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가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 '성인PC방' 외부 모습.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는 100m 범위 안에 5개 업소가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사진=서민선 기자)
서울 관악구 '성인PC방'에서 종업원이 손님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불법 도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의 취재 결과 도심 한복판에 차려진 성인PC방에서 불법 도박이 버젓이 판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5만원 잃는데 30분"…성업하는 '불법 도박장' 성인PC방지난 7일 오후 취재진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골목을 둘러본 결과 100m 면적 안에 성인PC방 5곳이 몰려 있었다. 상호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포커·바둑이·맞고·섯다' 게임을 제공한다며 간판에 고스톱과 카드 그림을 붙여 놨다. '영상물 심의를 통과한 게임'이라고 광고하는 업소도 있었다.
한 업소에서 나온 이용자 A씨를 붙잡고 인터뷰 한 결과, 성인PC방 안에서는 현금을 게임머니로 바꿔주거나 게임머니를 다시 현금으로 바꿔주는 등의 불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었다. 현행법상 게임머니로 도박 게임을 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사고 파는 것은 불법이다.
A씨에 따르면, 성인PC방 내부는 컴퓨터 8대가 양쪽 벽에 나란히 4대씩 붙어 있고 직원이 가운데서 모든 컴퓨터 모니터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그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사장이 계속 지켜볼 수 있다. 내 게임의 결과를 놓고 말을 걸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금을 내면 게임머니가 충전된 아이디를 받는다. A씨는 "5만원을 주니 종업원이 자리로 와서 게임머니 '60000백만알(6만원)'이 충전돼 있는 아이디를 특정 게임 사이트에 로그인 시켜줬다"고 말했다. 사이트에 접속하니 판돈별로 수십개의 게임방이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어림 잡아 수백명 규모"라고 A씨는 전했다.
A씨가 5만원을 잃는데까지는 30분이 채 안걸렸다. 주로 판돈이 100~300원인 곳에서 게임을 했는데도, 한 판에 적게는 수천원에서 많게는 수만원이 오간다고 한다. 그는 "한 판당 1~2분 정도 걸려 빠르게 진행된다. 매번 이긴 사람이 가져가는 돈의 30% 정도를 사이트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간다"고 말했다.
◇'게임머니→현금' 불법이지만…"환전하는 방법 다양"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누구든지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 주는 것은 불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성인PC방에서는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A씨가 다녀 간 업소의 종업원은 취재진에게 "우리는 환전을 직접 해주지는 않고, 다른 손님이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사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다른 손님을 거칠 뿐, 사실상 게임머니를 그 자리에서 현금화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다른 성인PC방에서 수년간 종업원으로 일했던 B씨는 취재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환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현금으로 그 자리에서 주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곳은 환전소를 따로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현금으로 바꿔가도록 유도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을 따 간 사람에게서 수수료를 떼는 방식으로 사이트가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PC방 업주 입장에서는 손님이 따든 잃든 크게 상관이 없다"며 "PC방 업주는 사이트에 일정한 가맹비와 수수료를 내고 게임머니를 싼 값에 지속적으로 지급받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성인PC방 손님 C씨 역시 "현금으로 환전이 되지 않으면 솔직히 누가 거기에서 게임을 하나"라면서 "게임머니만으로 게임을 할거면 일반 게임사이트에서 하면 된다. 굳이 성인PC방을 찾는 이유는 진짜 돈을 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단속을 나가지만 불법 현장을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단속을 하려면 환전하는 순간을 목격하거나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현장에 도착하면 버튼을 눌러 다른 게임이 돌아가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단속을 피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 도박 넘어 '살인'까지…"성인PC방은 우범지대, 온·오프라인 단속 병행해야"문제는 성인PC방이 실제 돈이 오가는 등 여러 불법 행위가 자행되는 공간이라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 전문가는 '우범지대'가 된 성인PC방에 대한 단속을 온라인 단속도 병행하는 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관악구 신림동의 한 성인PC방에서 손님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50대 종업원은 경찰 조사에서 "게임머니가 다 떨어졌으면 집에 가라고 했는데, 그냥 좀 더 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다툼이 시작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성인PC방에서 실제로 불법 도박 행위가 있었는지는 앞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겠지만, '게임머니'가 다툼의 원인이었던 만큼 불법 도박 행위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13년 5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성인PC방을 운영하던 20대가 한 단골손님이 '외상을 더 안 주면 불법영업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하자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전문가는 불법 도박이 이뤄지는 성인PC방에 대한 단속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여러가지 불법 행위가 용인되는 성인PC방 같은 경우 범죄가 당장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범지대라고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프라인 상에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 상에서의 불법 행위까지 제재하는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원천적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