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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이하늬 "행인 1이라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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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영화 '블랙머니' 김나리 역 이하늬 ①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블랙머니' 김나리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를 만났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영화 '블랙머니' 내용이 나옵니다.

'블랙머니'는 시나리오 때부터 "정말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부러진 화살'을 세 번이나 봤을 만큼 전작을 감명 깊게 본 이하늬는 정지영 감독을 "살아있는 전설"로 표현했다. 잘 알고 지냈으나 한 작품 출연은 처음인 조진웅은 오랫동안 연기를 해 보고 싶었던 동료였다. 배우가 '무게감 있는 시나리오'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이하늬에게, '블랙머니'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블랙머니' 김나리 역을 연기한 배우 이하늬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식사했냐는 가벼운 인사로 시작한 인터뷰에서, 그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만족했냐는 질문에 "송구하지만… 네"라며 웃었다.

어떤 것을 물으면, 이하늬는 쉬우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말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금융 범죄 영화라 어쩔 수 없이 과거와 현재 한국사회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는데, '노 코멘트' 한 것이 없었다. 본인의 발언이 어떻게 다가갈지 신중히 고려하면서도 가진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덕분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느낌, 맡은 역할에 대한 생각, 영화가 지닌 가치에 관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 보고 만족했나.

송구하지만… 네. (웃음) 실화고 무겁게 다가가면 어떡하지, 했는데 되게 재밌었다. 영화적인 재미도! '우리 영화 재밌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봤던 것 같다. (웃음)

▶ 시나리오 봤을 때부터 어떻게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잘 썼을까 했다고 말한 게 기억한다. 시나리오가 영화에 잘 담겼다고 보나.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실화이기도 하지만, 시나리오 받았을 때 정말 완성도가 워낙 높았었다. 자칫하면 실제 있었던 일을 다큐 형식으로 (해서) 밋밋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던 부분이, 배우들의 생명력과 호흡, 감독님의 연출력 때문에 확실히 생기가 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 사회 병폐를 고발하는 작품이라 조금 주저하게 되진 않았나.

그게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였던 것 같다. 정지영 감독, 조진웅 선배하고 너무 일해보고 싶었다. 배우 인생에서 정말 큰 영광이었고, 시나리오 봤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완벽해서. 이 메시지가 나를 통해 흘러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 행인 1이라도 하고 싶었을 거다. (웃음)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드라마 '열혈사제' 끝나자마자 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간 거로 안다. 피곤했을 것 같다.

일단 드라마가 끝나면 거의 몸과 영혼이 다… (웃음) 만신창이가 된다. ('열혈사제'는) 되게 너무 감사하게 넉넉하게 했던 작품이긴 하지만. (드라마) 포상 휴가 다녀와서 다음 날 바로 했다. 진짜 이 작품('블랙머니')은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제 분량을 뒤로 해 주셨다. 할 수 있어서 되게 행복했다.

▶ 평소 굉장히 지적인 이미지인데, 언론 시사회 때 정지영 감독이 의외로 김나리 역에 잘 맞을지 고민이 됐었다고 했는데.

(웃음) 감독님이 좋게 말해서 '지성이 있나'라고 하신 거지 '머리가 있나, 얘가' 이런 거 아니었을까. (폭소) 깜짝 놀랐다. (전에는) 그런 말씀을 전혀 안 하셔서. (웃음) 저를 보실 때 약간 면접 보는 것 같이, 뚫어져라 보신 적은 있다. 저는 그게 캐스팅 때문인지 몰랐고, 감독님이랑 대화하는데 되게 저를 유심히 보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이 최근작을 보셨는데 하필이면… (웃음) '열혈사제'나 '극한직업'에서의 결이 있는데, (제가) 김나리 캐릭터와 맞을까 하셨던 것 같다. (웃음) 지성이 있나? 지성은 사실 없어서… (웃음) 사석에서 저를 보셔서 정확히 없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그런 돌직구 아닌 돌직구를 하시는 정지영 감독님이 너무 좋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이런 영화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순수하고, 악의도 없으시고, 굉장히 편안하고 재미있는 분이다. 거장, 큰 어른 이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수다 떨면 되게 친구 같고, 지혜 있는 친구랑 얘기하는 느낌이다.

▶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실화로 했다. 영화 들어가기 전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알고 있었나.

너무 창피한데 몰랐다. 굉장히 큰 은행의 이름이 바뀌고 인수합병이 많이 돼서 기업이 어디에 매각됐구나 이렇게만 알고 있었지, 외국자본에 1/70 정도로 단순 매각 헐값 매각이 됐다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아마 제 세대… 아니 제가 무지했다. 무관심이라는 병이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가서 잘못인지 아닌지 얘기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 코를 베어 갔는데 누군지 모르고 아파하는 거랑 눈을 뜨고 코를 찾는 거랑은 다르니까.

▶ 시나리오 보고 김나리 캐릭터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었던 것! 이 여자 역시도 나름의 정의와 나름의 국익을 생각한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불법이면 용납이 안 되고 정의감이 있다. 악한 선택이라고 하는 기준도 되게 모호해지는 상황에 살고 있지 않나. 서로가 힘의 균형에 맞춰 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이젠 누군가를 찔러 죽이거나 직접적으로 가해하는 게 아니라 지식인들은 머리, 지능형(범죄)에 가깝게 가지 않나. 굉장히 지능적이었기에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었던 범죄라고 본다.

이하늬가 맡은 김나리는 언제나 당당한 애티튜드를 가지되 웬만해선 본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성적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다.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첫 장면을 영어 대사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좀 더 쓰였을 것 같다.

사실 영어 대사가 몇 개 안 됐었는데 엄청 신경이 쓰이더라. 영어가 제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 사람이 봐도 무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미국에서 유학을 오래 했고 엘리트들하고 소통하면서 자랐고, 그들과 공부하고 일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작은 영어 디테일이 중요했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이 여자의 지적 수준, 유학 길이, 일하는 포지션 등 아주 다양한 것들을 내포했기 때문에 몇 안 됐지만 영어 대사는 너무 핵이었다. BIS 비율 얘기하면서 '너 빚이나 갚아'라고 하는 대사는 김나리 성격 자체를 드러낼 수 있는 강하도 단단한 영어 대사여서, 한국어 이상으로 신경 많이 썼고 뉘앙스 살리려고 충분히 노력했던 것 같다.

▶ 국제통상 전문가로 나오다 보니 경제 용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했다.

사실 김나리는 전문가다. 양민혁(조진웅 분)은 'ISD(Investor-State Dispute, 투자자가 투자 대상 국가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했을 때 국제기관에 해당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제도)가 뭐라고?' 하고, 오히려 그렇게 해서 모르는 관객도 양민혁을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김나리는 경제 용어가 일상 용어처럼 나오는 사람이라 정확하게 알고 입에 붙이는 작업이 많이 필요했다. 현장에서도 계속 물었다. 시나리오 작가님이 매번 현장에 와 주셔서 '이건 어떻게 된 거냐?', '이 경제 용어는 어떤 거냐?' 하고 상세하게 여쭤볼 수 있었다.

▶ 혹시 롤 모델을 삼고 연기한 인물이 있나.

롤 모델을 찾으면 더 어려워질 거 같았다. 김나리가 인사이드는 굉장히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은 인상을 잘 안 쓰고 있지 않나. 김나리의 여유와 당당함을 봐라. '300명 중 하나인 국회의원 되라는 말씀이세요?' 이럴 정도다. 월가에서 전 세계 통상을 쥐락펴락하는 로펌 고문을 하려고 온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엔… 당당함이 우주를 뚫는다고 전 생각했다.

▶ 언론 시사회 당시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주지 않는 연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그 전 작품, 내 몸이 기억하는 게 '열혈사제', '극한직업'이다. 양의 기운으로 한껏 차올라서 그 호흡과 큰 에너지가 있는데, ('블랙머니'에서는) 그걸 확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해야 한다. 옷부터 멋을 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잘 차려입었지만 멋을 내지 않아야 했다. 한마디만 들어도 이 여자의 지적 수준을 알 수 있어야 했고, 나대면서 과시하려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되게 존재해야 했다'

김나리는 극중 대한은행을 스타펀드에 단순매각할 것인지 징벌적 매각을 할 것인지 선택하는 갈림길에 선다.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영화 속 인물이 대부분 흑백으로 나뉘었는데 나리는 회색 같았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제가 그런가? (웃음) 김나리의 선택이 촬영 시작하기 전부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인 거 같다. 그런 선택을 하는 김나리라면 어떨까, 하고 역추적했다. 김나리는 단순히… 제가 해석하기는 그렇다. 관객분들의 해석을 막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아버지 돈이 2천억 들어가 있는 거 아닌가. 로펌 만들 수 있는 2천억. 안위 챙기고 호의호식하겠다는 1차원적인 생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본다. 양민혁과 툭 터놓고 하는 대사 중에 김나리의 진심이 있었다고 본다. 한국 사람이 유학 가면 애국자가 아닌 사람도 애국자가 되는 부분이 많지 않나. 미국에서 엘리트들과 같이 유학하고 커 가면서도 한국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졌던 여자인 것 같다. 다른 자원이 있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역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국제통상 변호사로 있는데, 이 나라에는 아직도 변변한 국제 로펌 하나 없다는 게 김나리 입장에선 안타까웠을 것 같다. (본인도) 미국 월가에서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에 (국제 로펌이 생기는 게) 이 여자의 꿈이고, 국익에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김나리의 꿈이자 국익, 김나리의 정의가 아닐까.

그게 결과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 과정까지, 그녀가 하는 선택까지 동의할 수 있는지, 용서하고 그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느냐는 사실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김나리 선택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었던 걸 보면,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것도 김나리스러운 거 같다. 그래서 더 현실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선과 악이 있을 때, 선이 아주 하얗게 오는 게 아니다. 악도 그렇게 오지 않고 회색처럼 하얗게도 보인다. 그렇게 (선악이) 모호해지는 때가 와서, 오히려 김나리는 현실에 부합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김나리를 관객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되게 궁금했다. 그녀의 선택, 뱉은 대사에 어떤 단서가 있으니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추론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관객분들 몫이다. 제 지인들은 영화 보고 나서 (저를) 엄청 노려보더라. '믿었는데, 끝까지 믿었는데!' 하면서. (웃음) 마이크 설 때까지도 반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지인도 있었다.

▶ 진짜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본인은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똑같은 상황이라면, 아… 되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저도 사실은 그 연기를 하면서 중간에 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는 찰나의 순간에 굉장히 오만 가지 생각이 들더라. 근데 '과정은 좋지 않아도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돼'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너무 팽배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쩌면 개인을, 사회를 병들게 하는 되게 중요한 포인트이지 않았을까. 사회가 한 번 리부트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 스스로한테도 자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제가 서대문 형무소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예전에는 '내가 일제 시대 때 태어났으면 독립투사로 태극기 들고 나갔겠지?' 했다. 지금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나라를 위해서 하는 완전한 희생이니까. 그래서 진짜 숭고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유관순 열사가 10대였던 게 이해가 가기도 하고. 김나리도 아버지 문자를 받고 되게 (감정이) 왔을 거다. 양민혁도 검사 배지를 '아이고, 아버지!' 하면서 던지고. 개인의 카테고리에서 가장 큰 건 가족인 것 같다. 둘 다 아버지에게 영향받은 부분이 있으니.

▶ 양민혁의 선택에 관해선 어떻게 보았는지.

양민혁은 되게 사실 결의 캐릭터 같은데 오히려 되게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다고 봤다. 구해줬으면 하는 순간에 나타나는 슈퍼 히어로 같은! 내가 되게 억울해서 고발해 줬으면 하는 목소리가 필요할 때 검사인, 너무나 든든한 조진웅 배우가 딱. (웃음) 뭔가 통쾌함을 느끼는 장면이 될 수 있었던 건 조진웅 배우 덕이다. <계속>

배우 이하늬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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