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전 비서실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세번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기 전 실장의 국정농단 행위도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굴욕적 협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12.28 위안부 협정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사실상 이를 인정해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여론의 새로운 타깃이 될 전망이다.
이 전 실장은 굴욕적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정대협과 시민단체, 종교계의 움직임에 대응해 여론공작을 지시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안그래도 좁았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열린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밀실 협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이병기 전 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 간의 8차례의 밀실 합의 결과였다고 밝혔다.
이 전 실장이 국가정보원장이던 2014년 말에 첫 회담을 시작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옮긴 뒤에도 7차례 회담을 진행했으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위한부 합의 창구는 이병기 실장'이라고 특별지시까지 했다는 게 박 의원 질의의 요지였다.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 혁신 TF에서 점검한 결과 그런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면서도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한일 위안부 합의의 당사자가 이 전 실장임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부터 외교부 주변에서는 이 전 실장이 주일 대사 때의 인맥을 바탕으로 욕적 협상을 진행한 장본인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지만 외교부 장관이 이를 인정함으로써 베일에 쌓였던 위안부 합의 퍼즐의 상당부분이 맞춰지게 됐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이 협상 진행 과정을 보고받고 최종 합의문에도 결재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굴욕적 밀실합의의 궁극적 책임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있지만 이 전 실장도 잘못된 협상의 직접 당사자이자 책임자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됐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 전 실장의 책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안부 합의 이후 급격히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정대협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단체를 마치 반정부세력처럼 묘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여론공작을 지시한 사람도 이 전 실장이었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실장은 누리과정 예산 책임을 지역 교육청에 떠넘기면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여론공작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1월 22일에 작성된 '비서실장 지시사항' 문서를 보면 "여론 흐름이 이슈향배를 좌우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며칠 동안 교육청, 시도의회의 무책임성을 집중 부각하고, 건전 학부모단체 등도 교육청의 예산편성을 강하게 압박하도록 할 것"이라고 돼 있다.
이 전 실장은 또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를 전후로 "보수단체가 폭력집회 엄정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최대한 결집된 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전달되게 할 것"등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