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두나우(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현장을 촬영한 모습. 사고 직후 급파된 헝가리 군함이 보인다./사진=김광일 기자
우리 국민 30여명이 탔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고가 난 지 나흘째(현지 시각)로 접어들었지만 각국이 공조 중인 구조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일 두나우(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앞 유람선 허블레아니 참몰 현장에는 사고 직후 급파된 헝가리 군함 등 구조를 돕는 선박 수 척이 배치됐지만, 이날 잠수부 투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우리나라 소방·해경·해군 소속 정부합동 신속대응팀 잠수부들과 헝가리 측 관계자가 함께 탄 고속단정 4척이 이따금 하류 쪽을 향해 '수상 수색'을 벌일 뿐이었다.
신속대응팀 관계자는 "이번에 잠수요원만 25명이 왔다"면서 "잠수요원은 원래 수색요원이 아니지만 잠수작전을 하러 왔는데 이틀 동안 못하고 있으니까 그 병력들로 수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구조,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울까?
5월 31일 강변에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현장을 촬영한 모습/사진=김광일 기자
사고현장 주변은 최근 물살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신속대응팀 측정 결과 시속 5~6km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헝가리 측에서 전날 발표한 시속 10~15km보다는 느려졌지만 잠수부를 당장 투입하기는 부적절한 것으로 양국은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사고 현장은 강 사이에 놓인 머리기트섬과 근접해 물길이 좁아지는 부분이고 특히 급류가 생기는 머르기트 다리 기둥과 접해 있어 평소에도 물살이 거센 곳으로 꼽힌다.
신속대응팀에서 현장지휘를 맡은 헝가리 대사관 국방무관 송순근 대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세월호 작전에 참가했던 분들에 의하면 그 작전보다도 여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며 "수심은 그보다 낮지만 다뉴브강은 시계가 제로라 들어가서 볼 수가 없고 맹골수도보다 여기가 (물살이)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날 투입됐던 헝가리 잠수부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을 맞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빠른 물살을 피하지 못했던 잠수부의 산소통 밸브가, 바지선 밑에 있는 고리에 걸려버린 것. 그 바람에 산소통에 있던 공기가 일부 빠져나갔지만 다행히 곧바로 투입된 동료의 도움을 받아 구조됐다고 한다.
여기에 최근 거세게 내린 폭우로 수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점도 구조에 장애가 되고 있다. 신속대응팀이 침몰 현장에서 휴대용 측정기로 재본 결과 수심은 최소 8.1m에서 최대 9.3m까지로 나타났다.
헝가리 수자원관리국에서 측정한 5.6m나 기존에 언론에 알려진 6m보다도 훨씬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송 대령은 "제가 여기서 3년 정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본 수심 중 제일 높다"며 "통상 3m 정도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수심은 다음 날 더 높아져 주변 강변도로까지 잠길 것으로 전망된다.
◇ 거센 물살에 방향 틀어진 침몰 유람선
체코 구조팀이 수중 음향표정장치 '소나'로 찍은 침몰 유람선 허블레아니의 음파 사진/사진=정부합동신속대응팀 제공
강바닥에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는 하루 동안 방향이 틀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신속대응팀은 인접국 체코와 노르웨이에서 지원한 수중 음향표정장치 '소나'를 이용해 찍은 음파 사진 판독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수면에서 강바닥 쪽을 향해 찍은 이 사진을 보면 허블레아니호의 뱃머리는 강 상류 쪽을 향하고 있으며 좌현이 바닥을 향한 채 기울어져 있다. 다만 배 안에 탑승객들이 남아있는지, 있다면 어느 부분에 있을지 등은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양국은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수중 드론(무인탐지기)을 투입하려 했지만 수심이 워낙 깊고 물살이 발라 투입에 실패했다. 다만 침몰 당시 승객 대부분은 부다페스트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갑판 위에, 선원들은 선실 안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우리 신속대응팀은 일단 모래를 채운 컨테이너를 침몰 유람선 주변에 배치해 물살을 차단하는 게 어떻겠냐는 방안을 헝가리 정부에 제시했다. 하지만 헝가리 측이 기술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 피해자 가족 "국경지역 챙겨달라"
5월 31일 정부합동 신속대응팀 현장지휘소와 선착장이 있는 머르기트섬에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머르기트 다리쪽을 찍은 모습/사진=김광일 기자
침몰현장 구조활동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1차적으로 헝가리 정부에 있다. 탑승객 대다수가 우리 국민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열을 올리고 있지만, 헝가리 당국이 승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신속대응팀은 선체 몇몇 기준점에 우리 잠수요원을 투입해 고리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선체를 인양하겠다는 방안을 헝가리 측에 통보하고 관련 장비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아직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자나 유실물이 새는 걸 막기 위한 유실망을 설치해달라고도 헝가리 측에 요청했지만 역시 물속에 잠수부가 투입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등의 이유로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응팀은 "헝가리의 법률상 외교부의 승인이 없으면 우리가 잠수할 수 없다"며 "합의 없이는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고 직후 경황이 없어 인력과 통관 등을 고려해 작은 장비들을 챙겨왔다"며 "최초에 장비를 많이 가지고 직항 수송기나 전세기를 통해 다 가지고 왔으면 쉽게 투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피해자 가족들은 신속대응팀을 만나 선박 내에 갇힌 인원을 조속히 파악해줄 것과 강 하류나 세르비아 수문 등 국경지역이 수색에서 빠지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수상 수색의 범위를 확대하고, 잠수부 투입과 관련해서는 현지 시각 3일 오전 7시(우리 시각 오후 2시)에 헝가리 측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