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북한 열병식 모습.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신년사에 맞춰 북한은 남한에서 열린 '겨울철 올림픽 경기'에는 응원단과 단일팀, 특사단을 파견해 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이른바 꺾어지는 해이고, 사람으로치면 고희(古稀)에 해당하는 정권수립 70주년은 예상과 달리 조용하게 지나가는 분위기다.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9.9절 열병식은 비교적 차분하게 치러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북한은 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가량 열병식을 진행했다. 북한은 이날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실(ICBM)은 물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어떤 탄도 미사일도 등장시키지 않았고, 대신 재래식 무기만 선보였다.
이는 7개월전인 지난 2월 8일 70주년 건군절 당시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과 ICBM급인 '화성-14'형, '화성-15'형의 전략미사일,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북극성-2'형을 등장시킨 것과 대비된다.
이날 열병식에는 1만 2천명 이상의 군인과 5만명 가량의 민간인이 참석했으며, 무기로는 '북한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지대공 유도미사일 'KN-06'(번개5호)과 300㎜ 신형방사포(KN-09), 122㎜ 방사포 등이 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ICBM을 등장시키지 않은 것은 익히 예상됐던 것으로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조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해법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태를 악화시킬 ICBM을 등장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연설을 하지는 않았다. 열병식 과정이 텔레비젼을 통해 생중계되지도 않았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을 둘러싼 환경 여건을 모두 감안한 열병식이었다"며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에 맞는 9.9절 행사를 고민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단 대외에 내세울만한 메시지가 준비돼 있지 았다거나 대외 메시지를 내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에 ICBM 등을 이용한 위력 과시나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 없이 비교적 조용하게 보냄에 따라 방북 직전에 연기됐던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등 협상을 위한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성장 박사는 개인 논평을 통해 "만약 북한이 오늘 열병식에 ICBM을 가지고 나왔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협상 의지에 많은 의구심이 제기되었을 것"이라며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향후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북한 핵과 미사실에 대한 협상을 염두에 두고 타협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