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협상에 참가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3일 귀국길에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공항에 도착, 공항을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의제를 비핵화 자체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누는 이원 협상 전략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2+2회담'을 시작하기로 합의하는 것을 전제로 이같이 전망했다.
이럴 경우 북한 측에서는 평화체제 협상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비핵화 협상은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대사를 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말했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캔 고스 선임국장도 RFA와 회견에서 김 전 대사를 중국과 러시아, 리비아 등에서 근무해온 전문 외교관이라고 평가했다. 고스 국장은 2006년부터 김 전 대사를 주시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김 전 대사가 북한의 새 협상 대표라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의제를 각각 다룰 투 트랙 협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비건 대표와 최선희 부상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등을 모두 다루면 협상 진행이 안 될 것"이라며 "비핵화 개념 등 비핵화 문제를 두고 미국과 북한 간의 이견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스 국장은 다만, 최 부상은 배후에서 협상전략 등을 맡고 실제 협상에는 김 전 대사가 나서는 역할 분담 가능성도 열어뒀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비건 대표의 상대역이 최 부상에서 김 전 대사로 교체됐다고 밝혀 진위 여부와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과의 전화 문답에서 "비건 대표가 지난 주 워싱턴에서 북한의 새로 지명된(newly designated) 카운터파트와 만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 1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할 때 배석한 김 전 대사와 박철 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가 대상자로 주목됐다.
한미 당국은 이 중에서도 통일전선부 소속인 박 전 참사보다는 정통 외교관 출신의 김 전 대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둬왔다.
김 전 대사는 2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미 대표단 접견 사진에서도 박 전 참사보다 서열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에티오피아 대사와 주아프리카연합 북한대표부 상임대표, 수단 대사, 스페인 대사 등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일부의 '북한 주요 인물정보'에도 등재되지 않는 등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물이 최 부상을 갑자기 대체한다는 점 때문에 다수 전문가들은 판단을 유보해왔다.
최 부상은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스웨덴 국제회의에서 비건 대표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상대역으로 2박3일 합숙담판을 벌였다.
최 부상이 협상라인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스웨덴에서 어렵게 성사된 남북미 3자 대화의 틀이 무산된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십수년간 대미 외교를 전담해온 최 부상에 비하면 김혁철이나 박철은 급도 낮을뿐더러 의제 집중력도 없는 사람"이라며 "최선희 협상팀에 김혁철이나 박철이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한 번도 비건의 카운터파트가 최선희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최선희도 (미국의 공식 입장에선) 뉴 페이스"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북한 측 새 협상 대표가 누구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기존 언급 외에 추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25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에서 개최된 북미고위급회담, 그리고 스웨덴 국제회의에서 상호간 생산적인 협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 고위급회담과 스웨덴 실무접촉이 모두 유효하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