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주요국이 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장기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중 무역갈등을 기화로 아세안과 한·중·일 3국 대상 경제협력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17일 한국은행 조사국 아태경제팀 원지환 과장 등 연구팀은 해외경제포커스에 게재한 '아세안 국가의 대외무역 현황 및 향후 발전방향'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로 중국이 내수중심 성장전략을 강화하는 경우 주요국의 대외 경제협력 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구팀은 세계경제에서 아세안의 위상을 확대시키고 있는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5개국을 중심으로 아세안과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 현황 분석과 전망을 내놨다.
주요국 5개국의 무역구조는 아세안 역내 교역이 부진한 반면, 2017년 현재 중국이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할 정도로 대중국 수출입 비중이 급속 확대됐다. 5개국의 대중국 무역의존 심화는 중국의 산업구조가 가공무역 중심에서 고기술·중간재 중심으로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갈등이 발생하면서 환경 변화가 생겼다. 연구팀은 "중국의 중간재 수출과 아세안 5국의 최종재 생산으로 결합된 역내 가치사슬이 보호무역주의 충격에 따라 일시 약화되면서 아세안 수출증가세를 제약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2017년 높은 증가세를 보인 아세안 5개국의 수출이 최근 들어 증가세 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도 미국의 추가 관세부과 항목 비중이 높은 전기전자, 기계류 등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부진이 예상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특히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로 중국의 내수중심 성장전략이 보다 강화될 경우 아세안 5국과 중국간 상호협력 관계의 빠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중간재를 중심으로 형성된 아세안 5국과 중국간 생산 네트워크의 작동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일대일로' 대외확장 정책이 미국의 견제를 받으면서, 중국의 아세안 역내 대규모 인프라 투자 확대도 방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일대일로 관련 인프라 사업의 연기·취소 사례가 발생했다.
연구팀은 아세안 5국과 중국간 협력관계가 다소 정체되면서 한국·일본과는 역내 분업화를 통한 경제협력 관계가 보다 밀접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중간재 및 자본재 수출을 늘리고 아세안 5국이 최종재 생산을 확대하는 수직적 분업구조가 진전되면 아세안의 세계경제 기여도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아세안 중간재·자본재 수출은 2017년까지 최근 10년간 연평균 14.0%와 13.0% 각각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처럼 아세안과 한국·중국·일본의 다자간 분업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간 역할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우리나라도 중장기전략 수립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역내 생산기지 역할이 부각될 아세안 5국 대상 생산네트워크 강화에 정책적 지원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트남 진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아세안 국가로 투자 등 경제협력 관계를 확대해나가고, 우수기업 합작투자나 국영기업 민영화 과정 참여 등으로 단순 조립·가공위주에서 기술협력 중심으로 교역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 역시 아세안 투자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차별화된 전략이 중요하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