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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내년 4.27, 교황과 광화문 촛불미사하고 휴전선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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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배우 문성근이 기억하는 '늦봄 문익환'
올해 탄생 100주년..다양한 기념 행사 진행
89년 김일성 만나고 돌아와 "통일은 됐어"
4.27기념 휴전선 인간띠, 남북문화교류 등 계획
남북관계, 정치권에만 맡기지 말고 힘 모아야
CBS 다큐 <북간도의 십자가> 내레이션 참여
내년 3.1운동 100주년..기독교 독립운동 발자취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8년 12월 14일 (금)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배우 문성근

 

◇ 정관용> 오늘 초대석에서는 한 해를 정리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 한 분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에 힘써 오신 통일운동가시고 민주화투쟁에 헌신했던 늦봄 문익환 목사, 올해가 탄생 100주년 맞는 그런 해입니다. 그리고 특히 1989년에 방북해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서 포옹을 하며 회담을 한 뜻깊은 사건. 내년이 되면 30주년이 되네요. 그래서 고 문익환 목사님 걸어오신 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문 목사님의 아드님이시죠. 여러분 좋아하시는 영화배우 문성근 씨를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문성근> 반갑습니다.

◇ 정관용> 오랜만에 뵙습니다.

◆ 문성근> 2010년인가 ‘국민의 명령’ 시작했을 때 초대해 주셔서 그때 와서 뵙고 8년 만이네요.

◇ 정관용> 시사자키 그때 프로에도 나오셨던 거고.

◆ 문성근> 그랬었죠.

◇ 정관용> 요새 드라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문성근> 송혜교 아빠입니다. (웃음)

◇ 정관용> 아버님 관련된 인터뷰는 급구 사양하신다고 들었어요.

◆ 문성근> 제가 문 목사 활동하실 때 같이 활동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같이 활동하신 분들이 얘기하시는 게 훨씬 좋아서 저는 가급적 말씀 안 드리는데 이번에 올해 기억해야 될 인물 이렇게 선정해 주시고 기억해 주셔서 고마우니까 이렇게 나왔습니다.

◇ 정관용> 탄신 100주년이라고 해서 금년에 이런 저런 행사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까?

◆ 문성근> 6월 1일이 생신이셨거든요.

◇ 정관용> 6월 1일.

◆ 문성근> 6월 1일에 사셨던 수유리집을 ‘통일의 집’이라고 사설 박물관으로 만들었고요. 개관을 했고 6월 2일에는 서울역에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다오’라는 행사를 했죠. 그래서 서울역 전광판에 평양행 기차 이게 전광판에 뜨고. 물론 평양까지 못 갔지만 그런 행사를 했습니다. 그건 이제 가급적 가능하다면 매년 하고 그다음에 경의선이 연결돼서 평양에 갈 수 있다면 우리 서울 시민들 평양 대동강가 가서 도시락 까먹고 오고 평양 시민들 초청해서 한강변에서 하고 그런 식으로 연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죠.

◇ 정관용> 그래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다오’. 이 아이디어는 누가 내신 거예요?

지난 6월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된 ‘평양가는 기차표를 다오’ 행사에서 시민들이 서울역-평양역(도라산역) 기차에 탑승 후 취재진을 향해 티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문성근> 그게 이제 89년 1월 1일에 문익환 목사가 쓴 시에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통일이라는 건 서울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다오라고 소리 치는 일이다’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서 그 시구에서 온 행사죠.

◇ 정관용> 89년 방북하실 때 아드님한테는 얘기하고 가셨어요?

◆ 문성근> 저한테는 하셨죠. 가족들은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평양 도착하셨다는 보도 나오고 나서 불려가서 일종의 불고지 혐의에 대해서 추궁도 받고 그랬었죠.

◇ 정관용> 뭐라고 얘기하고 가셨어요?

◆ 문성근> 벽을 두들겨보겠다는 거였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얘기를 하셨는데 그때는 주로 시인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죽음을 막겠다, 이런 시인의 심성을 주로 많이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되돌아보면 89년이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그러니까 분단을 강제한 동서 냉전이 끝난다면 우리가 분단돼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통일을 지향할 것이냐. 북쪽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좀 접점을 찾아보고 싶었다는 게 사회과학적인 동기죠.

◇ 정관용> 가서 대화하고 그다음에는 감옥에 가셨다는 말이에요. 모두 몇 년이나 감옥에 계셨죠?

◆ 문성근> 전체는 6번에 걸쳐서 11년 3개월을 사셨죠.

◇ 정관용> 6번.

◆ 문성근> 그러니까 정권마다 2번씩 갔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렇게 해서 2번씩 가셨는데 5번째가 방북 후에 들어가신 거였는데 그때는 그 전까지는 민주화다. 싫다, 너 감옥가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남북관계 풀자. 당시 노태우 정부도 그걸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합의했다. 이대로 가면 된다. 그런데 왜 날 감방에 넣냐 이래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나셨었고 낙담도 많이 하셨고 그랬죠. 그런데 그때 지금 돌아오셔서 ‘통일은 됐어’ 이렇게 얘기를 하셨었어요. 그런데.

◇ 정관용> ‘통일은 됐어’라고요?

◆ 문성근> 89년에 평양 갔다 오셔서 통일은 됐어라고 선언을 하신 거죠. 완료형으로. 그래서 굉장히 어이없어 한 분들이 우선 많았고요. 이건 시인의 감성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게 충분히 이해되는 게 그때 김일성 주석을 설득했던 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북은 고려연방제를 주장하잖아요. 북쪽 정부가 있고 남쪽 정부 있고 중앙에 외교와 국방을 관장하는 고려연방정부를 세우자 이건데. 이거 부지하세월이다. 우리 이념으로 분단되고 전쟁했는데 어떻게 국방을 합치냐. 그건 뒤로 두고 우선 문화교류, 경제교류부터 하자. 그리고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단일기를 가지고 출전하자. 그렇게 해서 남북한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면 더 높은 단위의 합의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합의를 한 거거든요. 그래서 고려연방제 전에 교류협력 단계를 도입을 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그 합의가 축소해서 몇 줄로 요약한 게 6.15선언이고 그걸 사업적인 걸 확대한 게 10.4선언이고 이번 판문점선언은 6.15와 10.4의 재확인인 거잖아요.

◇ 정관용> 재확인하고 조금 한 걸음씩 더 나간 그런 거죠.

◆ 문성근> 그러니까 사실은 89년 4.2공동선언 때 합의한 대로 그때 착수를 했으면 이미 통일의 첫 단계가 도입되고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통일은 됐어라고 했는데 이제 ‘어어’ 하다 보니까 30년이 흘러버린 거죠.

 

◇ 정관용> 정말 ‘어어’ 하다 보니 30년이네요.

◆ 문성근> 30년이 흘렀어요.

◇ 정관용> 그런데 현실적으로 방법은 문 목사님이 김일성을 설득했다고 지금 방금 표현하신 현실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 문성근> 그렇습니다.

◇ 정관용> 문화교류, 경제교류, 체육교류. 그래서 서로 간에 왔다 갔다 하고. 그게 쌓이고 쌓여야 나중에 통일 되는 거 아니겠어요?

◆ 문성근> 그러니까 지금 와서는 정말 안타까운 게 89년도 3월에 방북하고 나서 가을에 소련이 무너졌잖아요. 동구라파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 이후는 미국 1극체제잖아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한테 통일이 되더라도 남반부에 주한미군은 그대로 있는 거고 미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니 우리 가까워지는 걸 용인해 달라 이렇게 된 거잖아요. 동의가 됐던 거고. 그랬던 것이 2010년 즈음에 시진핑 체제가 뜨면서 미중 패권 경쟁시대로 들어갔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동북아 정책, 남북 관계 개선 부분에 동의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시진핑이 도전하면서부터 동북아 정책이 바뀌어버린 거죠. 오바마 정부도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바뀌어버린 상태인 거죠. 그러니까.

◇ 정관용> 중국 견제를 위해서 한반도 긴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 문성근> 그러니까 한미일 군사동맹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위안부 합의나 정보보호협정이나 이런 게 다 그런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 절호의 기회. 89년 가을부터 2010년 사이 한 20년 동안은 우리 민족에게 정말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걸 그냥 보내버렸고 지금은 예전에는 2000년 6.15 때는 미국 공화당은 싫어했고 민주당은 동의를 했던 거예요. 그런데 민주당도 반대하는 상태에서. 지금은 트럼프는 돌출적인 정치인이니까 지금 그 혼자 이렇게 하고 있는 건데 공화당, 민주당이 모두 다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나쁜 환경인 것이고.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요즘 하시는 거 보면 그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 점이 정말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일이죠.

◇ 정관용> 그렇죠. 이제라도 정말 급진전을 이루어내야 되는데 남북 정상회담 열리고 북미 정상회담 열리고 이럴 때만 해도 금년 안에 뭐 굉장히 많이 진행될 것처럼 어찌 보면 약간 들떴었는데 지금 연말이 돼서 보니까 이게 만만치 않구나라는 걸 다시 확인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년에는 잘 될까요?

◆ 문성근> 저는 이제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트럼프는 사실상 당선될 생각까지 안 하고 출마했던 측면이 많다고 그러잖아요, 대선 때.

◇ 정관용> 당선되고 제일 놀란 사람이 자기라는데.

◆ 문성근> 그러니까 후보 시절에는 막 얘기를 했던 거고 그거의 연장선상에서 만나기는 했는데,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는 했는데 톱다운이라는 게 내려가면 모든 민주, 공화, 월가, 군산복합체 모두 다 벌떼같이 달려들어서 안된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거니까 지금 그래서 멈칫멈칫 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 정관용> 그걸 과연 뚫고 돌파할 수 있느냐 그거죠?

◆ 문성근> 그러니까 이를테면 문재인 대통령께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을 하게 한다든지 지금 초소를 폭파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다 세계 여론을 향한 남북한의 몸부림같이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같이 느껴지는데 정부로서는 그런 일들을 하는 거고요. 민간도 민간대로 그런 세계여론에 호소하고 이런 일들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번에 늦봄 통일상이라고 매년 한 분이나 단체에 통일상을 드리는데 이번에 NCCK 화해통일위원회가 받았어요. 그런데 그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아주 좋은 안을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 정관용> 어떤 거요?

◆ 문성근> 내년 판문점 선언 1년. 내년 4월 27일인데 그게 토요일이더라고요, 마침. 그 오후 4시 27분에 맞춰서 휴전선 전체를 인간띠를 잇자. 그래서 전 세계를 향해서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을 외쳐보자 이런 기획을 지금 꾸려가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들으면서 떠오르기를 교황께서 오고 싶어 하시잖아요. 그러면 4월 26일날 오셔서 만약에.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출연 중인 배우 문성근 (사진=CBS)

 

◇ 정관용> 같이 거기서 손잡고.

◆ 문성근> 광화문에서 100만 촛불미사를 한번 드리고 4월 27일 오후에 가서 딱 인간띠 이은 다음에 교황께서 그냥 판문점에서 걸어 올라가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그러죠.

◇ 정관용> 역시 영화배우라 상상력이 탁월하십니다. 그림을 딱 그리시는군요.

◆ 문성근> 도보다리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걸 봤으니까요.

◇ 정관용> 휴전선 인간띠. 그럼 차제에 교황께서 그때 오셔서.

◆ 문성근> 오면 얼마나 좋을까.

◇ 정관용> 좋습니다. 내년 방문 30년을 기념한 기념행사 같은 것도 기획하고 계시죠?

◆ 문성근> 이번 10.4선언 때 평양 행사 때 북쪽 관계자들 만나서 방북 30년이니까 공동기념행사를 갖자라고 해서 동의가 됐어요. 그래서 평양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그러면서 동시에 문 목사 장남 문호근이라고 있는데 그 양반이 음악연출가였습니다. 오페라, 뮤지컬 이런 것들. 그 사람이 남북교류를 위해서 가극 금강이라는 걸 만들어둔 게 있어요. 신동엽 선생의 장시를 가지고. 그걸 2004년에 한번 평양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다시 공연을 하고 그다음에 문 목사가 김 주석하고 합의했던 사항 중에서 아직 실천 안 된 게 딱 하나 있어요. 그러니까 단일팀이나 단일기나 이런 건 다 되고 있는데 지금도 안 된 게 공동응원가를 만들기로 했었거든요.

◇ 정관용> 노래.

◆ 문성근> 그래서 그때 합의는 북쪽에서 가사를 쓰면 남쪽이 곡을 붙이고 뒤집어도 좋고 그렇게 합의를 하셨어요, 두 분이. 그런데 그게 아직 실천이 안 됐는데 서로가 번거로우니까 일단 남북이 각자 한 서너 곡씩 만들어서 던지자. 음원을 던지면 대중이 선택을 제일 부르기 좋은 거.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년 4월 2일 평양행사 때 그 공동응원가 남북이 합의된 공동응원가를 발표를 하는 것도 지금 계획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 정관용> 조금 아까 언급하셨는데 10.4 공동선언 기념하는 행사 때문에 평양 직접 다녀오셨잖아요. 그게 첫 번째 방북이 아니시죠?

◆ 문성근> 다섯, 여섯 번 간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최근 한 몇 년, 한 10년은 못 가셨던 거잖아요.

◆ 문성근>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한 번도 못 갔고요. 이번이 처음이었죠.

◇ 정관용> 거의 10년 만에 가신 거죠, 이번에? 많이 달라졌던가요? 많은 분들이 얘기하시던데.

◆ 문성근> 엄청 달라졌죠.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도시가 됐는데 보면서 저게 그다음 제재를 받는 상태였잖아요. 그 상태에서 자체 자금으로 저렇게 했을 것 같지는 않고 결국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구나, 이미. 그러니까 돈주들이 됐든 아니면 중국 자본주가 됐든 간에 정부가 땅을 대고 그다음에 민간들이 다른 돈주들이 와서 건물 지어서 분양하고 이렇게 나눠 갖고 이런 것들을 대대적으로 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물론 장마당이나 이런 거의 변화가 이미 있었다고 하는데 이미 경제를 상당 부분 국가 통제에서 놔버린 게 확연히 보여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

◇ 정관용> 호랑이 등에 탔다는 표현이 적절하신 것 같네요. 지금 맡고 계신 게 남북영화교류특위 위원장. 그건 어떤 걸 합니까?

◆ 문성근> 가족사가 그렇다 보니까 이렇게 남북 관계 풀리는 데 뭔가를 해 주기를 영화계에서 바라는 측면도 있고 또 하나는 문 목사 본인이 이질화된 너무 오랫동안 다른 체제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 달라진 걸 서로 마음을 합치는 데는 제일 좋은 게 문화예술이다라는 생각을 그때도 하고 계셨어요.

◇ 정관용> 실제 북한 영화계하고 논의가 진행 중입니까?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출연 중인 배우 문성근 (사진=시사자키팀)

 

◆ 문성근> 이번 10.4 때 가서 이제 포괄적인 제안을 했는데요. 합작영화를 할 의향도 있다. 평양 세트장을 좀 써줬으면 좋겠다 이런 의사도 얘기를 하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 영화계에는 굉장히 숙원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남쪽의 영화 중에서 없어진 필름이 많아요.

◇ 정관용> 그래요?

◆ 문성근> 그러니까 우리가.

◇ 정관용> 그런데 그게 북한에 있을까요?

◆ 문성근> 북한에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영상자료원이라는 걸 74년에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영화 필름을 보관해야 된다는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북쪽에 보니까 거기는 48년인가 50년대 이미 만들었어요. 문원고라는 걸. 어마어마하게 보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보고 우리도 따라 만들었거든요, 74년에. 그러다 보니까 50년대, 60년대 필름이 없는 게 많습니다.

◇ 정관용> 그거 북한에 있겠군요.

◆ 문성근> 그런데 그중에 그러니까 이만희 감독이라고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한국 영화의 최고봉입니다.

◇ 정관용> ‘만추’ 만드신.

◆ 문성근> 3대 감독, 5대 감독의 한 분인데 그 만추가 북쪽에 있는 게 확실해요. 그리고 나원규 감독이 아리랑을 3편 만들었거든요. 2편은 다른 사람이 했고 1, 3편을 그분이 만들었는데 3편이 있다는 설이 있어요. 이건 확인은 못했어요.

◇ 정관용> 금방금방 확인하면 되죠, 그건.

◆ 문성근> 그런데 만추는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까 문화재를 그쪽에서 보존을 해 준 거죠. 정말 고마운데 그걸 디지털로 복원을 해 주면 우리가 전국 상영회를 하면서 이거 북에서 보존해 줬다, 고맙다 이러면서 이렇게 즐길 수도 있고 그래서 그걸 좀 주십사 요청을 드렸는데.

◇ 정관용> 하실 일 많네요.

◆ 문성근> 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내년 1월 1일 저희 CBS TV에 방영 예정인 ‘북간도의 십자가’라고 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직접 내레이션을 맡아주셨다고 들었어요. 여기도 결국은 아버님이 등장을 하는 거죠?

◆ 문성근> 지금 만주의 명동촌(村)에 살다가 서울에 오신 분 중에 생존해 계신 분이 문동환 목사 한 분 남으셨습니다.

◇ 정관용> 문익환 목사님의 동생분이시죠.

◆ 문성근> 21년생이시니까 만으로 아흔일곱 되시거든요. 그분 생전에 기독교와 독립운동가, 만주 이걸 이렇게 조명을 하는 거죠. 3.1운동 100년에 명동촌(村) 기독교를 점검하는 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만주에 기독교가 들어간 건 이를테면 이동휘 선생 같은 분이 독립운동을 하려면 목사가 제일 좋다라고 해서 문익환, 문동환은 다 목사가 된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 교인과 얘기를 할 수 있고 설교 속에 독립 의지를 숨기면서 된다 이런 뜻이었고 그래서 3. 1운동 때 3월 13일에 만주에서 똑같이 만세운동을 했다가 33명이 총 맞아서 죽거든요. 그러면서 꾸준히 독립운동을 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만주의 기독교는 독립운동의 기지 같은 기능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니까 3.1 운동의 그 기독교, 초기 기독교를 한번 점검해 보는 뜻깊은 작품이어서 만사 제치고 했죠.

◇ 정관용> 1월 1일 CBS TV ‘북간도의 십자가’. 이것도 좀 저희가 꼭 지켜보겠고요. 통일운동가이자 민주운동가인 우리 문익환 목사님을 지금 이 시점, 이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면 그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마지막 한말씀.

3.1운동 100주년 특집 CBS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문성근

 


◆ 문성근> 벽을 문이라고 알고 치고 나가라는 거죠. 지금 미중 패권시대에 남북관계 개선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정치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민도 움직여야 된다. 그러니까 응원해 주고 남북관계 잘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또 동시에 재외동포들 경우에 그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지역의 정치인들에게도 강하게 어필을 하고 또 우리는 우리대로 여러 가지 힘을 모아서 전 세계 여론에 호소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해야지 싶습니다.

◇ 정관용> 벽을 문으로 알고 치고 나가라.

◆ 문성근> 절망하지 말고.

◇ 정관용> 이건 아버님이 하셨던 말씀인가요?

◆ 문성근> 늘 하셨던 얘기입니다.

◇ 정관용> 그리우시겠어요, 아버님.

◆ 문성근> 늘 따라 살 수 없는 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앞으로 굉장히 많이 바빠지시기를 기대합니다.

◆ 문성근> 열심히 하겠습니다.

◇ 정관용>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남북 간 영화교류와 이런 등등이 자꾸 커져야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거니까요. 많이 바빠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문성근> 고맙습니다.

◇ 정관용> 배우 문성근 씨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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