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튜버 '책읽찌라' 이가희 씨.
1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게임, 먹방, 영화, 아동, 음악, 문화,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SNS와 동영상 플랫폼, 팟캐스트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책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북튜버 혹은 북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북튜버는 책(Book)과 유튜버(Youtuber)의 합성어이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북튜버가 바로 ‘책읽찌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가희(31) 씨이다.
또박또박한 그의 말투나 발성도 전문가 급이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편안하지만, 보다 훌륭한 재능은 줄거리를 요약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몇 달 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본 그의 영상에 꽂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가 제작한 영상을 찾아보고 또 찾아봤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이나 실용 분야를 선호하지 않는데, 그가 전하는 책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 책을 구해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이나 금융 용어도 ‘책읽찌라’를 통해 들으면, 술술 들렸다. 또 추리소설을 소개할 때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굳이 표현하자면 출판계의 김생민이랄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2만 5000여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책읽찌라’는 인기가 높아지면서, 활동 영역이 온란인에서 오프라인 확장됐다.
유명 저자의 북 콘서트 사회를 맡거나, 교보문고나 리브로와 같은 서점과 함께 활동하기도 한다.
애청자로서 그의 영상을 꾸준히 구독하다, 문득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책읽찌라’는 무슨 의미일까부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을 제작했을까, 책을 읽고 싶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비법 등등.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책을 모바일에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읽찌라’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이가희라고 한다.
▶ 북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익숙한 단어는 아닌데, 북튜버가 뭔가.= 지난해 말만 해도 책을 전문적으로 소개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았다. 해외는 많고 다양하다. 추리소설만 전문적으로 하는 등. 북과 유튜버의 합성어로, 책 콘텐츠를 나누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 ‘책읽찌라’라는 닉네임이 가장 먼저 꽂힌다. 무슨 의미인가.= 중어중문을 전공했는데, 이름 ‘이가희’를 중국어로 부르면 ‘리 찌아시’(Li jiaxi)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찌라시’라고도 불렀다.(웃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찌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보통 콘텐츠 제작자들이 ‘OO 읽어주는 여자’ ‘OO하는 남자’가 많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책 읽어주는 찌라’라고 한다.
'책읽찌라' 페이스북 페이지.
▶ 북튜버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에는 ‘원센텐스’라는, 책에 있는 좋은 문장을 쉽게 저장하고 관리하는 모바일 앱을 시작했는데, 이 유틸리티를 독자들에게 홍보할 콘텐츠가 필요했다. 팟캐스트, 카드뉴스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부터 페이스북에서 라이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야근을 하던 중 한번 테스트 방송으로 좋아하는 소설을 꺼내 읽었다. 주변에서 반응이 좋아서 매일 밤 10시 30분부터 11시까지 6개월 정도를 주5일, 120여 회, 5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게 시즌 1이었다.
▶ 그냥 책을 쭉 읽어주는 방송이었던 건가.= 요약해서 라이브로 읽어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페북 라이브가 그다지 좋은 전달 방법은 아니었다. 동시 접속자 수나 도달률도 많은 편이었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듣지 않고,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페북 타임라인 특성과 라이브가 책 읽기 콘텐츠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시즌 2에서는 다른 시도를 다양하게 했다. 예를 들면 어학 책을 쓴 저자를 모셔서 가르치거나, 저자와 인터뷰를 한다거나, 독서 모임 실황을 중계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저자가 나와 독자와 ‘아이콘택트’를 하는 것은 좋은 콘텐츠인데, 나머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시즌 3에서 지금과 같이 3분 정도의 책을 요약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
▶ 모바일 앱도 그러하고, 계속 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다룬다. 원래부터 업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나.= 그건 아니다.(웃음) 책을 좋아는 했지만, 사실은 소설보다는 실용서를 많이 읽었고,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는 편이었다. 원래 통신사에서 IT 관련 일을 하고 싶었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2013년 7월 회사를 나와 처음 ‘원센텐스’를 시작했다.
앞으로 개인의 데이터베이스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거라고 봤다. SAP이나 ERP로 개인 데이터를 관리하는 게 회사 자산을 관리하는 것처럼 중요해질 것 같아, 처음 시작한 아이템이 ‘원센텐스’였다. 책뿐만 아니라 개인이 소비한 영화, 드라마, 음악을 다 볼 수 있게 했다. 이중 사용성이 가장 높은 게 책이라 판단해 책에 조금 더 집중했고, 그렇게 3~4년을 하다 보니까 이 시장의 문제점이나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게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북튜버 '책읽찌라' 이가희 씨.
▶ 지금까지 만든 책과 관련한 영상 콘텐츠가 몇 개인가.= 250여 개 정도이다.
▶ 그러면 250권 정도를 소개한 건데, 소개할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처음에는 주 독자가 25~32세 직장인들이어서, 그들에게 맡는 자기계발이나 마케팅 위주로 했다. 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해외 CEO나 해외 트렌드 관련 책을 많이 소개했다. 그러다 가끔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내면 그것을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했는데, 호응이 좋았다.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들에 대한 호응도 좋다보니, 유저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하게 되더라. 최근에는 초심으로 돌아와서 ‘책읽찌라’에서는 어떤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 주로 신간을 소개하나.= 주로 신간 위주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 관련 인스타그램이나 책 전문 블로거들의 글을 많이 찾아본다.
7일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진행된 김홍신 작가와 북토크에서 '책읽찌라' 이가희 씨가 사회를 진행 중이다. (사진=김원유 PD/노컷뉴스)
▶ 책을 선정해서 읽고 요약하는 대본을 쓰는 그 과정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텍스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 잘 읽었다. 또 아무리 미사여구가 많아도 사건 위주로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식으로 잘 요약하곤 했다. 그 요약한 것을 위주로 시나리오를 정리하는 데 하루에서 이틀 걸린다. 이어 촬영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촬영하는데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3분짜리 영상을 제작하는데, 원테이크로 15분 정도 촬영한다. 편집은 다른 친구가 해준다.
▶ 페북을 보면 영상에 대한 독자들 댓글이 많더라. 주로 어떤 반응이던가.= 일단 다른 콘텐츠에 비해 악플이 없는 편이다. 내가 직접 나와서 아이콘택트를 해서 그런가.(웃음) ‘목소리가 조곤조곤해서 자기 전에 듣기 좋아 습관적으로 듣게 된다’, ‘어머니가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데 영상이 재밌어서 가족끼리 돌려 봤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 ‘책을 한동안 못 봤는데 이 영상 덕에 관심이 생겨 책을 사서 읽게 됐다’는 댓글도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고 반응해 줄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낀다.
▶ 나도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얻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며 힘든 건 없나.= 힘든 건 없다. 글을 읽고, 쓰고, 말을 하는 게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 부럽다.(웃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주는 영상을 왜 찾아본다고 생각하나.= 누군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게, 자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무언가 얻는 효율이 높은 콘텐츠 소비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종일 일하는 데 에너지를 과잉해 쓴다. 집에 들어오면 기운이 없어 쉬어야 한다.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을 여력이 없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영상을 찾아본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런 고민은 있다. 책을 짧게 요약해주는 게 궁극적인 지식이 된다거나, 깊이가 있다거나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지향점에 대해 고민한다. 나를 통해 책을 읽게 할 수는 없지만, 그 짧은 영상에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한다.
나는 '책읽찌라'를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질문, 인문학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고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런 콘텐츠를 했을 때, 반응이 적더라도 서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을 보면 짜릿함을 느낀다.
'책읽찌라' 방송 중. (캡처 사진)
▶ 토론이 일어난 최근 콘텐츠는 뭔가.= 담배세 인상과 관련한 콘텐츠다. 단순히 담배세 인상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소비세와 소득세에 대한, 사실 정답이 없는 이야기지만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으로 정치, 여성 등 건드리면 안 되는 주제들이 있는데, 나는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누고 싶다. 긴 댓글이 달리며 토론이 이뤄질 때 보람을 느낀다.
▶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점점 책을 보기 힘든 시대 같다. 책 관련 콘텐츠 제작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 사실, 매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TV나 인터넷이 나왔을 때도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책을 안 읽는다고 사람들이 사유를 안 하고 바보가 된다는 주장에는 의구심이 든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우리에게 있는데, 지식을 향유하고 공유하는 방법은 다양한 매체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사실 ‘책읽찌라’로 전하는 영상에서 완결성을 추구한다. 기존 책 추천 콘텐츠들이 내용을 소개한 뒤 좋으니까 ‘읽어보세요’라고 한다면, 나는 ‘읽지 않고’ 영상만 보더라도 한 가지라도 알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러다 더 알고 싶을 때 책을 찾아 읽어보면 된다.
물론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더 행복해지고 즐거워진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행위이다. 하지만 책‘만’이 인류에게 최고의 자산이고 최고의 방법이냐는 데에는 의문을 갖고 있다.
▶ 그럼에도 책을 읽고 싶어하지만,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읽찌라’의 책 읽는 방법을 소개해 달라. = 그런 질문을 메시지로 많이 받는다. ‘책이 손에 안 잡혀요’, ‘못 읽겠어요’ 등. 그러면 “읽지 마세요”라고 답하거나 “만화책부터 보라”고 한다. 강박이 되면 그 다음부터 더 읽기 싫어진다.
나의 경우는 책 읽을 때 항상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포스트잇 플래그로 표시를 한다. 메모리가 부족해서 기억을 잘 못한다. 그래서 밑줄을 치고, 표시해 둬야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고, 또 에버노트에 정리해 둔다. 정리충이라고 보면 된다. 다 기억을 못하니 정리를 하게 되는 좋은 습관이 든 것 같다. 그런데 이 방법의 단점은 행간에서 오는 의미를 기억하기에는 부족하다.
아, 또 하나 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라이브를 하는 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여러분도 매일 방송을 해보세요”라고 답했다. 안 읽을 수가 없고, 방송을 하기 위해 가지를 치고 핵심만 요약해야 한다. 하지만 추천드리는 방법은 아니다. 오랜 시간 곱씹으며 읽는 게 맞는 분도 있다.
▶ ‘책읽찌라’ 방송을 하면서 삶에 변화가 생긴 게 있을 것 같은데. = 책을 많이 읽으니 지적으로 성장했느냐 묻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다만 책을 많이 읽으니 마음이 편해지고, 욕심이 버려졌다. 그걸 느끼면서, 책이 주는 가장 큰 효용은 더 좋은 사람,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구나를 느꼈다. 작가들을 만나는 것도 정말 좋다. 그분들 사인을 받아서 모으고 있다.
▶ 어떤 작가들을 만났나.= 정유정, 김탁환 작가 등을 만났다. 정말 좋은 건 책 아래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어서다. 부동산 관련해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 영어강사 이근철 선생, 오늘(5일)은 주진우 기자를 인터뷰하게 됐다. 이렇게 정치, 경제, 사회, 언어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한번 들여다보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7일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진행된 김홍신 작가와의 북토크에서 '책읽찌라' 이가희 씨가 사회를 진행 중이다.
▶ 작가들 섭외는 어떻게 하나. 본인이 직접.
= 출판사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국내 작가 중에 언제 책 나올 예정인지 묻는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을 알려야 하는데 채널이 많이 없으니, 협업을 하게 된다.
▶ 여러 작가들의 북토크 사회도 많이 맡았던데, 기억에 남는 작가가 있다면.= 방송 초기인데, 정유정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많이 좋아하는 작가이다. 당시 서울시와 같이하는 자리였는데, 출판사에 무작정 연락해, 경의선숲길에서 달밤에 책을 읽고 작가와 대화하는 자리였다. 이날 정유정 작가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이 오셨다. 요즘말로 ‘덕후’ 같은 전문가들이어서 그분들과 이야기 나누니까 정말 재미있었다.
▶ 마지막 질문이다. 어려울 수도 있는데, 책읽찌라에 ‘책’이란.= (침묵) 책이 지금은 내게 일도 만들어주고, 사람들도 만나게 하고 굉장한 의미가 있지만, 사실 활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책이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책이 오면 펴서 그냥 막 본다. 그래서 물적인 특성은 와 닿지 않고, 얘가 하는 이야기가 다가온다. 그래서 책이 한 명 한 명의 사람 같다. 그래서 내게 책을 묻는다면 사람이고, 이 과정이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 같다.
*영상=CBS노컷뉴스 스마트뉴스팀 김원유, 김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