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아무리 뿌옇게 끼어도 봄은 봄입니다. 오늘 화제 인터뷰에서는 저희 뉴스쇼와도 인연이 참 깊은 분이죠. 소설가 한승원 씨가 봄에 참 잘 어울리는 수필집을 들고 왔습니다.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제목이 참 봄스럽죠. 마침 딸 소설가 한강 씨의 소식도 있고 해서요. 더 반갑습니다. 만나보죠. 소설가 한승원 선생 연결이 돼 있습니다. 한 선생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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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원>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어떻게 지금 남쪽은 봄꽃이 한창이죠?
◆ 한승원> 매화가 활짝 피었어요. 복수초도 피었고 지금 수선화도 바야흐로 피고 있습니다. 매화가 활짝 피웠어요.
◇ 김현정> 남쪽에는 완연히 찾아와 있는 건데 산문집 제목이 봄하고 정말 잘 어울려요.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이게 무슨 의미로 하신 걸까요?
◆ 한승원> 여기서 꽃을 꺾는다는 것은 인생살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애쓰는 일을 꽃을 꺾는다, 달을 딴다, 별을 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 김현정> 뭔가를 성취한다, 이루어낸다?
◆ 한승원> 상징적으로 얘기한 거죠.
◇ 김현정> 그런데, 꽃을 꺾어서… 집으로 돌아오네요?
◆ 한승원> 집으로 돌아오다는, 꽃을 꺾으러 나가다가 달을 따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보니까 늘 길을 잃었고 다시 또 방황하다가 성찰하고 나서 길을 찾았고 이와 같은 일을 거듭 반복하면서 살아왔어요.
◇ 김현정> 그러네요.
◆ 한승원> 그러니까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는 그와 같은 많은 시행착오와 길찾기를 거듭하다가 이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안주하는. 그런 모양새가 아닐까.
◇ 김현정>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이 책을 읽다가 군데군데서 찔금찔금 눈물도 나고, 저는 그렇게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그랬어요. (웃음)
◆ 한승원> 감사합니다.
◇ 김현정> 이게 산문집입니다. 수필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다 하나하나가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쓰셨어요. 다 여기서 읽어주실 수는 없지만 좀 우리 청취자들과 나누고 싶은 한 토막이 있다면, 일화가 있다면. 소개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한승원> 그러면 이 산문집 맨 앞에 작가의 말을 대신해서 내놓은 시가 한 편 있어요. 그것을 제가 읽어드리도록 하죠.
◇ 김현정> 사실은 제가 이 책을 제가요. 가지고 있는데 첫 페이지 작가의 말을 딱 읽고 나서부터 찡했거든요. 그랬는데 이거 준비하신거네요. 좋습니다. 제목이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한승원 작가 (사진=불광출판사)
◆ 한승원>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그 한복판에 수직으로,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새 아닌
새 한 마리가 거기 있어서입니다.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별
별
하나가 거기 떠 있어서입니다.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
말 하나가 거기 있어서입니다.
◇ 김현정>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별. 별 하나가 거기 떠 있어서 그렇다.' 저는 이 부분이 제일 좋더라고요. 깊은 울림을 주는 작가의 말. 이렇게 시작하는 산문집인데요. 그 중간에 보니까 이런 게 있어요. '나는 젊은 시절부터 내내 서재 한 벽에 광기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산다.' 이거 왜 그러셨어요?
◆ 한승원> 오래전에 우리 선인 유학자들이 '미쳐야 미친다.' 그런 말을 했어요.
◇ 김현정> 미쳐야 미친다?
◆ 한승원>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에, 글 쓰는 사람은 글에 확 미쳐버려야 어떤 것을 이룩해낼 수 있다고요. 저는 소설 쓰기에 미치고, 시 쓰기에 미친 사람입니다.
◇ 김현정> 아, 그 광기군요. 뭐든지 계산을 하면 안 되고 성공하려면 정말 제대로 뭔가를 해 보려면 미쳐야 된다, 모든 걸 올인해야 한다, 이런 의미이군요?
◆ 한승원> 그러니까 요즘 꽃피는 시절이잖아요. 요즘 매화나 개나리라든지 살구꽃이라든지 깡마른 나무가 꽃을 토해내거든요. 그 나무들은 냉추위 속에서 엄동 속에서 봄꽃을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미친듯이 준비하고 있었던 거죠.
◇ 김현정> 미친듯이.
◆ 한승원> 그래서 미친듯이 터트리는 거예요.
◇ 김현정> 그렇군요, 그렇군요. 그러니까,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안 될까 하는 지금 움츠려 있는 젊은이들한테 희망이 되는 얘기네요.
◆ 한승원> 그러니까 이번에 낸 산문집도 저의 삶에 그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소설가 한승원 씨. 산문집으로 돌아온 한승원 선생을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선생님, 요즘은 소설가 한승원보다 한강 작가 아버지로 더 유명한 거 알고 계세요?
◆ 한승원> 진즉부터 알고 있습니다. (웃음)
◇ 김현정> (웃음) 섭섭하지는 않으세요, 조금 솔직히.
◆ 한승원> 아이고, 유쾌하고 아주 하늘 같고 산 같은 그런 효도를 받은, 바다 같은 그런 효도를 받은 느낌으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 김현정> 하늘 같고 바다 같고 산 같은 효도를 받은 느낌.
◆ 한승원> 저는 허재 아들이 허재보다 더 농구를 잘한다, 차범근보다 차두리가 더 축구를 잘한다.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웃음) 말했듯이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자식들이 훨씬 늘 잘하는 시대가 우리를 유쾌하게 하는 시대고 희망이 있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네요. 2년 전에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타면서 저하고 인터뷰 그날 아침에 하셨어요, 한 선생님. 이번에 한강 작가 '흰'이라는 작품으로 또다시 맨부커 상으로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은 당연히 들으셨을 테고 어떠셨어요?
◆ 한승원> 그 소식을 듣고 우리 강이한테 이야기했더니 '이번에는 안 줄 거예요,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 김현정> 한강 작가가요?
◆ 한승원>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줬는데 또 주겠느냐고. (웃음) 그런데 저는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거 아시죠.
◇ 김현정> (웃음) 참 유쾌한 분입니다. 한승원 선생님 제가 인터뷰하다 보면 항상 진지하고 유쾌하고 이 두 가지를 다 가지신 분이세요. 아니, 한강 작가는 워낙 인터뷰를 안 하는 분이라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분인지. 딸도 아버지랑 비슷합니까?
◆ 한승원> 숨어서 살려고 애쓰는 그 모습이 저는 아주 좋습니다.
◇ 김현정> 왜요?
◆ 한승원> 작가는 이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 김현정> 이끼요? 바위에 끼는 이끼?
◆ 한승원> 바위 속에, 그늘 속에서 사는 이끼 있잖아요.
◇ 김현정> 왜 이끼입니까?
◆ 한승원> 이끼처럼 그늘 속에서 살아야만 더 향기롭게 파랗게 큽니다. 이끼가 햇볕에 노출되면 말라죽어버려요. 작가한테는 이끼적인… 그런 게 있습니다. 저는 늙어서 되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인터뷰도 응하고 그러거든요.
◇ 김현정> (웃음) 그런데 딸만큼은, 한강 작가만큼은 촉촉하게 그늘 속에서 감수성 잃지 않고 작가로서 오롯이 지내기를 바란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 한승원> 가끔 어디서 강연을 개최하고 하면서 저한테 다리 좀 놔달라고 강연회 좀 응하게 해 달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제발 건드리지 말고 가만 놔둬라, 해요.
◇ 김현정> 그래도 한승원 선생님은 나와주셨잖아요.
◆ 한승원> 저는 되바라질대로 되바라졌으니까요. 숨길 것도 뭣도 없잖아요. (웃음)
◇ 김현정> 그런데 이렇게 나와서 시 한편 읽어주시고 좋은 이야기 덕담 한 마디 해 주시는 게 우리 청취자들에게,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거게 또 하나의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요, 선생님. 한강 작가한테도 좋은 소식 들려오기를 기대하고요.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한승원> 네, 감사합니다. 이 봄 꽃으로 피어나세요.
◇ 김현정> 고맙습니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 산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만나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김현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