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페리클레스의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는 명료하기 이를 데 없지만,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럽다.
이 책은 어제 벌어진 스포츠 경기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주워 삼키는 ''스포츠 잡담''을 혐오하는 반면, 이 글이 발표되는 시점은 지난 금요일 개막한 베이징 올림픽이 5일째 무르익을 때고 당연히 ''스포츠 잡담''이 만발할 시기다. 때문에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관음증 환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똑같은 환자다.
그럼에도 각종 미디어와 스포츠 산업은 그것을 당연시한다. 에코에 따르면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대편에 대한 야유와 욕설은 놀이할 신체를 빼앗긴 관객들이 좀 더 생생한 체험을 얻으려는 대리충족욕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 대리환상의 끝은 머리가 깨지고 피가 튀는 훌리건식 난동이다.
스포츠에 대한 잡담은 "정치적 논쟁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용품"이다. 당신은 재무부 장관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축구 감독에 대해 논의하며,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선수의 기록을 검토한다. 또 장관들이 수상한 거래나 잘못된 협정을 체결했는지를 추궁하는 대신 어제 벌어진 승부를 분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화된 스포츠 경기란 사익에 충실한 극히 개인적인 활동에 불과한데도, 스포츠 잡담가들은 그걸 국력과 연관지으며 공적(公的)인 화제인 양 착각한다.
베이징올림픽 3일째, 모 통신사는 "금·금·금…모처럼 국민 웃었다"는 기사를 냈지만, 앞으로 한국 선수단이 획득하게 될 메달 수와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독도 영유권 논쟁,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고유가와 고물가에 따른 생활고 등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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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스포츠 잡담가들에게 에코가 달아준 명예스러운 딱지는 "유아론의 최고 정점", 다시 말해 아직 어른도 아이도 되지 못한 ''얼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본서와 상관없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이 글을 쓰는 날 맞붙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축구경기를 보지 않았다. ''그래, 너 잘났다''고 말할 독자도 계시겠지만, 에코의 멋진 비유는 내가 옳았다고 추켜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섹스''를 구경하기 보다, 자신의 인생을 즐겨야 한다!
소설가 장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