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으로 지난 2007년 고향을 떠난 경기도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지난 3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추리 지명 유지’ 와 ‘생계대책으로 상업용지 공급’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서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사진=황진환 기자)
11년 전 경기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이 이제는 약속대로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을 찾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 "그때 그 시절만 추억할 따름"20대 때 시집 온 뒤부터 대추리에서 농사짓던 이경분(64)씨가 미군기지에 논을 내어주고 쫓겨난 건 지난 2007년 4월이었다.
대추리 주민들과 평택평화센터에 따르면 당시 이씨 등 주민 44가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추리를 빠져나와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 이장이 구속되고 경찰과의 대치가 길어진 가운데, 공동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이주단지 이름을 '대추리'로 바꿀 수 있게 해준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삶이 예전 같지 않아 '그때 그 시절'만 추억할 따름이라고 한다.
이씨는 지난 3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나 "대추리에서는 농번기에 서로 도와가며 일하고 상을 당하면 모두가 도와서 음식 장만하고 참 정겹게 살았다"면서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4월 평택 대추리 인근의 캠프 험프리 기지. (사진=자료사진)
◇ 마지막 소원은 '대추리' 이름 지키는 것
주민들에게 마을 이름을 찾는 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다. 이주 과정에서 분열했던 주민들을 언젠가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라도 그 이름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승률(84)씨는 "일제강점기엔 비행장 만든다고 논밭 다 뺏기고, 1951년 전쟁통엔 미군기지 확장한다고 집에 흙을 밀어붙여도 어디 하소연 못 하고 당했다"며 "지금은 다 뺏겨버렸지만 제방에다 같이 옥토 쌓으면서 대추리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평택평화센터 강미 센터장은 "11년 전 피눈물 삼키며 마을을 떠나오면서 유일하게 소망한 건 대추리라는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며 "그중 가장 소중한 건 '대추리'라는 지명을 지켜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와의 합의문 중 '해당 지역 거주민의 동의 등 행정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절차와 요건 구비 시 승인한다'는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이주지 노와리에 원래 살던 주민 대부분이 2012년 우편투표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까닭에, 평택시가 명칭 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추리 이장'으로 불리는 신종원(58)씨는 "어디서 살든 대추리를 만들어주겠다 해서, 그리고 구속된 전 이장과 많은 연행자를 석방해준다 해서 고향을 떠나겠다고 약속했었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합의 당시에도 택지 문제로 대추리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이제는 이름 문제로 노와리 주민들과 대추리 주민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지명을 꼭 바꿔내겠다며 지난해 평택시장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정확히는 노와리 안에서 자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구역을 떼서 지명을 대추리로 바꿔 달라는 것이다.
3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