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승현(34)씨는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적잖이 부담스럽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논란이 불거진 뒤 부모님이 조 후보자 이야기만 나오면 말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맞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9일 "아빠는 조 후보자가 사퇴해야 한다고 하고, 엄마는 조 후보자가 억울하다는 입장"이라며 "부모님이 단순히 의견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감정싸움까지 벌여 밥이 넘어가지 않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석 연휴 내내 부모님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 조 후보자 이름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회사원 김소연(27)씨는 최근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반일 집회에 참석하면서 아버지와 갈등이 생겼다.
김씨는 "아빠가 요즘 온라인에서 보수 성향의 영상이나 글을 많이 찾아보더니 제가 잘못하는 거라고 비난한다"며 "제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는 걸 안 뒤 아빠가 일본 맥주 등 일본 제품을 일부러 더 사는 것 같아 갈등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는 "이번 추석에 친척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아빠와 이런 문제로 말다툼을 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청와대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뒤 조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 의혹 등 여러 논란이 제기됐고, 검찰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그에 앞서 7월부터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전국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반일 집회가 벌어졌다.
뜨거운 정치적 이슈가 연이어 불거지자 일부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 간 찬반 의견이 나뉘며 '안방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에 이같은 현안을 놓고 '밥상머리 설전'을 벌이다 가족·친지 간 의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면서 엄마랑 계속 부딪힌다", "아빠가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다고 해 말리느라 다퉜다", "조국 때문에 우리 집만 싸우나요? 뉴스 볼 때마다 가족끼리 싸우네요" 등 조 후보자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 문제로 가족 갈등이 벌어진다는 글이 올라온다.
기혼자들은 "친정 오빠가 일본 불매 얘기만 나오면 '그게 말이 되느냐'며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운다", "일본 회사와 협업하는 일을 한다고 시어머니에게 매국노, 친일파 소리를 들었다" 등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과 겪는 갈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글에는 "스트레스 받겠지만 정치 문제는 설득하려 해봤자 안 된다" "나도 그럴 때마다 화가 나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을 안 한다" 등 의견이 달렸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각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정치 얘기를 하면 논쟁이 벌어지고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쉽다"며 "굳이 명절에 분열을 야기하는 주제로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개인의 인권과 사적 영역이 중시되는 만큼 가족 관계에서도 윤리와 예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며 "정치는 이념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르다고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