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는 집값 전쟁 중이다. 부동산중개업소를 향한 선전포고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문자폭탄과 전화폭탄이 쏟아진다. "내 집값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SNS를 이용한 담합은 한층 신속하고 공고해졌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국토부 장관은 작심하고 집값 담합에 대한 엄단을 지시했다. 과연 정부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집값 담합 현장을 고발하고,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따져봤다.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 |
① "악감정 있어요?" vs "팔리지도 않는데…" (계속) |
(사진=자료 사진)
"6억원대 매물을 올리면 난리가 나요. 악감정 있냐고. 본인 물건도 아닌데, 광고를 볼 때마다 기분이 너무 나쁘다는 거예요. 숨겨 놓고 혼자 팔면 안 되냐고. 거의 협박조로 올리지 말라는 거죠."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한 신축아파트단지에서 중개업을 하는 A씨는 지난달 6억 중반대 매물을 올렸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수십 통의 문자와 전화로 업무는 마비됐다. 매수 문의가 아니라 아파트 입주민들의 항의 전화였다. 광고를 내리지 않자 입주민들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부동산 허위매물 신고센터에 그 물건을 허위 매물로 신고했다.
A씨는 "허위매물 아니라고 해도, 입주민들이 '우리 아파트는 7억 이하는 없다' 이렇게 올려버린다"며 "거래도 안 될 금액에 올려놓으면 실매수자들이 접근을 못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주자들끼리 단톡방에서 6억대에 올리는 부동산에는 물건을 주지 말자고 담합을 한다"며 "(입주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부동산들은 어쩔 수 없이 6억대 매물을 싹 다 내렸다"고 토로했다.
4억원 초반대로 분양됐던 이 아파트(84㎡ 기준)는 지난달까지 6억원대로 거래가 됐지만, 현재는 모든 호가가 7억원을 넘어섰고 8억5천만원까지도 올라와 있는 상태다.
입주민들이 인터넷에 호가를 높여 내놓거나, 부동산중개업자에게는 고가 시세 게재를 압박하는 등 집값 담합이 극성이다. (사진=부동산중개업자 제공)
◇ 두 달만에 3억 호가 급등…집값 담합 '극성'
최근 들어 수도권의 신축 아파트나 그 주변 아파트 혹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을 추진하고 있는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집값 담합'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집값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입주민들이 호가를 높여 내놓거나, 부동산중개업자에게는 고가 시세 게재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보다 싼값으로 매물을 올린 중개업소를 '허위 매물'로 허위 신고해 못 살게 군다.
7일 KISO 부동산 허위매물 신고센터에 따르면 지난 12월 한 달 동안 허위매물 신고 건수는 1만7천500여건으로 월 평균 8천여건에 비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대신 이 기간 실제 허위매물로 확인된 신고의 경우 월 평균치인 58%보다 감소한 54%로 나타나 '거짓' 신고는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곽기욱 KISO 연구원은 "신고 건수에 비해 실제로 확인된 허위매물 비율이 감소한 것은 입주자 카페 등에서 집값을 인위적으로 올리려고 호가를 짜고, 중개업소가 내놓은 낮은 가격의 매물을 허위 매물이라고 신고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용인 수지 성복역 인근 신축 아파트인 롯데캐슬 골드타운은 현재 네이버 부동산 매물상 호가는 전용면적 84㎡ 기준 12억~13억원까지 형성돼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10월에는 6억4천만~8억9,290만원선에 9건이 거래됐다. 2개월 여 만에 호가를 3억원 이상 올린 셈이다.
성복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실거래가하고 호가가 차이가 나도 1천만~2천만원 정도지 이렇게 몇 억씩 차이가 나질 않는다"며 "호가를 올리려고, 팔 생각도 없으면서 물건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용인 수지에 위치한 현대홈타운과 현대아이파크, 금호베스트빌 3개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통합 입주민 카페 오픈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수막에는 집값 담합을 부추기는 듯 한 문구가 담겼다. (사진=윤철원기자)
◇ "우리 아파트가 뒤질 게 없다"…'덩달아' 집값 담합신축 아파트인 롯데캐슬의 호가가 고공행진하자 인근 아파트 단지들도 가격을 올리기 위한 담합 행위들이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롯데캐슬 맞은편에 위치한 현대홈타운과 현대아이파크, 금호베스트빌 3개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가을쯤 통합 입주민 카페 오픈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수막에는 '소중한 자산! 부동산에 내맡기지 말고 스스로 알아보고 지키는 서원마을 입주민이 됩시다'라는 집값 담합을 부추기는 듯 한 문구가 적혔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달 전만 해도 4억원 후반이었는데, 지금은 비싼 게 (호가가) 6억원까지 나와 있다"며 "한 달만에 1억 정도가 오른 건데, (롯데캐슬에 비해) '우리가 뒤질 게 없는데, 너무 싸다. 저평가 돼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급등한 화성 동탄2 신도시 역세권 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동탄1 신도시 일대 아파트 단지들에서도 '오늘의 호가는 내일의 실거래가' 등의 집값 담합이 의심되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설치됐다.
이 일대 한 중개소 관계자는 "이들 단지의 매매가(84㎡ 기준)는 5억원 안팎인데, 불과 4㎞ 떨어진 동탄2 역세권 단지 동일 평형 시세는 8억원 중반대에 형성돼 있다"며 "역세권 아파트의 실거래가를 따라잡기 위한 담합"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광풍에 가까운 집값 담합이 횡행하는 데는 최근의 부동산 환경이 담합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부동산 114 김은진 팀장은 "집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매도 우위의 시장 구조가 굳어지고 있어 담합 행위가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보통 신규 입주 단지에서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기가 쉬워지면서 기존 아파트 단지들도 그런 움직임(담합)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