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쪽으로 감독의 역량을 이끌어감으로써, 어떻게 보면 금융회사들과 '전쟁'을 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금융감독원 수장인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9일 취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금융감독원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혔다. 전임 원장들이 워낙 단기간에 낙마한 탓에 정중동 행보를 보여온 윤 원장이 처음 공식석상에 등장한 자리에서다.
'소비자 보호'에 역점을 두고 '금융회사와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윤 원장의 발언에 앞으로 금감원이 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윤석헌이 이끄는 금감원, '감독 강화' 불가피 선전포고
윤 원장은 모든 금융권의 금리·수수료 등 가격 결정 체계를 집중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선 최근 일부 은행에서 적발된 부당 대출금리 산정 문제와 관련, 검사를 전 은행권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저소득층 및 자영업자에 대한 과도한 금리 부과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도 올 하반기 중에 대출금리 부당 부과 여부를 검사한다.
만약 부당 영업 행위가 발견되면 바로 환급 및 제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당 영업 행위에 대한 경영진의 제재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은행법상 불공정 영업행위에 과도한 대출금리 부과 행위를 포함하는 방안을 금융위에 건의할 지도 검토 중이다.
이르면 오는 9월 쯤부터는 수수료도 금융상품의 판매 단계별로 일괄 점검한다. 금융상품의 가격 상승 요인을 차단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보험설계사나 카드모집인 등에 대한 수수료 지급이나 산정 실태를 점검해 합리적인 수수료 산정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에 대해선 '전쟁'을 선포했다. 이를테면 고령층에 고위험 투자 상품을 권유하는 등 불건전 영업 행태에 대한 상시 감시를 강화한다.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 비율 등 소비자 피해 관련 사항에 대한 금융회사의 자체 공시 확대도 유도하기로 했다.
윤 원장은 "여러 금융권에서 불완전 판매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며 "저희들의 감독 역량을 불완전판매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 3년 만에 금융권 종합검사 '부활', 유인부합적 방식으로 재개
금융권에 대한 금감원의 종합검사도 3년 만에 부활한다. 금융사 경영 실태를 큰 그림에서 파악·점검해 개선 사항을 도출하는 종합검사가 올해 4분기부터 다시 실시될 방침이다.
금융회사가 2~3년 마다 한 번씩 받게 되는 금융권 종합검사는 2015년 진웅섭 전 금감원장이 금융회사 자율성 강화와 컨설팅 검사를 강조하면서 폐지됐다.
당시 숭실대 교수였던 윤 원장은 국민일보의 칼럼에서 '금감원의 종합검사 폐지 유감'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가파른 가계부채 상승세 속에서 금융감독의 독립성 약화와 더불어 금융산업 위험의 증폭을 예고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다시 부활하는 종합검사는 '유인부합적' 방식으로 재개된다. 모든 금융사가 돌아가면서 검사 받는 과거의 종합검사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 등 감독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회사만 선별해 종합검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윤 원장은 3년 전 칼럼에서도 "감독 당국은 금융시장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에 건전성 목표를 제시해 이를 지키도록 요구하며 필요시 유인을 부여한다"며 "그런데 불완전 정보 하에 요구가 무시되기도 하고 유인이 왜곡되기도 하며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다. 그래서 감독 당국이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종합검사가 바로 이런 기능을 수행한다"고 종합검사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윤 원장은 금융당국의 감독이 느슨한 틈을 타 금융회사가 단기 성과 중심 경영, 내부 통제를 부실하게 하는 탓에 소비자 피해가 늘어났고 금융사고와 불건전 영업 행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윤 원장은 이날 감독 방향에 대해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도"단기적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는 측면이 불가피 하다"며 "최근에 삼성 배당 문제 등 금융권에서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났고, 또 IT 등이 발전하며 P2P 대출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가 됐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금융회사와의 전쟁이란 표현은 다소 과격했지만, 금감원의 충실한 감독을 통해 금융사에 문제가 있으면 경영진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금융시장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 등 금감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특히 "종합적으로 봐야 이슈를 판단하고 진단할 수 있는데, 조금씩 부문 검사를 하게 되면 정보가 제약되고 효과적인 감독이 안 될 뿐더러 금융사는 금융사대로 불편하고 금감원과 갈등이 생긴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어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금융권의 사고들 때문에라도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금융회사에 필요 이상으로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발생한 여러 금융권 사고들 때문에라도 금융당국이 감독 강화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정말 잘못된 부분을 목표로 삼아 감독하고 해결되도록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금융당국이 전방위적으로 금융회사를 압박하게 되면 금융기관 종사자 입장에선 가능하면 이슈가 생기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행동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