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 후보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채널A 사옥에서 합동TV토론회를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 유력 당권주자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다며 '절차적 문제'를 근거로 댔지만, 법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 절차,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의 특성,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등을 알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궤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법률가 출신 황 전 총리가 '태극기 표심'을 잡기 위해 탄핵 반대 논리를 세우다 '위헌'을 말하는 함정에 빠진 모양새다.
황 전 총리는 지난 19일 TV조선에서 생중계 된 한국당 2‧27 전당대회 3차 TV토론회에서 "박근혜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질문에 아니오(X) 팻말을 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핵심 논리는 '절차적 문제'였다. 그는 "헌법 재판이 이뤄지기 전에 동시에 법원에서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 중에 (탄핵) 결정이 있었다"며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객관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해 쉽사리 탄핵됐다"고도 했다. 재판으로 잘못된 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은 뒤 탄핵을 했어야 한다는 이른바 '선(先)재판-후(後)탄핵' 논리다.
그동안 탄핵 입장에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즉답을 피한 황 전 총리가 탄핵 반대를 내세운 것은 처음이었다. 부당한 탄압, 정치 보복 등 흔한 탄핵 반대 논리와 달리 '법적 절차'를 지적하는 주장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공안검사 출신이자 법무부장관을 지낸 법률가 황 전 총리로서는 전문 분야의 논리를 꺼낸 셈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황 전 총리의 '선재판-후탄핵' 논리는 법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은 탄핵되기 전에 재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이를 규정한다.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재직 중 수사를 안받기에 재판정에 설 일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가결됐고, 이날 헌법상 대통령 권한 행사가 정지됐다. 하지만 아직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지 않은 상태라 직무만 정지됐을뿐 대통령 신분을 유지했다. 이 시기 박 전 대통령은 집무실에는 안나갔지만, 청와대 관저에서 칩거했다. 불소추특권도 살아있어 수사가 불가능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은 2016년 12월21일 가동됐다.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벌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소환하지 못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방문조사, 청와대 압수수색 등도 검토됐으나 불소추특권 등으로 방어하는 청와대와 밀고 당기기를 거듭했다. 한계를 느낀 특검은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를 불허했고 2017년 2월28일 특검은 종료된다. 황 전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대한 도왔다"라고 언급한 배경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고, 불소추특권 방어막도 사라졌다. 이후 같은달 21일 검찰에 첫 소환됐으며, 27일 뇌물죄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31일 구속됐다.
법조인 출신 한 중진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적으로 처벌을 안받기 때문에 형사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탄핵을 기다릴 수가 없다"며 "형사재판이 다 끝나서 대통령 임기도 마쳤는데 헌재가 탄핵한다고 그러면 얼마나 무책임한가"라고 말했다.
황 전 총리의 주장은 민사·형사법상 유무죄를 다루는 법원과 국가 최상위법인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의 차이를 외면한 발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헌법상으로도 대법원 및 각급 법원(제5장)과 헌법재판소(제6장)는 따로 규정이 돼 있다. 그만큼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상호독립적이라는 뜻이다. 검사 출신 한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형사재판은 엄정하게 유죄·무죄를 따지는 것이고, 헌재의 탄핵절차는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재판"이라며 "각각의 절차와 목적, 기간도 달라서 형사재판과 관계없이 헌재에서 탄핵을 진행해도 전혀 문제 없다"라고 말했다.
법률가이자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 전 총리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약 몰랐다면 대통령 불소추특권 등 헌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고, 알면서도 주장을 했다면 대놓고 거짓을 얘기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정치권에선 태극기 표심을 얻기 위해 '알고도 외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한국당 중진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며 "법률적으로 잘못됐고 정치적이고 계산된 발언"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한국당 전당대회에서는 태극기 표심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전대를 앞두고 대거 당원으로 들어왔고, 열혈 지지층인만큼 투표 참여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황 전 총리는 지난 20일 TV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또다시 반복했다. 그는 "탄핵 결정에 대해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그 절차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탄핵 불복 논란에 반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낼 때 탄핵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때 제기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등 강하게 지적하자, "(탄핵 OX답변 방식이) 적절한가,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고 해서 세모(△)로 답하려고 했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