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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집은 왜 이렇게 좁아?" 온가족의 원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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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주거 ①] 시흥시 정왕본동의 고단한 원룸가족

원룸과 고시원, 여관까지. 서러운 발버둥을 치기에도 비좁은 '비적정 주거지'에 들어가 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엄마, 우리집은 왜 이렇게 좁아?" 온가족의 원룸살이
(계속)


노모를 모시고 중고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김씨네 4인 가족이 사는 원룸의 모습.(사진=김명지 기자)

 

5~6평 원룸에 온 가족이 끼어 산다.

공단 관련 인력 수요로 생겨난 경기 시흥시 정왕본동 원룸촌은 '월세 20~30만 원짜리'를 구하는 이주자들의 공간이 됐다. '나만의 숨 쉴 틈'이 허락되지 않은 집엔 투덕거리는 현재와 걱정스러운 미래가 있었다.

◇ 원룸의 3대, '작은 욕심'은 억눌렸다

할머니부터 손주들까지 3대가 함께 사는 한 원룸에선 아무리 서로를 배려하려 해도 하릴없이 볼멘소리가 나온다.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에 67살의 어머니까지 모시는 아빠 김모(45)씨네가 월세 36만 원짜리 원룸에서 산 지는 벌써 4년쯤.

가족은 TV, 전화 소리에 서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춥다'와 '덥다'의 경계에서 집 안 온도는 오르락내리락한다.

'집 공부'는 엄두도 못 낸다. 공부할 책상 하나 없어 아들은 엎드린 채 후딱 숙제를 해치우고, 딸은 차라리 도서관에 간다.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에도, 사업 실패 뒤 혈관 질환과 디스크를 앓으며 일용직조차 구하기 힘든 김씨에게 원룸 탈출은 막막하기만 한 상황.

김씨는 "아이들이 말썽도 없이 잘 커 줘서 너무나 고맙다"면서도 "'큰소리치면 집 밖 편의점까지 들릴 것 같이' 방음이 약해 아이들이 화도 억누르고 사는 게 아닐까 안타깝다"고 한다.

6살 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 김씨네 원룸. 점점 커가는 아들에겐 누울 자리도 좁아지고, 열리지 않는 붙박이 창문은 환기도 어렵게 한다.(사진=김명지 기자)

 

◇ "우리 아들도 점점 엄마랑 거리 두고 싶을 텐데"

역시 5평 남짓한 36만 원짜리 원룸에서 사는 엄마 김모(42)씨는 점점 예민해지는 6살 아들에게 '자기 방'을 못 만들어준 게 걱정이다.

'나도 방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난감 펴놓고 넓게 놀고 싶어요'라는 아들은 어린이집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의 건강도 걱정이다. '통 크게' 현관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가 여러 마리의 쥐가 집에 들어와 옷을 파먹고 싱크대 배수관을 뜯어놓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어서다.

방 창문은 건물 복도를 향해 달렸고 여닫을 수도 없는 붙박이라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좁다란 화장실 창문을 통한 환기는 늘 부족하기만 하다.

김씨는 두드러기약 없이는 잠도 들 수 없고, 아들은 감기를 달고 산다고 했다.

4살 딸과 함께 사는 엄마 배씨네 원룸. 1층이지만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오전 11시에도 불을 켜놓고 산다.(사진=김명지 기자)

 

◇ "'로또' 같은 공공임대주택도 보증금 못 치러 포기"

임대주택을 꿈꾸지 못해 좌절하기도 한다.

월세 28만 원짜리 원룸에서 4살 딸과 함께 사는 배모(39)씨는 지난해 공공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얻었지만, 보증금 250만 원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이곳에 다시 주저앉았다.

지상 1층인데도 낮에는 불을 켜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볕이 들지 않는 이 원룸에는 곰팡이가 한 차례 크게 휩쓸고 지나갔다. 자선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벽면 도배도 못 했다.

배씨는 "보증금만 있었으면 지금 월세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내고 살 수 있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경기 시흥시 정왕본동의 원룸촌. 대여섯 평 남짓한 크기의 '쪼개기' 원룸들이 즐비하다.(사진=김명지 기자)

 

◇ 공단 근처 원룸촌, 온 가족의 슬픈 쉼터

지난 2010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시흥시 정왕본동은 국토교통부가 제시하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등의 아동가구 주거 빈곤율이 69.4%에 달했다.

정왕종합사회복지관 손현미 관장은 "정왕본동의 원룸 가구는 2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보증금 없이 월세가 40만 원 아래인 값싼 집으로, 가족들이 들어와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청소년기 아이들, 이성의 부모 자녀들이 서너 명, 많게는 6명까지 함께 살다 보면 '내가 베란다에서 자고 싶다'며 다투기까지 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시흥주거복지센터 차선화 센터장은 "공단에서 가까운 이 원룸촌에선 원래 두 집이었던 것을 여섯 집으로 나누는 등 불법 '쪼개기'가 흔한데,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들이 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며 "주거 문제는 나라가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왕사회복지관과 시흥주거복지센터 등은 오는 4월 정왕본동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이 같은 '원룸가족' 530여 가구에 대한 설문 결과 등 결과 발표와 보고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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