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7월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산 소를 심판하는 내용의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폭력이었습니다. 국가재정을 도구로 국민이 향유할 문화 권리를 막았습니다. 그로 인해 잘못된 문화정책을 똑바로 잡고 그 진실을 규명하여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와 같은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이를 시정하겠다는 약속은 문 대통령의 공약집에도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청산 대상은 비단 박근혜 정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약집을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청산하겠습니다'라고 나와있다.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난 만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다면 그 '원조' 격인 이명박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어떤 형태로 문화계를 유린했을까?
#1.광우병 촛불집회 연대 단체를 '폭력단체'로 규정지난 2009년 5월 프레시안의 보도를 통해 시민사회계가 발칵 뒤집혔다. 경찰청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했던 1800여 개 단체를 모두 폭력단체로 규정한 문건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각 정부 부처에 해당 문건을 제출하면서 "정부보조금 지원 제한과 관련해 불법 폭력시위 관련 단체 현황을 통보한다"고 밝혔다.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가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려 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때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영화제, 진주국제영화제,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연예인협회 등 문화예술 단체들이 대거 명단에 포함됐다. 이른바 'MB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서막이었다.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왼쪽)
#2. 진보적인 독립영화의 산실 '미디액트' 사업권 박탈지난 2010년 1월 문체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모를 통해 영상미디어센터 사업권을 신생 법인으로 넘겼다. 독립영화의 산실인 미디어센터는 미디액트가 8년간 위탁 운영해오고 있던 곳이었다.
이에 독립영화계는 "정부가 진보적인 성향의 인사들을 배제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공모에서 탈락한 미디액트는 서울 마포구에 새롭게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3. 작가회의에 '시위 불참 확인서' 요구
같은 해 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진보 성향의 한국작가회의에 공문 하나를 보냈다.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향후 불법 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문예진흥기금 3400만원을 지원해줄 테니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정부지원금을 미끼로 문인들을 길들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작가회의 측은 지원금 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예술위 초대위원장 출신인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는 사재 3400만원을 작가회의에 쾌척했고, 악화하는 여론을 견디지 못한 예술위는 결국 시위 불참 확인서를 공식 철회했다.
이창동 감독과 배우 윤정희 씨
#4. 칸 각본상 받은 <시>, 국내 공모에선 탈락시>이창동 감독의 <시>는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공모에서 두 차례나 떨어졌다. 지난 2009년 7월 마스터영화제작 지원사업 첫 공모에서는 한 심사위원으로부터 '0점'을 받아 탈락했다.
시나리오의 포맷이 각본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라는 게 탈락 이유였다. 이 감독은 같은 해 말 2차 마스터영화제작 지원사업에도 응모했지만 또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이듬해 이 감독의 <시>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면서 애당초 영진위의 심사가 엉터리로 이뤄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이 감독의 탈락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참여정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 감독을 일부러 배제하기 위해 영진위가 심사 과정에서 0점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