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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2104, '감성AI' 데이빗이냐 '윤리AI' 월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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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에이리언: 커버넌트' 혐오·공포 먹고 자라는 '파시즘' 경고

 

할리우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앞서 그가 연출한 '에이리언'(1979년),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익히 봐 온 이야기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주를 항해하던 비행선이 미지의 행성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맞닥뜨린 괴생명체와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상반된 성향을 지닌 두 인공지능(AI) 안드로이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우경화로 치닫는 전 세계의 정치·사회 흐름을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으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파시즘, 홀로코스트 등 더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인류의 과오를 반추할 수 있도록 돕는 이미지들은 이 영화의 특이점이다.

서기 2104년, 우주선 커번너트 호는 수천 명의 인류를 싣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다른 행성으로 식민지 개척 항해를 떠난다. 항해 도중 미지의 행성으로부터 온 인류의 신호를 감지한 커버넌트 호는 그곳으로 향하고, 행성을 탐사하던 승무원들은 기괴한 모습을 한 괴생명체의 위협에 직면한다. 급기야 그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참혹한 광경 앞에서 얼어붙게 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명배우 마이클 패스벤더가 1인 2역을 연기한 안드로이드 데이빗과 월터다.

전편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등장하는 데이빗은 이번 편에서 더욱 뚜렷한 캐릭터로 거듭난다. 인간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동경하는 그는, 자신을 만들어낸 인류가 그러했듯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역학관계에 집착한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중세를 허물고 근대 인본주의 물꼬를 튼 르네상스 시대 유명한 조형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오는 데이빗의 모습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반면 극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안드로이드 월터는 인간의 정서적 욕구를 제외한 모든 감정을 인지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도록 설계됐다. 결국 인간의 욕망을 학습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셈이다. 이로 인해 월터는 사안을 대할 때 철저히 논리적으로 접근하는데, 이는 오히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윤리'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카메라는 데이빗과 월터라는 상반된 두 안드로이드가 벌이는 행위를 근거리에서 따라붙붙는다. 이를 통해 우리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 혹은 우리 자신의 실천을 적은 선택지를 현실의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커버넌트 호를 탄 인류의 생사가 데이빗이냐, 월터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커버넌트 호의 다수 승무원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애정에 바탕을 둔 커플 관계를 이루고 있다. 수천 명의 개척민과 배아를 실은 커버넌트 호가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이유다. 이 방주를 인류가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신세계로, 아니면 인류 멸망을 부를 암흑 세계로 인도할 것인지는 안드로이드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이에 따라 데이빗이나 월터를 인류의 지도자로 치환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다. 월터의 대척점에 있는 데이빗은 피조물에서 스스로 창조주로 거듭나려는 극한의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다. 사람들 사이에도 귀하고 천한 수직적 위계가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겨 타인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전형인 셈이다. 인류 개량·정화 명목으로 끔찍한 학살까지 자행하는 파시즘은 이렇듯 민주주의에 반하는 전근대적인 인식에 뿌리를 두고 지난 세기 성행할 수 있었고,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다.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바그너(1813~1883·독일)의 음악은, 이 영화가 파시즘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는 근거가 된다.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은 이 영화에서 창조주 인간에게서 피조물 데이빗에게로 대물림됐으나, 그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욕망의 상징처럼 쓰인다.

바그너는 위대한 음악가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게르만 신화에 집착했던 인종주의자·반유대주의자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바그너의 사상과 작품은 독재자 하면 떠오르는 나치 독일의 수장 히틀러(1889~1945)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바그너를 추종했던 히틀러는 정권을 잡은 뒤 수용소에서 수시로 바그너의 음악을 튼 것으로 전해진다.

끔찍한 혐오 발언을 일삼던 인물이 미국 대통령 자리에 앉으면서, 전 세계는 우경화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우려에 직면했다. 그 와중에도 한국 사회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법 위에 군림하려 했던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민주적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을 앉혔다. 하지만 지도자만 바뀌었을 뿐 한국 사회를 곪게 만드는 요인들은 여전히 상존해 있다는 자각의 목소리가 높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시즘은 혐오와 공포를 먹고 자란다고들 한다. 단지 계급, 성, 인종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회는 파시즘이 자라날 토양이 되는 셈이다. 우리를 분열시키고, 서로를 적대시하도록 만드는 '공공의 적' '생활 속의 파시즘'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까지,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경고는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9일 개봉, 122분 상영,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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