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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이 밝힌 진실…제주 화가 변사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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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람 ①] 제주동부경찰서 강경남 형사과장 "질긴 놈이 잡는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쏟아진다. 현장엔 사건에 얽힌 자와 진실을 찾는 사람, 언론이 뒤섞인다. 제주CBS 노컷뉴스는 [사건&사람]을 통해 제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와 이슈를 심층 취재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소개한다.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사진=자료사진)

 

지난 2010년 2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50대 화가 A 씨가 숨진 채 발견된다. 지인이 연락이 닿지 않아 A 씨의 집에 갔다 숨져있는 것을 경찰에 신고한 것.

추운 날씨였지만 시신은 이미 부패가 진행 중이었다. 전기 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있었던 탓이다. A 씨는 발견 당시 옷과 양말도 착용하고 있었다.

시신은 외상 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변색됐고, 흉부에는 가스가 차있었다. 지독한 냄새가 방을 뒤덮었다.

당시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현관 출입문이 내부에서 잠겨있던 점, A 씨가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날 지인들에게 감기약을 사달라고 한 점, 지병을 앓았던 점 등을 이유로 사건을 타살 혐의점이 없는 단순 변사로 봤다.

가족이 없었던 A 씨의 시신은 조카가 넘겨받았고, 조카도 부검을 원치 않았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듯했다.

◇ "죽은 삼촌 통장에서 수백만원 인출됐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자료사진)

 

사건 발생 한 달 뒤 A 씨의 조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죽은 삼촌 통장에서 돈이 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서귀포경찰서 강경남 형사계장(현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장)은 전화를 받고 "타살이라는 직감이 왔다"고 말했다.

서귀포 전 형사가 사건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사망 추정 날 성산읍 삼달리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A 씨의 계좌로 오토바이 헬멧을 쓴 사람이 돈을 인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범인은 돈을 인출했고 비밀번호도 알았다. A씨를 잘 알고있는 사람이라고 추정하고 탐문 수사를 벌였다. 촌 지역이라 CCTV도 제대로 없었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현장에 가 모든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은 증거가 나오지 않자 사진에 나온 유일한 증거인 중국산 헬멧을 추적하기로 했다.

동일한 '헬멧'을 찾기 위해 형사들이 도내 전역에 있는 오토바이 업체를 추적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 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뤄진 수사였다.

하지만 증거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마찬가지였다. 인원은 없고 수사 범위는 광대했다. 열심히 발로 뛰었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무리한 수사였다고 생각하던 찰나, 우연치 않게 단서가 포착된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수사를 마치고 성산읍에서 서귀포 경찰서로 복귀하던 중 동일한 헬멧을 착용하고 오토바이를 몰던 관광객들을 봤다. 20대 관광객들로 기억한다. 너무 많이 봤기에 같은 제품이라는 걸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강 계장과 형사들은 관광객에게 헬멧에 대해 탐문하고, 곧바로 제주시내 렌터카 회사로 향했다.

이곳에서 사용자 조회를 해보니 숨진 A 씨의 지인 B 씨가 오토바이가 아닌 차량을 빌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B 씨는 A 씨가 제주에 정착할 때 도움을 준 인물로, 이미 1차 조사에서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제주도 내 전체 방범용 CCTV를 분석했고, B 씨가 빌린 차량이 A 씨가 숨진 것으로 추정되던 날 번영로를 통해 성산읍으로 향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경찰수사결과 B 씨의 계좌로 A 씨가 사망일로 추정되던 시기에 수백만원의 돈이 입금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B 씨를 체포하고 12시간에 달하는 조사 끝에 결국 자백을 이끌어 냈다.

(사진=자료사진)

 

"정착 할 때 도움을 줬음에도 내가 어려울 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빌려준 돈도 받지 못했고 나를 무시했다. 화가 나 욱하는 마음에 주먹으로 때렸는데 쓰러졌다."

B 씨는 쓰러진 A 씨 위에 이불을 덮고 출입문을 잠근 뒤 뒷문으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통장 비밀번호는 과거 A 씨의 부탁으로 돈을 인출해준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B 씨는 성산읍 삼달리와 제주시 함덕 은행에서 2차례에 걸쳐 돈을 인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해보니 범인은 헬멧을 바다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헬멧을 쫓다 보니 범인을 잡았는데, 사실상 관광객이 쓰고 있던 헬멧은 수사와 어떠한 관련도 없었다. 죽음을 당한 분이 범인을 잡으라고 헬멧을 볼 수 있게 해준 게 아니었나 싶다.”

강경남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장 (사진=문준영 기자)

 

범인을 잡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현장을 발로 뛴 형사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강 과장은 "당시 수사를 책임졌던 양수진 과장(현 제주지방경찰청 강력계장)과 서귀포 형사들이 있었기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그분들과 함께 일한 게 행운이었다"며 사건 해결의 공을 동료 형사들에게 돌렸다.

◇ "질긴 놈이 잡는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제주에서 발생한 변사사건(자연사 제외)은 지난 2014년 355건, 2015년 314건, 2016년 308건이다. 하루에 한 건 가까이 변사가 발생한다.

강 과장은 "실제 변사사건 중 타살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가 변사 사건처럼 혹시 모를 범죄와의 관련성 때문에 현장을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변사 현장에 나가는 형사들과 과학수사팀이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다"며 도민들의 격려를 당부했다.

강경남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장 (사잔=문준영 기자)

 

경찰에 입문한지 20년. 강 과장은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한다.

"머리가 좋다고 범인을 잡는 게 아니다. 범인은 질긴 놈이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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