 급하니까 10여개 업체에게 긴급승인을 잇따라 내주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승인) 속도를 조절하는 듯하다"며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중국의 'BGI'가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는데, 이 회사는 승인 신청을 애초부터 빨리 했다"고 밝힌 뒤 "우리는 국내 대응을 하느라 승인신청을 늦게 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승인 신청을 한 또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아직 FDA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민감한 부분이라서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말만 전해 듣고 있다"고 말했다.
◇승인 받은 것도, 받지 않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 美 수출에는 일단 지장 없어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들고 있는 미국의 한 의료진.(사진=연합뉴스)
외교부의 설명과 업체의 설명을 들으면 한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가 미 FDA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것인지, 받지 않은 것인지 애매하다.
코로나19 진단키트와 관련해 FDA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 하나는 미국내 임상연구소가 자체 개발하거나 제3자로부터 제공받은 원료로 진단키트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영리 기업이 제작 판매하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사용하기 전에 진단키트의 '적절성'(validation)을 자체 평가해 FDA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면 FDA는 이 내용에 문제가 있는지를 '예비 검토'한다. 임상연구소나 업체가 진단키트를 적절하다고 자평하면 시범사용에 들어갈 수 있다. FDA는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연구소나 업체에 시정을 요구하고, 시정되지 않으면 시범사용을 중단시킨다.
문제 없이 상당 기간 시범사용한 뒤에는 FDA에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FDA는 '상당 기간'을 15일 정도로 보고 있다. 여기까지가 긴급사용승인(EUA)의 사전 단계, 즉 pre-EUA 과정이다.
외교부가 말한 사전 승인 단계가 이 단계를 말한다면 아직은 완전한 승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pre-EUA 과정을 거치고도 EUA가 거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FDA는 "긴급사용승인을 내주지 못할 상황이면 FDA는 해당 연구소나 업체에 이를 통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범사용 용도라면, 그리고 적절성 평가에 문제가 없다면 EUA를 받지 않았어도 한국산 진단키트의 미국 수출은 가능하다. FDA 승인을 신청한 한 국내 업체 역시 "본격 사용하려는 용도가 아니라 테스트 용도로 수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업체 역시 "'리서치유즈온리' 용도로 진단키트를 요청하는 미국 병원이 많다"며 "나라가 크니 이 물량도 엄청난게 현재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FDA의 EUA를 아예 받을 필요가 없는 진단키트도 있다. 특정 주(州) 안에서만 사용되는 진단키트는 주 정부 책임 하에 사용할 수 있다. 유전자 진단방식이 아닌 혈청을 이용하는 진단키트 역시 FDA의 EUA를 받지 않아도 된다.
FDA로부터 EUA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한국산 분자진단키트는 pre-EUA 단계를 거치고 있거나 미국 특정 주에서만 사용되는 사례로 추정된다.
◇FDA, 정식 승인하고도 뒤늦게 공개하기도
(사진=연합뉴스)
FDA가 긴급사용승인을 내주고도 이를 뒤늦게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계 미국 기업 '아벨리노랩'이 대표적이다.
이진 아벨리노랩 회장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2월말 FDA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통보받았다"며 "하지만 FDA가 이를 공개한 것은 지난 3월 25일"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우리가 개발한 코로나19 분자진단법을 3월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FDA가 공식승인을 뒤늦게 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업체는 FDA로부터 아직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만큼 아벨리노랩 같은 '선 승인 후 공개' 사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진단키트가 지난달 중순부터 미국내 임상 연구소 등에서 시범사용됐다면 이번주부터 FDA는 EUA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심사)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긴급사용승인 신청이라서 길게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짧게는 일주일만에도 승인이 나온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FDA는 EUA의 심사기간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