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본 한국의 '마라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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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맛 천국' 한국, 마라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데...

(사진=자료사진)

 

지난 7월 14일자 경향신문 국제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중국 대륙 미각 통일하고 한국 상륙한 '마라'의 비결은" 이었다. 통상 필자와 같이 베이징(北京)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은 매일 새벽 한국 신문과 매체들을 꼬박꼬박 스크린 하는 것이 임무다.

타사 특파원들의 기사에서 자기가 몰랐던 팩트를 체크하기도 하고, 같은 주제라도 자신의 시각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기도 한다. 타사 특파원이 내가 모르게 '단독'으로 취재해 작성한 기사를 발견할 때는 가슴 한켠 아픔을 느끼고 한국 본사로부터 낙종에 대한 질책을 듣기도 한다.

사실 최근 중국과 관련된 이슈들을 보자면 미국과의 무역갈등부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등 비교적 무겁고 심각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마라'라니?

누가 쓴 기사인가 바이라인을 살펴보니 필자도 잘 아는 박은경 특파원의 기사였다. 글솜씨가 맛깔나기로 베이징 특파원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난 분이시다. 난데없는 등장에 처음에는 제목의 '마라'자가 그 '麻辣'를 뜻하는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 마라가 맞다.

내가 뭔가 놓친 것이 있는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봤다. 기사는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마라의 위력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찬찬히 읽다 보니 한국에서 '마라'열풍이 불고 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엥, 한국에서 마라 열풍이 불고 있다고?"

다른 기사들도 검색해봤다. 정말이었다. 그냥 호기심에 찾는 정도가 아니라 식품업계에서도 '마라'가 화두가 될 정도로 신제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니 '열풍'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듯 했다. '마라탕면', '마라볶음면', '도리토스 마라맛', '신당동 떡볶이 마라' 외에도 마라치킨, 마라맛이 구현된 라면, 스낵, 치킨 등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했다.

마라맛 열풍은 외국 문화에 익숙하고 거부감 적은 젊은 층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라 요리 정보를 공유하고 마라맛 매니아들에게 정통 마라맛집을 소개하는 '범마라연대'라는 오프라인 모임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 쯤에서 필자가 생전 처음 마라맛을 접하고 느꼈던 그 당혹스러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1999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여행이 진정한 '마라'를 접한 첫 경험이었다. 생애 최초로 경험한 마라맛은 참으로 표현하기 난해한 감각이었다.

달고 맵고 쓰고 짜고 시다는 오미(五味)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맛이 존재한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심지어는 이 감각을 맛이라고 표현해도 될는지 조차 애매했다. 통상 '맵다'는 감각이 맛이 아니라 통증의 영역이라고 한다는데, 그런 점에서 순식간에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화자오(花椒·초피나무 열매)의 '마(麻)'는 진정한 '매움'의 영역이 아닐까.

커다란 솥에 주먹만한 쇠기름 덩이를 녹인 시뻘건 육수가 펄펄 끓는 쓰촨 훠궈(火鍋)의 모습은 참으로 강렬했다. 국자로 바닥을 퍼보니 국자 한 가득 올라오는 화자오를 보고서는 무섭기까지 했다. "내가 과연 이 음식을 먹어도 괜찮은 걸까?" 펄펄 끓는 육수에 익힌 고기를 입안에 넣는 순간 느껴지는 강렬한 매운 맛은 상상 이상이었고, 곧이어 뒤따르는 얼얼한 '마(麻)'의 맛이란 충격 그 자체였다.

한두 번 젓가락질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계속 이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엔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매운 맛 마니아라면 누구나 주장하듯 매운맛은 특유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데 정도만 놓고 따지자면 마라는 그 어떤 매운맛보다 중독성이 강한 편이다.

한국어로 마땅한 단어조차 없는 '마라'의 세계에 한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나만 알던 보물을 여러 사람들이 드디어 인정해주는 느낌이랄까... 미지의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법 중 하나가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김치를 즐기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공감하듯 한국의 젊은이들이 마라를 즐기면서 중국의 정서를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인들이 시뻘건 훠궈를 나눠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광경은 문화의 교류가 서로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진리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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