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만에 갚은 차비, 당연한 일 참말로 쑥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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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울릉도 여행 중 여비 떨어져
- 흔쾌히 돈 빌려준 삼척 여관 주인
- 주소 잃어 못갚아… 38년 동안 마음에
- "이미 고인되셨지만 감사 표시 하고파"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정상구 씨

 

분노할 일은 많고 감사할 일은 적은 요즘인데요. 어제 인터넷상에서는 한 장의 편지 때문에 잔잔한 감동이 울려퍼졌습니다. 38년 전에 부부가 함께 울릉도로 여행을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비가 부족해진 거예요. 그래서 묵었던 여관 주인에게 여비를 꿨는데 최근에서야 편지와 함께 그 은혜를 갚은 겁니다. 도대체 38년 전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 그 편지의 주인공, 전상구 씨 연결을 해 보겠습니다. 전상구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전상구> 안녕하세요.

◇ 김현정> 38년 전이면 이게 몇 년도입니까?

◆ 전상구> 1980년 8월경입니다.

◇ 김현정> 1980년? 아내분하고 같이 울릉도로 여행 가신 거예요?

◆ 전상구> 네, 결혼을 늦게 해서 신혼 초였거든요. 집사람이 학교에 근무했기 때문에 방학이라서 울릉도를 한번 가봤어요.

◇ 김현정> 그런데 어쩌다가 여비가 부족해진 거예요?



◆ 전상구> 그때 임원항이라고 울릉도까지 최단시간 걸린다고 해서 거기로 갔는데 그때 파랑주의보가 내려가지고 일정이 좀 늦어져버렸어요.

◇ 김현정> 원래 예정되었던 게 3박 4일이라면 그게 5박 6일 이렇게 늘어진 거군요?

◆ 전상구> 네. 그렇죠. 그러다 보니까 여비가 떨어져버렸어요.

◇ 김현정> 그때는 신용카드 이런 거 없으니까요.

◆ 전상구> 그런 거 당연히 없었죠.

◇ 김현정> 가져간 돈이 딱 그건데 일정이 늘어나면서 돈이 부족해진 거예요?

◆ 전상구> 네. 그래서 울릉도에서 다시 임원항으로 돌아오기는 돌아왔는데 임원항에서 집으로 올 차비가 없더라고요.

◇ 김현정> 임원항이면 그게 삼척인가요, 강원도?

◆ 전상구> 삼척일 겁니다.

◇ 김현정> 삼척에서 댁인 밀양까지 올 차비가 없는 거예요.

◆ 전상구> 그러다 보니까 염치 불구하고 울릉도 가기 전에 묶었던 여관이 이원규 씨 여관이라고 기억이 되는데 그 집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돈을 빌렸어요.

◇ 김현정> 울릉도 가기 전에 삼척에서 잠깐 머물렀던 그 여관으로 다시 찾아가셨어요?

◆ 전상구> 달리 방법이 없었잖아요. 지금 같으면 온라인으로 금방 돈을 송금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요.

◇ 김현정> 그러니까. 흔쾌히 빌려주시던가요?

◆ 전상구> 제 기억으로는 그렇게 빌려준 것 같아요. 바로 갚겠다고 약속을 하고요. 근데 그 집 주소를 적어가지고 왔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은행 온라인 통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주소로 돈을 부친다고 했는데 본의아니게 주소 메모지를 잊어버렸어요.

◇ 김현정> 부칠 주소하고 이름하고 적어서 이쪽으로 보내드릴게요, 했는데 그 적은 쪽지를 잃어버리셨어요?

◆ 전상구> 쪽지를 잃어버렸죠. 잃어버려서 어떻게 갚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집에 찾아가기 전에는.

◇ 김현정> 그렇네요.

◆ 전상구> 그런데 저도 그 당시에 회사에 다녔던 사람이다 보니까 마음대로 찾아갈 수도 없었고 밀양에서 임원항까지는 거리도 상당하거든요.

◇ 김현정> 사실은 또 큰 돈이 아니니까 바쁘게 살다 보면 사실 잊을 수도 있어요.

◆ 전상구> 그런데 그때는 한두 밤 잤다는 걸로 돈을 빌려준 게 너무 고마워서 못 갚은 게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 김현정> 찜찜하신 거예요.

◆ 전상구> 찜찜했죠.

◇ 김현정> 그게 단돈 5000원이 됐든 1만 원이 됐든.

◆ 전상구> 그분들의 선의에 일종의 배신을 한 거거든요. 내가 틀림없이 갚겠다고 사정사정해서 빌려왔는데 그분들이 생각할 때는 '아이고, 너도 별 수 없는 사람이지.' 이런 식으로 아마 생각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상당히 못 견디겠는 거예요.

◇ 김현정> 그런데 쪽지는 발견할 방법이 없고? 근데 그러다가.

◆ 전상구> 그런데 그 혹시 쪽지를 잃어버릴 거에 대비해서 일기장이나 이런 노트에 적어놨나 봐요. 그거는 사실 몰랐는데 최근에 이사를 오면서 뒤지다 보니까 그게 딱 나오는 거예요.

전상구씨의 편지

 

◇ 김현정> 그러니까 쪽지에 하나 적어놓고 혹시 잃어버릴지 모르니까 내가 여기에 적어놔야겠다 해서 일기에다가 조그맣게 적어놓은 걸 깜빡 잊으셨던 거군요. 그런데 그걸 발견하셨어요, 일기를?

◆ 전상구> 최근에 발견해서 지금이라도 보내야겠다고 (주소를) 114도 물어보고 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읍사무소, 민원사무실에 전화를 했어요.

◇ 김현정> 잘 찾으셨네요, 민원사무실을.

◆ 전상구> 거기에 했더니 바로 연락 주겠다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한 2-3일인가 있으니까 연락이 왔어요.

◇ 김현정> 연락이 왔어요?

◆ 전상구> 이원규 씨라는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1994년도에 부인이 김도연 씨라고 계시는데 그분은 울산에 있는 자기 딸네 집이랑 임원항이랑 왔다 갔다 일한다고 근황을 얘기하더라고요.

◇ 김현정> 이원규 씨가 여관 주인 돈 빌려주신 그분이신데 그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사모님이 울산에 지금 딸네 집에 살고 계신다?

◆ 전상구> 김도연 씨라는 분이.

◇ 김현정> 어쨌든 찾으셨네요.

◆ 전상구> 네. 그래서 소장님을 통해서 그 마을에 이종근 씨라는 이장이 있는데 돈을 보내겠다 이러니까 그분한테 보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나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웃음) 오늘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네요.

◇ 김현정> 그렇게 된 거군요.

◆ 전상구> 나쁠 건 없지만 늦게 빚을 갚았던 그런 건데.

◇ 김현정> 좀 쑥스러우신 거예요?

◆ 전상구> 쑥스럽죠.

◇ 김현정> 그래서 이장님이 전달해 주시겠다라는 얘기를 듣고 돈을 부치셨는데 보니까 우체국 통상환으로 50만 원이나 부치셨어요?

◆ 전상구> 액수가 얼마가 적당할지 저도 잘 몰랐는데 그 당시 임원에서 밀양까지 사람이 오려면 50만 원까지는 안 들겠지만 그분들한테 고마움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이자로 따져서 할 수도 없고 모자르지는 않게 감사의 표현도 좀 전하고 싶고 그래서 보내드린 거예요.

◇ 김현정> 그러니까 이걸 지금 돈 빌려주신 이원규 선생님은 여관 주인 이원규 씨는 세상에 안 계세요. 그분이 받지는 못 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마음이 더 짠하네요. 이거 아주머니가 받으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 전상구> 아마 아주머니는 기억에도 없을지도 몰라요. 여관하니까 수많은 사람을 상대를 했을 테고요.

◇ 김현정> 그렇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거를 돈을 빌려주면서 내가 못 받아도 그만이다, 받으면 좋지만 아마 이런 심정으로 주셨을 거기 때문에 아마 기억에는 없으실 테지만 이거 받아들고는 얼마나 뿌듯하시겠어요. 쑥스러워서 출연도 안 하겠다는 걸 저희가 억지로 모셨어요.

◆ 전상구> 저는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이 메마른 세상에 이런 조그마한 일도 잔잔한 감동이 된다고 참말로 그렇다면 그것 또한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주저주저 하다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이렇게 했습니다. (웃음)

◇ 김현정> 잘하셨습니다. (웃음) 불신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사기 치는 사람 뉴스, 이런 것만 듣다가 38년 전에 어쩌면 안 갚아도 될지도 모르는 그 돈을 주인을 찾아서 갚는 이 훈훈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지고 뭔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신뢰라는 게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습니다, 선생님. 제가 대표로 감사드리고요. 이 시대에 살아 있는 양심이 되어 주셔서 그리고 김도연 아주머니, 여관 주인 사모님 만나러 가신다고 제가 들었거든요. 잘 만나고 한번 포옹도 해 주시고 사진도 찍고 이러고 오세요.

◆ 전상구>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38년 전 여관 주인에게 여비를 빌렸던 그 돈을 38년 만에 갚아서 화제가 된 분입니다. 밀양의 전상구 씨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CBS 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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