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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망한 日, 제1국책사업은 '미군전용 성매매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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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이 단합해 주일미군 성매매 여성 대대적 모집
"전후 처리 위한 국가적 긴급 시설의 일환" 광고
미군 상대 성매매업자 및 여성들 'RAA'로 불려
전문가 "위안부 운영 경험, 패전후 공포심 역습"
그래놓고 한국을 매춘관광국으로 폄하하다니...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제2차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본 정부에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점령군으로 진주할 젊은 미군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성매매업자들과 손을 잡고 자국 여성들의 성매매를 적극 독려하기로 했다.

일본 근대사에 정통한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 존 다우어 명예교수에 따르면 일본 내무성은 무조건항복 선언 사흘 만인 1945년 8월 18일 점령군 전용 특수 위안시설을 세우라고 전국의 경찰에 지시했다.

같은 날 경찰은 도쿄·요코하마 지역 성매매업자들에게 5000만엔을 지원할 것이라며 비슷한 금액의 기부를 요구했다. 민관이 힘을 합쳐 점령군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A급 전범이자 당시 부총리였던 고노에 후미마로는 경찰 책임자를 만나 이 사안의 차질 없는 추진을 당부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일본의 국책은행은 9월 한 달에만 성매매업자들에게 3000만엔의 자금을 지원했다. 미군 상대 성매매업소의 시설·운영자금이었다.

예상보다 성매매 여성들의 참여가 저조하자 성매매업자들은 일반 여성들을 모집했다. "신일본 여성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전후 처리를 위한 국가적 긴급 시설의 일환으로 진주군 위안이라는 대사업에 참가할 신일본의 여성들의 솔선수범을 청한다"는 광고가 도쿄 거리에 등장했다.

8월 한 달에만 도쿄에서 1300여명의 여성이 모집에 응했다. 미군 상대 성매매업자와 여성들은 RAA(Recreation and Amusement association)라고 불리었다.

RAA는 8월 28일 도쿄 황궁 앞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명이 내려와 우리 직역으로서 전후 처리의 국가적 긴급시설의 일환인 주둔군 위안의 난업을 과하셨도다. 전후 사회 질서의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되고자 하노라"라고 밝혔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미군 상대 성매매에 나선다고 선언한 셈이다. 처음 도쿄에 설치됐던 RAA시설은 도쿄 전 지역으로, 이어 지방도시로 확산됐다. 성매매 비용은 15엔 또는 1달러 정도로 매우 저렴했기 때문에 미군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1월 점령군 당국은 일체의 공적인 성매매를 금지했다. 명목상의 금지 이유는 여성 인권 보호였으나 사실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성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은 창궐하는 성병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해 4월 항생제인 페니실린 제조 특허를 일본에 판매했다. 몰론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인 성매매는 여전했다.

일본 정부가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에 앞장 선 것은 전쟁 중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 다우어 교수에 따르면 "전쟁 중에 수많은 비일본인 여성들이 강제로 위안부가 돼 제국 군인의 노리개 역할을 했다는 것과 자국 군대가 해외에서 강간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점령군에 대한)공포심은 엄청난 것이었다" 미리, 알아서 미군들에게 봉사하자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같은 민관 합작 성매매 독려는 패전 직후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오사카 시장을 지낸 하시모토 도루는 2013년 5월 오키나와 미군 후텐마기지 사령관에게 "성욕을 합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곳은 일본에도 있으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런 곳을 활용하지 않으면 병사들의 성욕을 통제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좀 더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는 "군과 매춘을 한 덩어리다. 역사의 원리 같은 것이다"라고 하시모토를 거들었다.

이렇게 보면 여성의 몸을 앞세워 국체를 보존하고자 하는 일본 관료들의 생각은 역사적 전통인 듯 하다. 19세기 중반부터 일본의 숙원이었던 '탈아입구'가 자국 여성을 통해 실현되는 것 같다. 아시아 여성들은 성 노예로 삼고 미군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자국 여성들을 이용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1945년 성매매업자들은 '오키치'라는 여성을 빌어 자신들의 사업을 옹호했다. 오키치는 1856년 일본에 부임한 초대 미국 총영사 타운센드 해리스의 시첩으로 선발돼 2년 동안 시중을 들어 양첩(洋妾)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뒤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여성으로 격상됐다.

아베 신조 총리의 측근인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이 지난 1일 일본을 방문한 여야 정치인들에게 "과거 일본에서는 한국을 매춘관광으로 찾았다"며 한국을 매춘관광국으로 폄하했다고 한다. 한일관계를 논의하자며 찾아온 국회의원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뿐더러 전후 자국 여성들의 성매매를 기획·시행했던 나라의 관료로서 주제 넘는 발언이다. 이웃나라까지 건너가 성매수를 한 것도 공공연히 떠벌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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