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아동‧청소년 보호와 성폭력 예방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이른바 'n번방 사태'를 계기로 피해자 특별지원단을 구성하기로 했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해 당장 시급한 '영상 삭제' 담당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피해자 심리지원 방안 등 다른 대책들도 기존 정책의 재탕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악랄한 수법으로 성 착취를 당한 미성년 피해자들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붙고 있다.
여가부는 n번방 사건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종합적인 지원을 위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특별지원단'을 구성해 운영한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여가부 산하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는 해당 지원단은 신속한 피해 영상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및 개인정보 변경 시 일대일 동행 지원, 무료 법률 지원 등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원단의 인력 규모를 살펴보면, 여성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당장 필요한 '성착취 영상 삭제'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6일 CBS 노컷뉴스 취재 결과 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수는 17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 비해 불과 1명이 증원된 숫자다.
반면 이 직원들이 담당해야 할 업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가부가 발표한 '2019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 피해영상 삭제 지원 건수는 2018년 월평균 3610건에서 이듬해 8213건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작년 기준 삭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1명당 하루 평균 20건 이상을 처리한 셈이다.
올해는 n번방 사건까지 부각되면서 업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 발표된 특별대책에도 인력 충원 내용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가부가 주도적으로 피해 영상을 찾아나서기 보다는, 신고와 수사기관 요청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성년자 피해 영상 삭제 과정에서 '보호자 동의' 조건을 없애 업무 신속성을 높였다는 게 여가부의 설명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현재 피해 음란물 삭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며 "기술 발전만큼 범죄 급증함에 따라 AI 시스템 등을 도입해 실시간으로 피해 음란물 모니터링 해서 즉각적으로 삭제하는 체계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여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피해 영상 삭제 업무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인력 충원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가 삭제 요청을 받은 영상을 직접 지울 수 없다는 점도 지원의 한계점으로 꼽힌다. 현재는 직원이 해당 영상이 게시된 사이트 사업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 요청에 강제력은 없다.
만약 요청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지워지지 않는 경우, 여가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를 통해 강제조치를 할 수 있다. 방심위의 관련 업무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 곳 역시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방심위 '디지털성범죄 심의 및 시정요구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심의를 거쳐 영상 삭제나 접속 차단을 요청한 건수는 지난 2015년 3636건 지난해 2만5900건으로 7배 가량 급증했다. 방심위 내 삭제 관련 부서는 이에 맞춰 인원을 늘리기는 했지만, 현재 23명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가부는 이번 특별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병원과 연계한 피해자 심리평가‧치료, 성폭력상담소를 통한 피해자 상담 및 수사 동행 지원 등도 실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미 기존에 운영하던 프로그램으로, 전과 달라진 대목을 찾기 힘들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가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지원단의 업무가 기존 업무와 큰 틀에서는 다를 게 없지만, 맞춤형 지원을 위해 업무 세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번 n번방 사태의 경우 피해자들의 심리를 악랄하게 파고든 전례 없는 범죄인 데다가 성착취를 당한 다수가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특단의 심리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n번방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경찰은 최근까지 파악된 성착취 피해자 103명 가운데 미성년자가 26명으로 가장 많다고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피해 당사자에게도 충격이지만, 그들의 부모에게도 일대일 전문의 심리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본다"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