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선수. (사진=방송 캡처)
2020 도쿄올림픽을 기념해 제작된 일본 NHK 방송사 대하드라마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손기정·남승룡 선수 묘사를 두고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NHK 일요 대하드라마 '이다텐 ~도쿄올림픽 이야기~'(이하 '이다텐')는 지난 15일 방송에서 '민족의 제전'이라는 부제로 1936년 개최된 베를린올림픽 이야기를 그렸다.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인 '올림피아 1부: 민족의 제전'은 아돌프 히틀러의 요청으로 제작돼 나치 선전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 다큐멘터리다. 당시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일본 선수로 출연한다.
드라마에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를 위해 운동화를 제작한 가게 식구들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일본 버선 모양의 이 운동화는 엄지 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이 나뉜 모양이었다. 실제로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올림픽 당시 이 같은 모양의 운동화를 착용했었다.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질주 끝에 '올림픽의 꽃' 마라톤 경기에서 각기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자 가게 식구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며 환호한다.
물론, 두 사람의 배경을 짚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한다.
내레이션이 "하지만 수상식에서 우승국 출신 선수의 국기가 걸리고 국가가 연주되는 것을 손 선수와 남 선수는 알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하자 한 남성 캐릭터가 "무슨 기분일까. 두 사람 다 조선인이니까"라고 복잡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에 운동화 가게 주인은 "난 기쁘다. 내가 만든 운동화를 신고 달려준 선수는 누구나 응원한다"고 답한 뒤, 금메달을 딴 듯 기쁨의 헹가래를 받는다.
해당 드라마는 일본 올림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 및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손기정 선수도 일본 최초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로 다룬 것이다. 실제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대회 참가 당시의 소속만이 인정돼, 현재도 손기정 선수의 공식적인 소속은 일본이다.
남승룡 선수. (사진=방송 캡처)
그러나 국내에서는 손기정 선수가 겪은 역사적 고통은 배제하고 일본 관점의 '감동의 드라마'로만 이를 재연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마라톤 대표로 뽑히기까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금메달과 동메달 수상의 영광을 누렸음에도 두 사람은 일장기가 게양되자 은메달을 딴 영국 선수와 달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들은 훗날 언론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 국적을 달고 마라톤에 나가야만 했던 식민지 조선 청년의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수상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해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는데 일장기 말소사건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듯 손기정 선수는 단순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식민지배를 당했던 조선의 역사적 상징성을 가졌던 인물이다.
결국 일본 최대 공영방송사인 NHK 역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이런 역사의 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애초에 일본이 역사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 피해를 미쳤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들은 조선의 경제개발을 도왔거나 근대화를 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며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조선 출신으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들이 어떤 민족정신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방송국이라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