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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염정아, 수많은 '왜?'란 질문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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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미성년' 영주 역 염정아 ①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염정아를 만났다. (사진=쇼박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미성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미성년'(감독 김윤석)을 관통하는 사건은 단순하다.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나와 조금도 새롭지 않은 '불륜'이 주제다. 아무런 문제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 대원(김윤석 분)과 일찍 얻은 딸 윤아(박세진 분)를 홀로 키우는 미희(김소진 분)가 바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원의 딸 주리(김혜준 분)는 엄마 영주(염정아 분)만은 이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영주도 모두 알아버린다.

소재는 진부하지만 이야기는 빤하지 않다. '이렇게 흘러가겠지?' 싶은 예상을 교묘하게 비껴가기를 반복한다. 그 영리함 덕분에 실소와 폭소가 번갈아 나온다. 염정아가 단 하루 만에 '미성년' 출연을 결정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너무 신선"하고, "감히 상상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굳이 꾸밈말이 필요하지 않은 이 '재미있는 블랙코미디'에, 바람난 남편에게도 그 불륜 상대에게도 절대 자기 분노를 쏟아내지 않는 영주란 캐릭터에 관해, 자꾸만 '왜 그랬을까?'라고 질문했다. 혼자만 듣기 아까웠던, 염정아의 답을 나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얼마 전 '미성년' 언론 시사회가 있었다. 영화 어떻게 보았나.

저희는 시사회 하기 전에 기술 시사했고, 그전에 한 번 봤다. 그때 배급사 쪽에서 TV 모니터로 본 거라 보정이 전혀 안 돼 있었는데도 그렇게 보고도 좋더라. 원래 어떤 이야기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감독님이 연출을 훨씬 더 잘해내셨다는 것이 되게 감동적이었다. 영화 끝났는데 그냥 멍-하니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앉아있고 싶은데 가만히 두지 않더라. 안 건드렸으면 그대로 있었을 거다. (웃음)

▶ 여운이 많이 남았나 보다. 왜 계속 앉아있고 싶었나.

전체 (이야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생각할 거리들이 많더라. 언시(언론 시사회) 날, VIP 시사회 때 봤는데 점점 더 잘 보이더라. 배우들은 (영화를) 자기 위주로 많이 본다. 영화 전체를 사실 다 못 본다. 두 번째 봤을 땐 눈물을 되게 많이 흘렸다. 세 번째 봤을 때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잘 보이더라.

▶ 눈물을 많이 흘린 장면은 어떤 장면인지.

영주 때문에 슬펐던 건 첫 번째 봤을 때다. 제 연기에 빠져서 봤을 때. (그 후론) 아이들 때문에 많이 울었다. 저 아이들도 저렇게 하는데, 보는 내가 다 미안했다. (웃음)

염정아가 맡은 영주는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매우 절제된 캐릭터다. (사진=㈜영화사 레드피터 제공)

 

▶ '미성년' 작품 출연을 제안받고 아주 빨리 결정했다고 들었다. 얼마나 걸린 건가.

하루! 읽고 바로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 날 하겠다고 했다. 못 보던 스토리와 구성이었다. 저는 못 보던 스토리와 구성. 사건은 어디서 본 듯한 사건들이지만 이 인물들이 사건을 풀어나가거나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너무너무 신선한 거다! 너무 신선하고 감히 상상, 예상 가능하지 않은! 그런데 와닿는… (다른 작품이었다면) 영주가 응징하려고 했겠지. (웃음)

▶ 말한 대로 이야기가 일반적인 상상을 조금씩 비껴가는 게 흥미롭더라.

모든 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나. 어디서 본 듯한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인 것도 없고.

▶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영주의 태도 역시 그동안 잘 보지 못한 모습이다.

그 속이 어떻겠나. 그래서 (영주 역할이)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도전 같기도 하고, 어려운 지점이었던 것 같다. 매 씬이 그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걸 하나도 안 하니까. 그렇지만 그 마음은 알겠더라. (그걸) 연기로 표현해야 하니까 사실 그런 지점들이 매번 어려워서 감독님한테 많이 기댔다.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 앞서 말한 대로 영주는 폭발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다. 영주를 어떤 사람이라고 이해했나.

영주는 원래 자존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20년 가까이 해 온 사람. 한 치의 의심도 없어서, 모든 재산이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게 당연한 거고, 나는 아이 잘 키우고 살면 된다고 아는 여자. 어느 날 너무 깜짝 놀랄 만한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됐는데 (남편이) 남자답게 어떤 대응을 안 하는 거다. 거기다 내 딸이 알고. 딸이 아는 게 제일 컸던 거 같다, 영주 입장에서는.

'하지만 그거로 무너질 순 없다. 여태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이런 여자로 이해를 했다. 그렇게 연기해야만 보는 분들도 같이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요구를 하셨다. 뭐 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영주는 그중에 가장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 그런 영주에게 남편 대원과 딸 주리는 어떤 존재였을까.

(남편과는) 각방을 쓰고 있지만… (대원이 대사로) 혼자 잔 지 2년 됐다고 하지 않나. 별문제는 없는 가정이었던 것 같다. 부장인가 과장인가 하는 평범한 중산층. 주리는 공부 잘하고 반장이고, 나름 화목하고 딱히 문제가 없는 가정이다.

▶ 대원의 불륜을 딸 주리가 아는 게 영주에겐 가장 큰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리는 영주보다 먼저 알았고, 오히려 영주가 그 사실을 모르길 바랐다.

엄마들은 딸이 그렇게 우리보다 어른스럽게 뭘 해결할 거라고 생각을 못 한다. 보호해야 할 입장이니까. 근데 그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쟤네(주리-윤아) 둘이거든, 어른들이 아니고. 미희하고 대원은 계속 외면만 하고 있고. 영주는 당한 사람이니까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고.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성년' (사진=㈜영화사 레드피터 제공)

 

▶ 큰소리를 내거나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거나 하는 장면이 없다. 감정 분출을 거의 하지 않는 캐릭터라 연기하기 힘들진 않았나.

이미 영주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괜찮았다. 그런 인물을 (연기로) 만드는 게 힘들었지, 영주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다. 사실 (뭘) 해결할 수가 없는 거다. 애기까지 가져놓고. (대원의 바람에 관해선) 말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주리가 차에 타 가지고 '아빠 도망갔어' 하면서 울지 않나. 거기서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신 게 '픽하고 웃는 것'이었다. 너무 기가 막히니까 정말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거다. 그런 사람(대원)한테 화를 낸들 뭐가 달라지겠나.

▶ 대원의 불륜을 알고 나서 영주는 미희가 운영하는 덕향오리에 간다. 왜 간 거라고 생각하나.

머리끄덩이를 잡으러 간 건 아니고 (웃음) 그냥,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확인하러 간 것 같다. 아마 계속 내 촉으로 '남편 뭐 있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웃음) 주리 전화받고 확실히 알았지만. 덕향오리 종이가방을 바로 찾아내지 않나. 그만큼 (대원은) 허술한 사람인 거다. (거기 갔다가) 남은 걸 싸 가지고 온 거다. (웃음) 어쩌면 '당신이 바람피우는 거 세상이 다 알아'라는 문자를 (영주가)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웃는 미희가 불러온 배를 하고 나가서 내 남편이랑 통화하지 않나. 너무 비참한 거다. 거기에 마침 나는 올 나간 스타킹을 보고, 서둘러 그 자리를 나간다. 그때 그 여자(미희)가 잡지 않나. 소름끼치게 싫었을 것 같다. 근데 영주는 죄책감을 되게 많이 느낄 것 같다. 고해성사할 때 보면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미워하는 저 사람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어서, 저 애기가 저렇게 아픈 게 하느님이 내린 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진심으로 죄책감을 걷어내지 못하는 거다.

▶ 좀처럼 감정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지만, 영주의 진짜 표정을 본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올 나간 스타킹을 바라볼 때나, 차 안에 흘린 미희의 피를 닦아낼 때.

그게 감독님의 연출력 아닐까. 한 컷 한 컷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크게 와닿는지를 아시는 것 같다. 맨발로 걸어가는 씬도 (영주가) 어떻게 그 밤을 보냈는지를 알 수 있는 컷이지 않나. 평소처럼 아이 도시락을 싸지만 제정신은 아닌 거다. 편집됐지만, 영주가 침대에 누워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씬이 있다. (남편 불륜 사실을 알았으니) 한숨도 못 자는 게 당연했을 거고.

▶ 미희의 딸 윤아와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 그제야 오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왜 그때 울었던 걸까.

영주는 (누구를) 미워하지 않더라. 윤아를 똑같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어른으로서 윤아를 대한다. (주리-윤아) 둘한테 '아빠 돈이니까 맛있는 거 먹어'라고 하고, '둘이 싸우지 마. 너희가 왜 싸워?' 이러지 않나. 윤아는 자기 엄마가 저지른 일에, 너무 어른스럽게 자기가 아르바이트한 돈을 준다. 그러면서 '5만 원 모자라니까 다음에 꼭 받으시라'고까지 한다. 그때 (영주는) 되게 부끄럽고 쟤한테 속을 다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 같다. 어른이랍시고 '너희(주리-윤아)는 지금 너무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 그때 윤아가 '주리나 신경 쓰세요' 이러지 않나. 눈물이 날 수밖에.

▶ 영주는 긴 머리로 나오다가 중간에 머리카락을 자른다. 머리를 다듬는 게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연기 톤을 다르게 했나.

톤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마음가짐은 있다. 더 이상 이렇게 쭈그러져 있으면 안 되겠다 하는 것? '우리 딸 힘내', '네(미희)가 아무리 대원에게 그래도 나는 무너지지 않아'라고 보여주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배우 염정아 (사진=쇼박스 제공)

 

▶ 영주가 죽을 가지고 미희 병실로 찾아간 장면은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일 것 같다. 남편 대원의 불륜 상대를 직접 대면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영주는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갔다고 봤나.

촬영할 때부터 저나 소진이나 이 씬이 얼마나 중요한 씬인지 알고 있어서 긴장도 많이 했다. 물론 안 중요한 씬은 없겠지만, (웃음)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저희가 연기를 잘할 수 있도록 모두 다 배려해주셨다. 정말 진짜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촬영했다. 감독님이 주문하신 건, 감정을 너무 많이 표현하지 않는 것이었다.

(촬영할 때) 사실 소진이도 그렇고 저도 많이 (감정이) 올라오더라. 저는 하마터면 올라온 걸 터뜨릴 뻔했다. 미희가 "바람 한 번 피워 보세요. 그게 마음대로 되나"라고 하지 않나. 그때. 근데 영주 대사는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였다. 진짜로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온 거다. 이 엄청난 일은 친구한테도 말을 못 한다, 미희하고 저만 아니까, 미희하고만 얘기할 수 있어서 여길 온 거다.

그 여자(미희)를 보면서 뭔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거고, 또 그 여자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너랑은 다른 사람이야. 네가 그렇게 했어도 우리(가족)는 문제 될 게 없어' 하고. 애기가 그렇게 됐으니까 한편으로는 위로해 줄 수도 있었을 것 같고. 미희에 대한 감정은 아주 복합적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미희한테 그 감정을 내보일 순 없고. 그래서 어렵더라, 얼마나 복합적인지. (웃음)

▶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지옥이다!'라는 카피가 '미성년'에 나온 상황을 한 마디로 잘 정리하는 것 같다. 지옥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본인만의 방법은.

말 안 한다. (웃음) 그런 편이다. 한 걸음 뒤에 서려고 노력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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