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17년째 공공재산인 지하상가 점포의 전대와 양도·양수를 조례로 허용하면서 사유화와 높은 임대료 상승 등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임대 점포주들의 강력 반발로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도 정상화를 가로막는 분위기다. CBS 노컷뉴스는 인천 지하상가의 기형적 성장 과정과 문제점 등을 3차례에 걸쳐 들여다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사유화된 공공재산, 인천지하상가 ② 인천지하상가 '기형적 돈벌이' 인천시가 자초 ③ 인천지하상가 정상화 가로막는 시의회(끝) |
인천 주안역 지하상가
공공재산이지만 사실상 부동산 임대 사업장으로 변질된 인천 지하상가 문제는 인천시가 초래했다는 게 정치권과 상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점포간 양도·양수, 재임대(전대)를 조례로 허용한 것도,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이를 어렵게 만든 것도 모두 인천시였기 때문이다.
◇ 인천시, 2002년 지하상가 조례 제정으로 '공공재산 사유화' 길 열어 줘12일 인천시와 각 지하상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인천 내 지하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방공호였던 지하도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인천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로 생겼다.
인천 지하상가의 역사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천의 중심이었던 동인천역에서 중앙시장 방향으로 지하도가 만들어졌고 자연스럽게 상가도 함께 문을 열었다. 초기 지하도는 방공호 기능이 강해 환기시설은 물론 조명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상인들은 자부담으로 상가를 꾸렸다. 당시 지하상가 관리는 각 구청에서 맡아 지역마다 임대료와 운영방식이 제각각이었다. 지하상가 운영의 통일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인천시는 1990년대 말부터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인천시는 지하상가 운영의 일원화는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지하상가 개보수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사시 방공호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개보수를 미루거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IMF 외환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당장 돈이 없었다.
결국 임대인들이 개보수비용을 직접 내는 대신 그 비용만큼 사용기간을 연장해주고, 그들 사이의 점포 양도·양수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조례에 포함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 조례안에 따르면 점포는 사용기간인 1~5년마다 공개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1회에 한해 연장이 가능해 최대 10년까지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위탁 점포를 개·보수 할 경우 임대 기간을 최대 2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도 두고 있다.
점주들은 이 부분을 악용했다. 개보수 비용을 점주들이 부담하면서 점포에 대한 권리가 사실상 20년으로 늘었고, 개보수공사를 할 때마다 그 기간은 더 늘었다. 모든 점주들 점포 개·보수에 참여한 만큼 사실상 반영구적 권리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 부동산 임대 사업장으로 변질된 인천지하상가사실상 점포 매매와 재임대가 가능해진 상가는 점차 부동산 임대 사업장 형태를 띠게 됐다. 지하상가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거래가도 함께 상승했다.
현재 인천 지하상가 점포 1곳을 양도·양수할 때 거래 권리금은 평균 4억3763만원에 이른다. 연간 181건의 양도·양수가 이뤄져 459억 7514만원의 이익이 발생하고 있다. 인천시가 지하상가 전체에 부과하는 연간 임대료가 40억원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지하상가의 매매가는 그 10배를 넘는 셈이다.
재임대도 활발히 이뤄졌다. 현재 인천 지역 15개 지하상가 3579개 점포 가운데 74%에 해당하는 2653곳이 재임대 점포다. 이들 재임대 점포의 월세는 인천시가 점주에게 부과하는 임대료의 3~12배 수준이다.
상인이 아닌 은퇴 후 투자처를 찾던 이들이 몰려든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지하상가 점주들의 연령은 대체로 60대 이상의 노인층이 많다는 게 시의 분석이다. 인천의 한 지하상가 관계자 역시 "은퇴 후 노후를 위해 투자 목적으로 들어온 고령의 점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시가 지하상가 운영·관리 조례를 전면 개정 입장을 밝히자 점주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점포 양도·양수와 재임대가 불법이었다면 투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천의 한 지하상가 관계자는 "지금껏 시를 믿고 투자했는데 이제 와서 점주들이 불법을 저질렀으니 나가라고 하면 누가 시정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투자 원금도 회수하지 못한 점주들이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날려버린 조례 개정의 기회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천시그동안 인천시가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지하상가의 양도·양수와 재임대는 법으로 금지됐다. 상위 법을 위반한 조례는 법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2007년 10월 당시 행정자치부가 조례 개정을 요구하면서 이 문제가 처음 공론화됐다. 하지만 인천시와 인천시의회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미 조례를 통해 권리를 인정받은 점주들과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조례가 위법하다며 조례 개정을 권고했지만 시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지난해 감사원이 나서 조례 개정이 불발될 경우 관계자 징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전하자 이제야 다급히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인천시 역시 대체로 자신들의 결정으로 인해 지금의 사태가 야기됐다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다. 인천시 관계자는 "조례 제정 당시와 그 이후 시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사태를 방치하는 것 역시 상인을 비롯한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