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거렸던 이들은 모를 끙끙 앓았던 누군가들의 성폭력 연대기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
①초등학교는 지금 '아이스께끼' 대신 '앙 기모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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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노컷뉴스)
'아이스께끼'가 장난과 호감으로 치부됐던 때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눈물로 호소했지만 어른은 웃어넘겼다. '널 좋아해서 그래'라는 말로 타일렀다.
요즘 초등학교 교실에선 아이스께끼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 장난과 호감이 아닌 유행과 재미라는 이름의 언어 성폭력이 자리했다. 바로 '앙 기모띠'다.
◇"아이스께끼, 속옷 끈 당기기에 홀로 마음고생"또래보다 빠른 2차 성징에 초등학교 시절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는 20대 여성 이모(25)씨는 키득대고 놀려댔던 남자아이들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쟤네가 나한테 왜 저럴까' 무섭고 속상했다. 기분이 나쁜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는 이씨는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질하던 같은 반 아이들과 자신의 당시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스께끼', '속옷 끈 당기기'를 장난처럼 당했던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서 "혼자 너무 창피해 울기 일쑤였다"는 우모(23)씨는 "뭘 잘 모르면서 그랬던 것 같지만, 어른들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예민하게 군다는 말을 들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을 떠올린 송영현(26)씨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그럴 수 있지' 하는 분위기가 그때는 있었지 않냐"고 했다. "짜증 나도 불쾌한 건 나뿐이고, 다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길거리에서 인터뷰한 20대 여성들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은 이처럼 비슷했다. 성적 폭력에 대한 첫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학생들은 '아이스께끼는 더 이상 없다'고 했다. '학폭위'에 불려갈 수도 있다고 했다.
대신 아이들 입에서 나온 단어가 '앙 기모띠', '이꾸요잇'이었다.
기분 좋다는 뜻의 '앙 기모띠', 성적 흥분을 의미하는 '이꾸요잇' 등은 포르노물에 종종 나오는 말들인데, 유행어라고 생각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이 쓴다.
12살 남학생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 옆에 있던 여학생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앙 기모띠'에 '이꾸요잇'…'유행어'의 탈을 쓴 초등 교실의 모습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정모 양은 "남자애들이 왜 콧소리를 내면서 그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성적인 게 연상되고 이상하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장모(12)양도 "선생님께서도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남자애들은 그냥 장난으로 받아들이더라"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직접 얘기해본 적도 있는데 '다른 애들도 쓰는데 너는 왜 그러냐'고 했다"고 말했다.
최모(12)양은 "남자애들이 자기끼리 장난을 치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하고, 여자애를 괜히 툭툭 건드리면서 할 때도 있다"며 "되게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관심 어린' 치마 들춰내기든, '유행하는' 단어든 폭력이 폭력이란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는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물리적 폭력이나 위해가 가해지는 게 아니라고 해서 '그 정도는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짓궂은 행동'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경계심 없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농담에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며 피해자에게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사회적 생활을 배워가는 이때가 오히려 '조금 더 예민하게 굴어야 할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현숙 대표는 "학교는 사회 그 어떤 기관보다도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야 하는 곳"이라며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공감해주고 개입해서 문제를 없애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