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 - 아들 홍걸을 낳은 지 2주일 밖에 안지났지만 목포시내를 돌며 남편의 당선사례 감사인사를 함께했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도 꽃을 피운 고(故)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 간 '러브스토리'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DJ가 내란음모 혐의로 수감된 이후 사형선고를 받고,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날 때까지 이 여사가 옥바라지 생활을 하면서 보였던 헌신과 사랑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DJ가 수감된 1980년부터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 여사가 DJ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 발행한 책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여성신문사)에는 이 여사의 남다른 헌신과 사랑의 방식이 묻어난다.
이 여사는 DJ에 보내낸 편지에서 종종 성경구절이나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평소 신앙심이 깊었던 이 여사의 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1979- 긴급조치 9호의 해제로 가택연금이 해제됨.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이 여사는 1980년 11월 육군계업고등군법회의 재판부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 전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서 "오늘 당신이 받는 엄청난 고난을 바라보면서 십자가 상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시편 22편을 읽어보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시편 22편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옵니까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시편 22편은 이 여사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편 23편의 전 구절이다.
81년 1월 10일 편지에는 "당신의 건강을 빕니다"라는 소망과 함께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는 성경 갈라디아서(6장 9절) 내용 일부를 보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편지 곳곳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한다" 등 이 여사가 지치고 힘들수록 종교에 의지하며 지냈던 흔적이 가득하다.
한 가지 눈에 띠는 부분은 이 여사가 수백통에 달하는 모든 편지의 첫머리를 "존경하는 당신에게"라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언제 돌아올지, 심지어 살아 돌아올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이 여사는 DJ에 용기와 자존감을 주려했던 모습이다.
김 전 대통령이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기 직전 해인 1981년 12월 31일 이 여사는 DJ에 이런 편지를 남겼다.
"존경하는 당신에게.(중략)
불행했던 해가 간다는 것은 서운하지가 않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새로이 열리는 새해에 희망을 가져봅니다.(중략)
어둠의 해에서 넘어가기를 바라고 자정에 울리는 새해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 1년의 모든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유를 빌겠습니다"
이 여사와 인연이 있는 손숙 배우 겸 전 환경부 장관은 '내가 만난 이희호'라는 책에서 "그 양반(DJ) 감옥에 계실 때는 양말 한 켤레를 넣을 때도 꼭 다리미질을 해서 넣어 드렸어요. 그렇지 않아도 을씨년스러울 감옥 안에서 들어오는 차입물이라도 반듯하고 뽀송뽀송하라고" 이렇게 말했던 이 여사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남편을 품으로 돌아가는 이 여사의 발인은 14일 오전 6시 30분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이어 오전 7시 이 여사가 다녔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열리고, 동교동 사저를 방문한 뒤 오전 9시 30분부터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오전 10시 50분 김 전 대통령 묘역 옆에 안장되면서 이 여사의 장례 절차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