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기다리는 모습. 전민 인턴기자지난 21일 오후, 인천에서 온 대학생 박서연(21)씨와 김한별(21)씨는 어렵게 시간을 내 서울 명동을 찾았다. 오는 29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문을 닫기 전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명동 씨네라이브러리 특유의 오래된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며 영화관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렸다. 명동 씨네라이브러리는 다른 일반적인 영화관과는 달리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영화와 관련된 각종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영화 전문 도서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영화 애호가를 뜻하는 이른바 '시네필(Cinephile)'들 사이에서 이른바 '명씨네'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평소 독립영화를 좋아해 달에 한 번씩 명씨네에 방문한다는 권혜인(26)씨는 "예술영화 상영 후 라이브러리 톡을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자주 갔다. 색다른 영화를 보고 그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좋았는데 이제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아쉽다"고 말했다.
영화관뿐 아니라 더 이상 명씨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곳 도서관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살펴보던 권수영(28)씨는 "이렇게 자료가 많은 곳은 드물다"며 "지난 3~4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았는데,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도서관에 비치된 영화 전문 잡지를 흥미롭게 살펴보던 캐서린 코넬(34)씨는 "일반인에게 이런 자료가 공개돼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며 "캐나다에서도 이런 공간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특별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영화관
21일 오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는 모습. 전민 인턴기자영화관 측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폐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CJ CGV 관계자는 "너무 안타깝지만 기업도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일부 지점을 정리하는 대신, 다른 지점에는 시설 투자와 환경 개선을 통해 극장 경험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1위 CGV조차 올해 들어 벌써 12개 점포를 정리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극장 전체 매출액은 4079억 원, 전체 관객 수는 4250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33.2%, 32.5% 감소한 수치다.
어려운 업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들은 각종 돌파구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CJ CGV는 ScreenX, 4DX, IMAX 같은 기술 특별관을 통해 집이나 OTT 콘텐츠를 경험할 때와는 다른 다양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CGV는 국내에서만 136개의 특별관을 운영 중이다. 특히 4DX와 ScreenX는 해외에도 각각 70개국, 48개국에 진출했다.
롯데시네마도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6월 오감으로 콘텐츠를 경험하는 공간 '라이브 시네마'를 홍대입구에 선보인 데에 이어, 지난 6월 마포구 합정에 체험형 전시 공간인 '랜덤스퀘어 갤러리'를 오픈했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극장에서의 경험을 다양화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며 "공간 가치를 극대화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나아가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은 지난 5월 영화 제작 감소, 흥행작 부진, 관객 수 감소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합병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이를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합병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외부 투자 유치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견된 결과"…새로운 극장 문화로의 전환 필요성
오는 29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영업을 종료한다는 문구. 전민 인턴기자일각에서는 최근 영화관의 어려움이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현식 영화평론가는 "코로나 이전부터 멀티플렉스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다"며 "코로나를 계기로 문화 향유 방식이 다양해졌고, 극장 요금 1만5천 원이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멀티플렉스 시스템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선보인 실험적 시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평론가는 "체험을 중시하는 세대는 OTT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굳이 극장에서 보지 않는다"며 "영화제처럼 시네마 토크나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화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