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내달 1일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네이버를 준 대기업으로,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이에 네이버는 "재벌그룹과 지배 구조가 다르고 이 전 의장의 지분은 4.6%에 불과해 실제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총수없는 대기업 지정'을 공정위에 요청하고 있다.
네이버의 국내 자산총액은 계열사를 포함, 현재 약 4조 8000억원에 달한다. 이달 말이면 5조원을 넘어서면서 공정거래법에 따른 '준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된다.
공정위는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고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막기 위해서다.
'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회사 경영권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는 사람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 '총수'는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오너로, 허위 자료 제출 등 회사의 잘못에 대해 본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총수를 '사람'으로 할지 '회사 자체'로 지정할지는 공정위 재량에 달렸다. 보통 최대주주인 개인 및 창업주 일가가 회사에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총수를 사람으로 지정하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방향과 인사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그를 '총수'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공식적으로 의장에서 물러난데다, 글로벌 투자 같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면 외부 노출을 꺼리는 '은둔형' 리더인 이 전 의장이 공정위를 찾은 것 자체가 회사 실세임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네이버는 이 전 의장이 이미 '의장'자리에서도 물러났고, 주주 신임을 기반으로, 성과를 계속해서 내지 못하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일뿐 '총수'로 지정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다. 지분 소유에 의해 뒷받침되는 그룹 총수의 지배력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이 전 의장과 박창진 최고재무책임자(CFO), 법무실장 등이 세종정부청사 기업담당과를 직접 찾아가 면담한 것도, 이같은 네이버 상황 및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 의장 등은 이날 "글로벌 투자 책임자 역할만 맡고 있고 네이버 법인이 70여개 자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만큼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재 이 전 의장의 네이버 지분율은 4.6%에 불과하다. 네이버 최대주주는 지분 10.76%를 가진 국민연금이고, 해외투자기관 등이 뒤를 잇는다.
"적어도 주총에서 의미있는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이사 1명 선임 정도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가져야 하는데 이 전 의장이 가진 4.6% 지분는 이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네이버측 설명이다.
실제 총수가 없는 대기업 중에는 KT와 포스코 등이 있다. 대우건설, 에스오일처럼 민간기업 중에서도 개인 지분이 회사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경우, 총수가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한다.
네이버는 이 전 의장의 '총수' 지정은 향후 글로벌 사업 추진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의장이 총수가 되면 이는 '일가친척으로 구성된 자본가 집단'이란 의미의 '재벌'로 보겠다는 건데 "국내에서 찾기 힘든 투명한 지배구조와 전문경영인체제를 갖춘 네이버를 재벌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네이버측 설명이다.
네이버 한 관계자는 "유럽에서는 재벌이나 총수라는 단어 자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에 이 전 의장이 총수가 되면 네이버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네이버는 주식이 고도로 분산된 공개 회사로 어떤 개인도 주인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순환출자 등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해 특정 개인이나 일가가 그룹을 소유하는 재벌그룹들과는 지배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의 지분도 4.6%에 불과하고 가족이나 친족들의 지분 참여도 전혀 없다. 계열사 역시 모기업이 거의 100%를 소유하고, 특정 개인이 아닌, 네이버 주식회사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네이버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진다. 회사의 중요한 결정 역시 모두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네이버는 "기업을 소유지배하는 총수가 있는 민간기업, 공기업에서 시작해 민영화돼 총수 없는 기업 등 지금까지의 기업 분류에 적용되지 않는, 공정거래법의 기업집단규제가 추구하는 형태에 가장 가까운 기업"이라면서 "공정위의 신중한 결정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