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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오래가는 변화, 제대로 된 변화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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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 또는 연대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만드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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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꾸는 이들과 함께 해 온 심상정 이야기 '난 네 편이야' 펴내
- "돼지 잡으러 다니던 시골 소녀… 대통령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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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대통령 되는 꿈은 곧 정의당이 집권하는 정치, 그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치"
- "오래 걸리지만 오래 가는 변화, 제대로 된 변화 만들고 싶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7년 12월 7일 (목)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심상정 의원(정의당)



◇ 정관용>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심블리'라는 애칭까지 얻으셨던 분이죠.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 <난 네="" 편이야=""> 이런 제목의 자서전 격의 책을 펴내셨네요. 그래서 정말 오래간만에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심상정> 안녕하세요.

◇ 정관용> 아직 60 안 되셨죠?

◆ 심상정> 아직 안 됐죠.

◇ 정관용> 그런데 벌써 자서전을 내세요?

◆ 심상정> 자서전이라기보다.

◇ 정관용> 자서전격 책, 제가 그렇게 소개했는데.

◆ 심상정>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보고드리는 게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 정관용> 왜요.

◆ 심상정>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에 제가 비록 5당 후보 중에서 꼴찌를 했지만 그런데 좀 많이 떴습니다. 그래서.

◇ 정관용> 심블리, 애칭도.

◆ 심상정> 그래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고 어떻게 25년 노동운동을 했냐. 이렇게 해서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 이후에.

그래서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으로 판단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되게 중요하죠.

◇ 정관용> 그렇죠.

◆ 심상정> 그래서 좀 의무라고 생각이 됐어요. 그래서 거칠지만 제가 살아온 스토리를 좀 써봐야 되겠다.

◇ 정관용>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아, 저 사람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살아왔지? 궁금해 하니까 책으로 보고드리겠다, 그거군요?

◆ 심상정> 네, 대선에 대한 보고서라기보다 심상정 삶에 대한 보고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책 제목이 <나는 네="" 편이야="">인데 제1부의 제목이 <나는 네="" 편이야="">더라고요. 거기서 내 편, ‘네’가 누구예요?

◆ 심상정> 제가 생각할 때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서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 또 변화를 조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죠.

◇ 정관용> 나는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편이다?

◆ 심상정> 네.

◇ 정관용> ‘시골 아이’가 시작입니다. ‘돼지 잡으러 다니던 소녀’.

◆ 심상정> 아마 요즘 청년들은 상상을 못할 것 같아요.

◇ 정관용> 왜 돼지를 잡으러 다니셨어요?

◆ 심상정> 제가 시골에 살았는데 그때도.

◇ 정관용> 파주죠, 파주?

◆ 심상정> 네. 오빠들을 서울로 유학을 다 보내고 주말만 되면 엄마가 바리바리 싸서 올라가셨죠.

◇ 정관용> 서울로?

 

◆ 심상정> 그런데 우리 어머님이 동물들을 많이 키우셨어요. 돼지를 많이 키우셨는데 돼지가 엄마가 없다는 걸 어떻게 기가 막히게 알아요. 그래서 주말에 엄마가 안 계실 때 그렇게 우리를 뛰쳐나오더라고요.

◇ 정관용> 도망가요?

◆ 심상정> 네,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열심히 쫓아다니면, 못 쫓아다니잖아요. 그러면 그 모습을 보면서 동네 어른들이 우리에다 갖다가 가두는 데 도와주시고 그랬죠.

◇ 정관용> 노는 친구들과 친한 모범생?

◆ 심상정> 아니, 제가 시골에 살다 보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시골에 있었거든요. 시골에는 학교가 한 학년에 한 반씩밖에 없는데 그래서 주로 산과 들 돌아다니면서 개구리 잡고 또 개울에 가서 멱 감고 이렇게 살다가 서울 와서 서울생활이 굉장히 답답했어요, 학교생활이.

◇ 정관용>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온 거예요?

◆ 심상정> 네, 그렇죠. 그런데 중고등학교 가니까 거의 여기는 입시 분위기고 오로지 공부하는 것 말고는 어떤 문화가 없다 보니까 제가 고등학교 때 어떤 출구를 찾은 게 야구장 다닌 거였죠. 그래서 고교 야구 리포터도 제가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심상정> 네. 그래서 야구인들 그래도 그때 많이 인연이 됐죠.

그런데 제가 다니던 충암여중이 당시에 충암고등학교가, 저는 여중을 다녔는데 충암고등학교가 고교야구에서 그래도 최소한 준준결승은 올라가고 결승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요. 잘했어요.

그래서 준준결승만 올라가면 여중생들을 다 동원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에. 그런데 거기 가면 탁 트인 공간에 그린필드에다가 또 홈런이라도 치면 그 통쾌함이 크지 않습니까.

◇ 정관용> 응원가도 막 하고.

◆ 심상정>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제가 야구장을 많이 다녔죠. 그래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서도 그 야구장을 못 잊어서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재수를 결심하고.

◇ 정관용> 대학은 아예 재수로 가겠다?

◆ 심상정> 네, 그래서 야구장도 다니고 또 학교에서 끝나자마자 종례시간부터 학원으로 쫓아가는 친구들 말고 좀 여유 있는 친구들하고 같이 이렇게 어울렸던 기억이 나요. 조용필도 많이 쫓아다니고.

◇ 정관용> 그러니까 여유 있게 고교생활을 보내고 대학은 아예 재수해서 간다?

◆ 심상정> 제 계획대로 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셨군요. 역사교육과 서울대학교 78학번이시고 그런데 ‘골치 아픈 여대생’이라는 챕터가 있어요.

 

◆ 심상정> 저는 이제 대학 들어갈 때 교육자가 돼야 되겠다. 선생님 돼야 되겠다 그 생각이 뚜렷해서 사범대에 갔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그때 한참 제가 78년도에 입학했으니까 79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고 80년도 광주항쟁이고 말하자면 독재정권의 말기시대라서 아시겠지만 학교가 굉장히 시끄러웠잖아요. 그래도 저는 갈 길이 뚜렷했기 때문에 데모하고 학생운동하고 하는 데 처음에는 좀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 정관용> 안 간다?

◆ 심상정>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결국은 그 독재정권하고 맞설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으려고 해도 당시에 <전환시대의 논리=""> 이런 것은 금서가 돼서 안 되고 또 아침이슬 같은 노래도 못 부르고 그다음에 이제 학교 강의실까지 정보과 형사들이 와서 진을 치고 또 제가 사귀고 싶은 남자들을 쫓아다녀보면 영락없이 운동권이고 그러다 보니까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귀고 싶은 남자친구를 포기할 수 없어서 제가 학회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 이제 그 세계에 들어가니까 더 센 운동권이 돼버렸죠, 제가.

◇ 정관용> 그렇죠. 아니, 그런데...

◆ 심상정> 그래서 이 길로 오게 된 겁니다.

◇ 정관용> 그런데 보통 데모하러 다니고 그럴 때는 운동권 여학생들은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하이힐 신고 다니셨어요?

◆ 심상정> 저희 언니가 미대 출신이에요. 그래서 이제 굉장히 미적 감각이 풍부한 분인데.

◇ 정관용> 언니 영향으로 멋 부리고 다니셨구나?(웃음)

◆ 심상정> 그게 아니라 언니 옷을 입고 다니게 됐다는 거죠. 언니 구두, 언니 옷을 빌려서 입고 다니다 보니까 제가 다니던 학교와 그 시절로 볼 때는 굉장히 좋게 말하면 멋있는 여학생이 돼버렸는데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제가 운동권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운동권은 하나같이 다 청바지에 운동화에 커트머리에 너무 획일적인 것 아니냐.

제가 그런 식으로도 좀 비아냥거리기도 했는데 제가 운동권이 돼서 하이힐 신고 서울대에서 신림 사거리까지 데모단을 쫓아다니다 보니까 진짜 발목이 시큰거려서 더 이상 못 뛰게 되고요.

그다음에 거리에 철퍼덕철퍼덕 앉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청바지로 갈아입게 되고. 그다음에 최루탄을 막 쏴요, 그때는. 머리가 기니까요. 온몸에 온 머리에 엉겨가지고 집에는 밤 늦게나 가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털어도 안 털리고. 그래서 머리도 커트를 하게 되고.

◇ 정관용> 자동적으로 커트머리, 청바지, 운동화.

◆ 심상정> 그래서 어느 날 보니까 제가 똑같아졌어요.

◇ 정관용> 학생운동 시절에 혹시 투옥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까?

◆ 심상정> 학생운동 시절에는 제가 오히려 주류 학생운동, 남학생 중심의 학생운동권에 맞서 제가 싸웠고요. 저는 노동운동 시작하면서 오랜 수배생활을 하게 됐죠. 9년 정도 수배생활을 했습니다.

◇ 정관용> 노동운동은 물론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그때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은 노동운동으로 많이 가긴 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꼭 노동운동으로 꼭 가야만 한다는 법은 아니었잖아요. 다른 활동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 내가 노동운동으로 가야 되겠다라는 계기가 된 건 뭡니까?

◆ 심상정> 제가 학교에서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학회를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남녀공학에서는 여학생들에게 기회가 없어요. 1학년 때는 다 모집을 하다가 3학년 학생운동 본격적으로 지도할 때 되면 남성 중심으로 다 되고 그래서 제가 거기에 이제 반기를 들고 여학생 학회를 만들었는데.

◇ 정관용> 여학생으로만?

◆ 심상정> 사회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그게 기치였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당시에 이제 지금도 대학생들이 농활은 있죠, 농촌활동하는 건. 당시에는 공장활동도 있었습니다.

◇ 정관용> 공활도 있었고.

◆ 심상정> 저희가 야학을 했는데, 당시에. 그 야학 온 여성 노동자들의 공장생활이 굉장히 궁금했기 때문에 겨울방학 때 공장활동에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안 나오고 25년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겁니다.

◇ 정관용> 왜 안 나오셨어요? 힘들지 않았습니까?

◆ 심상정> 굉장히 힘들었죠. 힘들었는데 들어가 보니까 굉장히 놀라운 세계였어요, 그 세계가.

그러니까 중학교, 초등학교 졸업한 친구들이 이제 서울에 와서 일도 하고 야간학교도 다니고 그런데 너무나 잔업, 특근, 철야까지 하니까요. 그렇게 고된 노동을 하고 또 너무나 박봉을 받고 또 작업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관리자들 상소리 해서 마음대로 무시하고 그런, 그런 환경 속에서 일하는 그 여성 노동자들이 얼마나 정직하고 근면하고 또 성실한지...

제가 그 친구들한테 참 정 많이 갔고 이 사람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거 다 법에도 있고 헌법에도 있는데. 그런 것을 내가 가르쳐야 되겠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많이 좋아지고 민주주의가 더 강해지지 않겠냐,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치 제 운명처럼 생각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들어가서 아, 이래서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 정관용> 체질에 맞으셨나 보네.

◆ 심상정> 체질이 아니라.

◇ 정관용> 강한 의지로.

◆ 심상정> 아니, 의지라기보다 제가 이 책에서도 말씀드리려고 했던 게 그런 건데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굉장히 특별한 사람 취급을 해요.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들 누구에게나 자기가 어떤 일을 했을 때 뿌듯한 감정, 뿌듯하고 자부심을 가질 때가 다 있거든요.

자기가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다 있습니다. 너무나 각박해서 내몰리는 거지.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특별한 이념이 강해서라기보다 제가 원래 하려고 했던 게 교육자였고 그거하고도 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 정말 그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높았을 때 아니에요?

그런데 노동자들하고 인연이 돼서 제가 의미 있는 삶을 찾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특별한 삶을 살게 된 거지 제가 특별난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제가 지역구에서 보면.

◇ 정관용> 아니요, 특별하십니다.

심상정 의원(사진=시사자키)

 

◆ 심상정> 정말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박봉 받고도 어려운 사람 후원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기 삶에 대한 어떤 자부심, 뿌듯함 그런 것을 그때 당시 저는 좀 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몰입했다 그렇게 생각해요.

◇ 정관용> 노동운동 하겠다고 공장 가셨던 분들 가운데 특히 또 여성분들의 경우는 우선 육체적으로 힘들고 그래서 오래 못 버티신 분들이 대부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꿋꿋이 버티시고 또.

◆ 심상정> 저도 약간 탈진해서요. 그때 당시에, 젊은 나이인데도. 왜냐하면 워낙에 노동이 심하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조직활동을 하니까.

◇ 정관용> 밤에도 쉬지 못하고.

◆ 심상정> 퇴근해서 공장 친구들하고 또 무슨 소그룹도 하고 그리고 끝나고 와서 또 활동가들끼리 토론도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거의 하루에 한 서너 시간씩 자고 또 저쪽에서 계속 조여오니까요.

또 경찰 정보과에서 찾아다니고 그러니까 신경 쓰고 그래서. 어느 날 이렇게 머리 꼭대기에서 찬바람이 계속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게 탈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저도 한 6개월 고생했어요. 그 나이에.

◇ 정관용> 그리고 이제 25년 노동운동 그리고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정치 그리고 대선후보에 이르기까지는 대부분 다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대통령 되는 게 꿈이죠?

◆ 심상정> 뭐 대통령 돼야죠. 꿈인데 제가 대통령되는 꿈은 곧 정의당이 집권하는 그런 정치를 꼭 만들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치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저도 외국에 많이 안 나가봤지만 우리 대한민국을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른 분야 빼고 정치 분야만 얘기하면 정치 분야처럼 이렇게 잦고 소란스러운 변화가 많은 데도 없어요.

87년 이후에 중앙선관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수가 무려 200개가 됩니다, 200개. 아마 우리 시민들 잘 모르실 텐데 5년 전 대통령 선거 때 후보들이 소속돼 있던 정당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름은.

그래서 늘 변화하지만 결코 변화하지 않는 우리 정치. 그러니까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건 보수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런 생각을 해요.

◇ 정관용> 본질은 안 변하고 겉모양만 바뀐다.

◆ 심상정> 그러니까 작고 빠른 변화가 꼭 필요한 변화, 본질적인 변화를 늘 가로막아왔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 심상정> 그래서 오래 걸리지만 오래 가는 변화,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저와 정의당이 이런 어려운 길을 자임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난 촛불 지나면서 저는 우리 사회의 변화, 특히 정치적 변화의 시간이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앞으로.

◆ 심상정> 네. 여전히 국회에는 촛불 이전의 정치 질서가 지배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 국민들이 무엇이 걸림돌인지를 또 보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어떤 식으로든지 앞으로 변화가 있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요즘에 고등학교 청소년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요. 다녀보면 아무리 학교 담벼락으로 정치하고 담을 쌓고 차단해도 지금 우리 청소년들, 정치 안으로 이미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시민들의 투표 행태와 관련해서 될 사람 밀어주자 이런 얘기 많이 했지만 지금은 어르신들도 그런 얘기 안 합니다. 저는 촛불의 변화가 단지 정권 교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

◇ 정관용> 정치의 근본적 변화로 갈 것이다.

◆ 심상정> 자기 삶이 고단하고 절박하기 때문에 내 삶을 바꾸는 정치를 우리 시민들이 기필코 이루어나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믿음으로 저와 정의당도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려고 하고요. 또 국민들께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저희가 잘 갖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제가 연말까지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 어떤 인터뷰도 안 한다고 선언을 했고 제가 관심을 갖는 현안은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그래서 그 선거제도 개혁을 어떤 식으로든지 이루어서 민심 그대로 국회가 구성될 수 있게 그런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저희 역할도 좀 더 커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 정관용> 지방선거 다음 총선에는 분명히 획기적인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 심상정> 지방선거는 당장에 저도 변화가 어려운데.

◇ 정관용> 그렇다면 정의당이 불쑥불쑥 클 것이고 심상정 대통령도 멀지 않았다, 이 말씀.

◆ 심상정> 2020년도 국회의원 선거 때 선거제도가 바뀐다면 저는 2020년도에 우리 정의당이 제1야당을 목표로 뛴다 이렇게 계획을 갖고 있고요. 국민들께 지금 민주당이 집권당 아닙니까? 제1야당이 자유한국당인 대한민국 정치와 제1야당이 정의당인 대한민국 정치를 한번 상상해 보시라, 그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잘하고 있는지 한 말씀 해 주시고 만약 심상정 대통령이 된다면 이 점이 가장 달랐을 것이다. 그거 한 말씀 해 주시죠.

◆ 심상정> 일단 이제 대통령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고 보고요. 그러나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있더라도 통치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 말고.

◇ 정관용> 국회가 안 움직이니까.

◆ 심상정> 결국 제도와 정책 또 예산 뒷받침돼야 할 국회에서 지금 막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국민들도 잘 보고 계실 것 같아요.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국회가 어떻게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말씀 드리고요.

제가 대통령 잘하고 계신데 문제는 국회가 뒷받침이 안 되죠. 그래서 무조건 반대로 뻗대는 야당들도 문제지만 또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여소야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에서 어떻게 국정운영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지난 대선의 아주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습니다.

◆ 심상정> 그런 점에서 보면 좀 더 문재인 정부가 국회를 파트너십으로 삼을 수 있는 적극적인 협치 또는 연대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만드셨으면 좋았지 않았겠나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 정관용> 초기부터 협치와 연대 구조를 딱 만들었으면.

◆ 심상정> 물론 쉽지는 않은데요. 저는 뭐 최소한 자유한국당은 무조건 반대니까 할 수 없고 바른정당까지는 그것이 연정이든 또는 정책공조든 최대한 끌어안아서 집권 1년차, 이번 정기 국회 때 공수처법이나 또 최저임금을 뒷받침하는 이런 필수법안들을 다 좀 처리를 하고 또 그렇게 다수를 확보하고 있어야 트럼프에게도 당당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좀.

◇ 정관용> 아쉽다.

◆ 심상정> 아쉬움은 있습니다.

◇ 정관용> 심상정 대통령이 됐다면 그걸 만들었을 것이다?

◆ 심상정>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점적인 그런 과제로 삼았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들을게요. 2020년 총선에서 제1야당 정의당이 목표, 꼭 이루어내시길 기대하면서.

◆ 심상정>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 정관용> 지켜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심상정> 감사합니다.

◇ 정관용>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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