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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는지 모르겠다"… 실효성 없는 '교원능력개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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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8년, 모르는 학부모 태반… 일면식 없는 교장(校長)에 '최고점' 클릭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가 11일 '교원능력개발평가'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김민정(38·여)씨. 난생 처음 '교원능력개발평가'라는 것을 해보고는 "이런 걸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학교 교육에 학부모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게 아니잖아요. 기껏해야 공개수업이라든지, 아이를 통해서 듣는 게 전부인데. 선생님의 교육방식에 대해 평가하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냥 모두 '매우 그렇다'에 체크하고 말았죠."

하물며 담임 교사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없을진데, 평가 대상에는 교장, 교감, 교과 담당 교사까지 포함돼 있어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김씨는 "교장·교감 선생님은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냐"며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교육활동소개'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평가가 어려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서울 모 초등학교가 실시중인 학부모 대상의 '교원능력개발평가' 문항들. (사진=독자 제공)

 

◇ 이름·얼굴도 모르는데 평가를?… 낮은 참여율 '당연'

1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8년째 시행중인 '교원능력개발평가'가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수 년 째 개선되지 않아 평가주체인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평가를 통해 교원의 교육활동 전반을 진단, 전문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이지만, 교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학부모 입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단위학교별 학부모, 학생이 교장 등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족도 조사'와 교원 간 상호 평가하는 '동료교사 평가'로 나뉘어 매년 11월 중 시행된다.

'만족도 조사'는 학부모가 교장, 담임 등 3명 이상 교원을 대상으로 각 교원 1명씩 객관식 5~6개와 주관식 2개 문항에 답하는 형식으로, 객관식의 경우 가장 낮은 1점(매우 그렇지 않다)부터 최고 5점(매우 그렇다)을 부여할 수 있다.

상당수 학부모들은 '평가에 참여해달라'는 학교의 요청에 떠밀리듯 참여하고 있지만 '교장선생님은 학부모 의견을 반영해 학교 운영계획을 수립한다', '교장선생님은 학년 배정 시 선생님들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다' 등 내부 사정을 잘 알아야 답할 수 있는 문항들을 접할 때면 난처해지기 일쑤다.

경기 용인에서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심모(43‧여)씨는 "엊그제 학교에서 '참여율이 6%밖에 되지 않으니 꼭 참여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익명 평가라 해도 혹시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모두 5점을 눌렀지만, 이름도 모르는 선생님을 평가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경기 성남에서 고2 자녀와 함께 평가에 참여했다는 이모(50‧여)씨는 "(평가가) 유명무실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교원평가를 학부모들이 아무리 정성껏 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영되지 않는다"며 "중·고등학교의 경우 굳이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들 평가로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사진='교원능력개발평가' 홈페이지 캡처)

 

◇ 교사 90% "폐지 해야"… 교육부 "당장 어려워"

학부모, 학생의 참여 의사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지는 '만족도 조사'와 달리 '동료교사 평가'는 교원들의 필수 업무로, 이에 대한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교원별 최종 평점에 따라 '우수교원'(4.5점 이상), '일반교원'(2.5~4.5점), '지원필요교원'(2.5점 미만)으로 구분, 교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등급'이 매겨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평점이 낮으면 최장 6개월간 '능력향상연수'를 받아야 하는 등 학교 현장의 갈등을 초래하는 '교원통제 정책'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최근 전국 교원 1만6천299명을 대상으로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유지·폐지 여부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전교조 소속이 아닌 교원들이 더 많이 참여한 이번 조사결과 응답자의 90.4%가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불필요한 업무 가중'과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왜곡', '교원의 사기 저하', '교사, 학생, 학부모 간 관계 왜곡' 등이 꼽혔다.

하병수 전교조 정책기획국장은 "(설문조사에서 보듯) 교원평가 자체가 실효성이 없다는 것에 교원들의 입장은 분명한 것"이라며 "교원평가에 피드백, 협력, 소통과 같은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교사 개인이 수업을 잘했냐, 못했냐를 평가하고 끝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료교사 평가의 경우 선생님들 입장에서 진정한 소통이나 협력을 방해하고 오히려 실적이나 서로에게 잘보이기 위해 서로를 통제하는 것에 귀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교원능력개발평가'에 대해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가) 결과를 갖고 선생님들의 역량강화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개선해 나가는 것은 좋겠지만, 수년 간 끌어온 제도를 즉각 폐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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