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중 의열단 활동 '안경신', 임정 회의기록 암기 '오광심'
- 좌파 낙인으로 더 잊혀진 '주세죽,허정숙'
-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92명, 초상화&이름 열흘 간 탑골공원 전시
- 해외에 있는 후손들의 증언, 기록으로 남겨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3월 1일 (목)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희선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회장)
◇ 정관용>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를 보면 남성이 98%이고 여성은 2%에 불과하답니다. 그만큼 여성들은 독립운동 참여한 분들이 적었다는 얘기일까요? 그런데 ‘아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분이 있습니다. 지워지고 잊혀졌을 뿐 그 역사의 순간에 여성들은 언제나 함께했다는 건데요. 여성 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있어요. 거기에 회장을 맡고 계신 전직 국회의원이시죠. 김희선 회장을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 남자현 의사 초상화 (사진=국가보훈처 블로그 캡처)
◆ 김희선> 반갑습니다.
◇ 정관용>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언제부터?
◆ 김희선>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입니다.
◇ 정관용> 정확히 항일.
◆ 김희선> 항일.
◇ 정관용> 언제 만들어졌어요?
◆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로 명명하기는 4년 전이고요. 이번에 사단법인이 되면서 총회에서 앞에다가 항일을 붙였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4년 전에 처음 출범한 거군요.
◆ 김희선> 그렇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 이거를 처음 만들 때부터 회장을 맡으셨어요?
◆ 김희선> 처음부터 제가 맡을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의원 생활을 그만두게 되니까 이제 제가 친일 진상규명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었잖아요.
◇ 정관용> 국회에 계실 때.
◆ 김희선> 국회에 있을 때. 그걸 응원해 주시던 바깥의 역사학자들이라든가 이런 분들이 저하고 모임을 하고 있으셨는데 의원직 그만두고서도 김희선이 해야 될 일이 있다 하시면서 그러시면서 김희선이 여성운동가로서 정치에 참여했으니까 여성독립군들을 좀 봐야 되지 않느냐.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제가 개인적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사실 솔직히 유관순 누나, 언니밖에는 모르는데.
◇ 정관용>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 한 분.
◆ 김희선> 그렇죠. 그래서 깜짝 놀라서 제가 역사공부도 안 해서 제가 하겠느냐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면서 이제 그 어르신들이 책을 몇 권 주셨어요. 그래서 그 책을 제가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그냥 정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여성들이 일제 36년간에 그렇게 정말 투쟁을 했는데 이게 역사에 묻혀 있다니. 그게 그렇게 정말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해요. 그냥 그러면 이분들의 그 뜻을 계승하고 또 묻혀져 있는 분들을 어떻게 찾아내야 되는 게 그래도 국회의원이었던 저와 같은 사람이 해야 되지 않느냐 그런 얘기를 옆에서 역사학자 여러 선생님들이 응원을 해 주셨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지금 회장님께서도 이걸 만들고 회장까지 하고 계시지만 이거 하기 전에는 전혀 모르셨군요?
◆ 김희선> 그렇죠. 미안하고 창피하죠, 부끄럽고.
◇ 정관용> 하긴 우리 국민 지금 상당수가 그럴 거예요.
◆ 김희선> 죄송합니다.
◇ 정관용> 지금 제가 처음에 소개했습니다마는 국가보훈처 등록된 독립유공자 남성이 1만 2000명이고. 여성이
◆ 김희선> 1만 4600명.
◇ 정관용> 1만 4600. 여성이?
◆ 김희선> 여성이 292명. 이번에 6명 됐다고 하는데 제가 4년 전에 할 때는 242명이었어요.
◇ 정관용> 그 사이에 50명.
◆ 김희선> 그 사이에 50명이 늘어났죠. 그런데 저희가 노력을 해서 그런 것보다도 그렇게 저희가 그런 거 노력할 만큼 여력도 없었고요. 또 그렇게 할 만한 뭐가 뒷받침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그나마 이제 보훈처에서 노력도 있었지만 또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학자들이나 가족들이 신청도 하고 그래서 또 저희도 조금 노력을 하고. 그래서 이제 겨우. 그리고 이번에 처장님이 피우진 처장이 처음 되고 그러면서 상당히 많이 완화돼서 지금은 292명으로까지, 외국인들까지 합하면 296명인가 7명인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이게 공식적으로 등록이 되려면 연구자가 됐건 가족이 됐건 뭔가 기록과 뭘 찾아서 입증을 해야 되잖아요.
◆ 김희선>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게 그렇게 참 쉬운 일은 아니죠.
◆ 김희선>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김희선> 그래서 제가 한때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한 일에 대해서 그 가족들에 대한 구술.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종걸 의원 가족들의 구술이라든가 그러면 또 차용조 선생님의 가족들의 구술이라든가 죄송하지만 저희 집에 제가 자라면서 들은 이야기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퍼즐 맞추기처럼 맞춰보면 거의 90%가 비슷한 거예요. 예를 들면 어머니들이 할머니들이, 고모, 이모들이 독립군들이 내려오면 밤에 내려오면 빨리 옷을 만들어서 입혀 보내고 이런 이야기들. 그게 무슨 자랄 때 그냥 옛날 얘기처럼 듣던 얘기가 각 가정에서 소위 말하는 독립군들 또 독립운동가들, 혁명가들을 뒷바라지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다 묻혀 있더라고요.
◇ 정관용> 그렇게 뒷바라지야 너무나 많을 것이고 뒷바라지뿐 아니라 앞장선 분들도 또 많다는 거죠.
◆ 김희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항일여성독립운동을 기념하고 사업회를 하냐면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직접적으로 총도 쏘고 그야말로 화총도 만들고 이런 분들이 역사 속에 다 계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남자현 선생 같으신 분. 오늘 대통령께서.
◇ 정관용> 남자현.
◆ 김희선> 오늘 대통령께서 언급을 하시더라고요. 또 최초의 의병대장인 윤희순 의병장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고 이런 분들을 언급하셨는데 우리가 남자현 선생님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여성 안중근이십니다.
◇ 정관용> 좀 소개해 주세요, 어떤 분인지.
◆ 김희선> 손가락 두 마디를, 경북 분이신데 손가락 두 마디를 잘라서 피를 내서 그 당시에는 일본이 조선은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 이거를 국제사회에다 퍼질 때랍니다. 그럴 때 우리 남자현 열사는 손가락 두 마디, 세계에 알릴 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두 마디를 잘라서 조선독립원 이거를 신청해서 전하려고 그러다 미수에 그칩니다, 발각이 돼서.
◇ 정관용> 혈서를 써서.
◆ 김희선> 혈서를 썼거든요. 그래서 감옥에 가서 결국에는 그때 감옥살이 오래하시게 돼서 그 일로 나중에 돌아가시게 됐는데 이런 것이 역사에 묻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이런 역사를 어떻게 지금이라도 많이 발굴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사실은 큰 작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이제는 100년이라는 것을 지금 내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어느 정도 역사성에 현실적인 것 또 사실적인 것 이런 것들이 굉장히 큰 고민이기는 합니다.
◇ 정관용> 내친김에 남자현 선생 그다음에 여성 의병대장.
◆ 김희선> 윤희순, 최초 여성 의병대장이 계셨는데 이분의 경우는 당시에 여성 의병대를 여성 30명을 조직을 합니다.
◇ 정관용> 여성으로만?
◆ 김희선> 네. 그래서 여성의병가를 가르켜요. 지금도 나와 있거든요. ‘나가세 나가세 여성들 다 나가세. 나라 지키며 남자들 치면 이것도 여성 의병이 할 일이라네’ 이런 제목으로도 불리거든요. 그래서 저는 때때로 어디 가서 강의할 때는 최초의 여성 군인은 윤희순 의병장이 조직한 30명의 의병군이다. 그 당시의 인구와 그 당시의 마을의 거리 그 당시의 거리 이런 걸 따지면 여성 의병군이라고 해도 정말 과언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하죠.
◇ 정관용> 그냥 그러니까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의병대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 김희선> 그게 아니고요, 자주적.
◇ 정관용> 여성으로만 우리 만들어봅시다.
◆ 김희선>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목소리를 그때 이미.
◆ 김희선> 그럼요. 윤희순 선생님이 그 당시에 했던 거죠.
◇ 정관용> 이처럼 일반 국민들한테 잘 안 알려져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그런 것을 어떻게 쭉 하나하나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 게 이 기념사업회의 첫 번째 사업이겠군요.
◆ 김희선> 첫 번째 사업이기도 하지만 저희같이 정말 열악한 이런 사단법인 조직이 그 발굴해 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 많다는 걸, 그만한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현재는 일단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나라가 지금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상당히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그 삶과 투쟁과 역사를 자라는 젊은이들에게나 또 많은 일반인들에게 알리면서.
◇ 정관용> 교육사업?
◆ 김희선> 그렇죠. 교육사업도 하고 저희는 요즘에는 교육사업하기에는 또 찾아와야 교육을 시키잖아요. 자료도 만들어야 되고 그러나 요즘에는 주로 문화활동으로서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하는 것 중에 작년에 8월달에 3. 1혁명에서부터 8. 15 광복에 이르기까지라는 그런 슬로건을 걸고 여성 독립운동가들 그나마 사진이라도 있는 분들 그래서 그 당시 292명인데 133분의 초상화를 52명의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나머지 분들은 상징적인 그분들의 투쟁을 상징하는 것들을 그려서 또 잘라 조각도 하고 그렇게 해서 292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행진을 했어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 정관용> 초상화를 들고.
◆ 김희선> 들고. 그걸 광화문 세종대왕 기념 거기에서 서대문역사관까지 그렸거든요. 걸었습니다.
◇ 정관용>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부터.
◆ 김희선> 2. 4km인데 그날 비도 많이 왔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그후에 그 초상화를 들고 걸었던 학생들이 최소한 자기가 안고 걸었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기억을 한다는 거예요.
◇ 정관용> 당연하죠.
◆ 김희선> 얼마나 그게 산교육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늘도 저희가 이번에도 자원봉사자 학생들을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을 이번에는 우리가 이번에 3. 1혁명일을 맞이해서 그 당시의 함성을 노래로 만들어보자. 그래서 합창을 했었거든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교육의 방법을 그야말로 선전, 홍보도 하지만 참여시킴으로써 하는 것. 그러니까 지금 가르치신 게 누가 언제 뭐를 했다고 가르치는 건 아니거든요, 역사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하는 작업으로 좀 교육과 더불어서 하게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오늘도 그러면 초상화는 전시가 됐나요?
◆ 김희선> 그렇죠. 오늘은 133분의 초상화를 탑골공원 지금 한 열흘 동안 하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그 당시에 저희가 했던 걸 보실 수 있고 나머지의 133분을 뺀 분들은 이제 성함만 쭉 서서 걸어놨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강연회 이런 것도 쭉 꾸준히 해 오셨죠, 몇 년 전부터?
◆ 김희선> 그렇죠. 강연회를 저희가 작년 같은 경우에는 대륙을 휘날리던 여성 혁명가들이라는 좀 섹시한 제목을.
◇ 정관용> 대륙을 휘날리던 여성 혁명가.
◆ 김희선> 그래서 약간의 사회주의적인 그 당시에 이념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때가 아니니까.
◇ 정관용>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많았죠.
◆ 김희선> 그렇죠. 그런 분들에 대한 것이 또 역사. 그분들은 더더욱 역사가 묻혀진 정도가 아니라 그분들을 얘기하면 다른 식으로, 다른 안경으로 보는 겁니다. 작년에는 저희가 그런 분들을 주세죽이나 허정숙이나 이런 분들을 저희가 고명자나 또 알렉산드라스 상데비치라든가 김시명 장군이라든가 이런 분들을 제가 조명을 했었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지금은 교육하면 역사가 조금 많이 관심도 있어져서 많이들 오신다고 해도 저희 같은 경우는 많이 오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래서 저희가 50명쯤만 와줘도 좋겠다 그랬는데 140명이 오신 거예요. 그런데 깜짝 놀랐는데.
◇ 정관용> 강당이 꽉 찼겠네요?
◆ 김희선> 그렇죠. 너무 찼죠. 그래서 그 당시에 그걸 제가 조사해 보니까 역시 이 매스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왜 암살 있잖아요.
◇ 정관용> 암살, 영화.
◆ 김희선> 영화. 그리고 밀정. 그 밀정은 저희 교육생이 만들었습니다. 이준식 대표라고. 물론 그전에 관심 있었던 분이지만 각오하기는 그렇게 해서 영화가 되다 보니까 상당히 많은 그런 영화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달라질 뿐만 아니라 관심도 많아졌습니다.
◇ 정관용> 조금 아까 언급하신 그 좌파 독립운동가들 조명했다는 거에 주세죽, 허정숙.
◆ 김희선> 허정숙.
◇ 정관용> 주세죽 그분은 남로당 총책이던 박헌영의.
◆ 김희선> 박헌영의 부인이죠.
◇ 정관용> 부인, 그렇죠? 그리고 허정숙은.
◆ 김희선> 허정숙은 북쪽에서 장관까지 지내신 분이고요.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김희선> 그런 분들의 그 당시의 삶을 왜 조명하게 되느냐면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이 어떤 거라는 것을 표면적으로 그 당시에 보여준 인물들이거든요. 이제 그 속에 그야말로 독립이라는 것, 자주국가의 독립으로서의 선언이 가지는 것과 여성의 그 당시의 삶을 비교할 경우에 지금 세대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라는 것을 저희가 느꼈습니다, 이번 교육에서도.
◇ 정관용> 얼마 전인가 기자 출신 작가 조선희 작가가.
◆ 김희선> 그 선생님이 책을 쓰셨죠, 아마. 세 여성.
◇ 정관용> 세 여자라는 책의 주인공이 이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 정관용> 고명자 한 분 더 있었죠.
◆ 김희선> 그렇게 세 분이었죠.
◇ 정관용> 책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 김희선> 재미있게도 읽으셨겠지만 상당한 진보적인 분들의 그들의 생활이었죠.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걸 읽으신 분들이 그거 진짜인가.
◇ 정관용> 다 진짜죠.
◆ 김희선> (웃음) 그러게 말입니다.
◇ 정관용> 이런 일 쭉 하시면서 새롭게 만난 여성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우리 김희선 회장께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든지 제일 존경스럽다든지.
◆ 김희선> 제일 존경. . .
◇ 정관용> 우리 청취자분들에게 이분은 꼭 좀 알려야 되겠다는 이런 분 있으면 어떤 분 있을까요.
◆ 김희선> 안경신 선생님.
◇ 정관용> 안경신.
◆ 김희선> 이분은 함경도 분이신데 평안남도 함경도 양쪽 분이신데 그때 임신 7개월 때예요. 그럴 때 이런 분들이 의열단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그 일본의 소위 말하는 식민지 자기네 건물. 이런 것을 폭파합니다. 폭파하는 그런 일을 직접 참여하고 이런 일을 가지고 나중에 7년 살고 나와서도 아기 핏덩어리를 거기서 낳고 또 안고 나와서도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이 길을 가겠다. 이런 얘기를 하신 분들. 이런 것은 정말로 존경스러운 분이에요. 존경스러운 분이고 조신성 선생님 같으신 분은.
◇ 정관용> 조신성.
◆ 김희선> 그런 분은 학교에서 교장도 하셔서 그 당시로 봐서는 연령도 있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드셔서 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할 일은 자주 독립이다. 이거를 가르치는데 한 예화로 이렇게 학생들을 데리고 가다가 일본군들이 와서 잡아가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조신성 선생님이 그 일본군을 끌어안고 논둑으로 구르는 거예요. 그 사이에 젊은이들을 도망시키는 겁니다. 이런 거며 이런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하나하나 하자면 정말 이 시간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분도 계시고 이제 오광심 할머니 같은 경우는 저희 가족 중에 한 분이시기는 하지만 그 할머니는 회의를 해서 다음에도 알려야 되잖아요. 그러면 이제 임정에서 회의한 것을 가지고 몽땅 외워서 임정에서 하던 것을 그대로 해서 알린. 가지고 가면 잡히잖아요.
사단법인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 (사진=시사자키제작팀)
◇ 정관용> 기록을 남기면 안 되니까.
◆ 김희선> 기록을 남기면 안 되니까 머리에서 외워가지고 가는데 한 자도 안 틀렸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 정관용> 암기력이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 김희선> 그런 분들이 계셨고 얘기를 다. 정정화 우리 또 독립운동 임정의 할머니랑 안살림하던 그분의 경우는 끓여드릴 게 없어서 절절 매서 동냥이라도 해서 끓여줬다든가 이런 얘기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분들은 그나마 자손들에게서 또는 국가가 어떤 자료가 있어서 국가로부터 서훈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제 그런 것들이 저희 기념사업회에서 이제 가슴 아파서 어떻게 서훈을 실제 못 받는다 하더라도 인정받는 부분.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거. 7급부터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도 해 드려야 되겠다 그래서 이번에 4월 9일에는 국회에서 이종걸 의원님의 할머니, 이은숙 여사라든가 고모가 이규숙이라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그 사람은 15살에 감옥을 갑니다. 이규숙 고모라는 분들은. 그런 분들의 생활투쟁이 있거든요. 그런가 하면 또 한도순 여성 독립운동가 얘기는 그야말로 꿈에도 꿈에도라는 그런 정말 맺힌 이야기를 쓴 게 있어요, 그런 것들. 그다음에 또 이제 최무선 장군 얘기되고 있는 최무선 장군의 그분의 부인이었던 김성애라는 이런 분들의 삶을 하나씩 보면 이게 정말 또 이런 분들이 독립운동을 구체적으로 같이 돕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조국을 뒷바라지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제목으로 지금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테마를 따로 따로 해서.
◆ 김희선>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절대 98:2가 아닌 거죠.
◆ 김희선> 아니죠.
◇ 정관용> 50:50입니까?
◆ 김희선> 50:50이 넘죠. 이런 것을 자부하는 거예요.
◇ 정관용> 여성이 더 많아요?
◆ 김희선> 왜냐하면 한 집에 독립운동가가 나오면 아들도 하고요. 형제가 다 하잖아요. 그러면 둘 다 잡혀가면 여기는 며느리가 셋이에요. 그러면 셋들이 또 해요. 그런 사례들이 그냥 너무 많다 보니까 저희는 요즘에 생각, 요즘에 이렇게 하면서 3~4년 전부터 든 생각은 그 당시에 여성들이 역사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높으셔서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오직 한 일념으로, 그 일념으로 남자들 뒷바라지 하고 노부모 봉양하고 자식 키우고 경제활동인이니 농사 짓고 그러다 남편이 감옥 가면 뒷바라지 하고 자기가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이게 사실입니다. 이런 것들을 역사가 또 우리 후대들이 기억해 주지 못하면 정말로 나라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질문이 생기게 되죠.
◇ 정관용> 앞으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단기적이라도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 김희선> 목표가 있다면 지금 중국이나 미국이나 또 미국 하와이도 있지만 그런 데 흩어져 있는 미국 독립여성 가족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 대한 스토리를 들어서 다 외국어를 해요. 그러니까 어려움이 많죠. 그러나 이런 분들의 이야기나 그런 것들을 모아보는 일들. 그래서 어찌됐든 간에 여성 독립가들에 대한 삶과 투쟁을 역사 속에서 살려내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지금 아이들한테 제대로 안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 투쟁이 얘들의 자라는 정말 후손들에게, 자손들에게 독립운동이 가지는 의미가 역사 속에서는 어떤 것을 너희들에게 주고 있고 너희들은 무엇을 해야 된다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 매개 역할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하실 일이 많네요.
◆ 김희선> 너무 많습니다.
◇ 정관용> 자료 발굴, 정리, 또 교육.
◆ 김희선> 홍보.
◇ 정관용> 홍보. 우리 교과서 같은 데도 이런 건 별도로 다뤄줬으면 좋겠는데요.
◆ 김희선> 그렇습니다. 아마 저희 생각에는 이렇게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학생들의 또 요구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저희도 오늘 새롭게 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지.
◆ 김희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 정관용> 이렇게 좀 관심이 좀 가져질 것 같거든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김희선> 정말 그렇습니다.
◇ 정관용> 항일독립여성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을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희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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