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110억원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전면 거부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범위한 혐의에 대한 방대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에서, 조사 거부가 효과적인 대응책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뒤 사흘 만인 26일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고 검찰의 추가 조사에 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대면이라도 하자는 설득에도 아예 접견 자체를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진술거부권 행사는 당연한 권리지만, 검사 대면은 한 상태에서 묵비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아예 만나지도 않겠다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강제 구인을 통한 조사도 가능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신분과 정치적 논란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이 강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을 통해 관철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앞서 검찰 소환에 응한 것도 한 차례이고, 나름대로 성실히 임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지 혐의를 소명할 수 있다고는 기대도 안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미 혐의를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진술을 확보한 만큼, 이 전 대통령 측이 사실 관계와 법리를 따지는 정면승부 보다 '정치적 대응' 쪽에 방점을 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치 보복 프레임을 이어가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당장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수감상태에서도 측근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천안함 8주기를 기리는 메시지를 남겼다. "몸은 같이 못한다"며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부분이 눈길을 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천안함 8주기는 보수층에 의미 있는 이벤트"라면서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들이 자신을 지지해줄 그룹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시도가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적절한 행보인지는 차치하고 이 전 대통령 측에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일단 지난해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기소 이후 검찰 조사를 거부했지만 결국 징역 30년 중형이 구형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되레 전직 대통령 기소에 부담을 덜 수도 있다"면서 "기소부터 구형까지 '우리가 가진 증거는 이만큼인데, 피의자는 단순히 부인만 하는 게 아니라 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