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네 번째 월드 투어 '블러드 사가'의 서울 이틀째 공연을 연 그룹 엔하이픈. 엔하이픈 공식 트위터 "도피를 시작한 지도 벌써 4개월이 됐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도망쳐 왔는데 추격대가 케이스포돔까지 따라왔네요." (정원)
지난 1일 시작한 네 번째 월드 투어 '블러드 사가'(BLOOD SAGA)는 엔하이픈과 엔진(공식 팬덤명)의 영원한 '피의 서사'를 그린 공연이다. 올해 1월 발매한 미니 7집 '더 신 : 배니시'(THE SIN : VANISH)의 세계관이 월드 투어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귀띔한 정원의 발언은, 엔하이픈의 네 번째 월드 투어 '블러드 사가'(BLOOD SAGA)가 결국 고농도의 '서사형 공연'을 지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블러드 사가'는 데뷔 때부터 시작해 '뱀자님'(뱀파이어+왕자님 합성어)이라는 애칭까지 탄생시킨, 엔하이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뱀파이어 세계관'을 적극 활용한 공연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 안에 녹여 '연결된 순간'을 여러 차례 만들어 냈고, 관객의 몰입감도 극대화했다. 팬 '엔진'이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 공연에 빠져들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공연을 다 보고 나서 그 판단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구 체조경기장)에서 엔하이픈의 '블러드 사가' 둘째 날 공연이 열렸다. 올해 3월 맏형 희승(현재 활동명 에반)이 팀을 떠나, 정원·제이·제이크·성훈·선우·니키 6인조로 재편된 다음 처음으로 여는 단독 콘서트였기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았다.
'블러드 사가'는 엔하이픈과 엔진 사이의 영원한 '피의 서사'를 담아낸 공연이다. 빌리프랩 제공여섯 명으로 하는 첫 투어였기에 엔하이픈은 "엄청 각오를 다잡고"(제이), "그만큼 더 이를 갈고"(제이크) 준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연결되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 공연"(성훈)이니 그 점을 주목해 달라고 요청했다. "(엔진이) 아닌 분들께도 정말 인정받을 수 있는 콘서트를 만들어보겠다"(니키)라는 포부도 내세웠다.
본 공연 세트 리스트 마지막 두 곡을 남겨두고 "진짜 한 호흡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한 제이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영상(VCR)과 멘트가 종종 등장했지만 '블러드 사가'의 핵심은 '무대'였다. 총 네 장(챕터)으로 이루어진 공연은 구간마다 촘촘한 콘셉트 아래서 진행됐다. 숨 고를 틈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은 공연이기도 했다.
붉은색 실루엣으로 화면을 채운 엔하이픈은 대형 전광판을 칼로 갈라 흔적을 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첫 곡이 미니 7집 타이틀곡 '나이프'(Knife)인 건 예상된 수순이었다. 엔하이픈은 오프닝부터 15번째 곡 '스틸러'(Stealer) 전까지 내내 핸드 마이크로 라이브를 들려줬다.
우리의 만남을 가로막는 세상의 억압을 찢고 너에게 향하는 진정한 피의 선사를 선포하는 첫 번째 챕터 '배니시'에서는 '나이프'를 시작으로 '데이드림'(Daydream) '아웃사이드'(Outside) '브로웃 더 힛 백'(Brought The Heat Back) '노 웨이 백'(No Way Back) 무대를 공개했다.
엔하이픈은 이날 본 공연 세트 리스트로만 24곡의 무대를 펼쳤다. 빌리프랩 제공너의 흔적을 쫓아 도착한 아름다운 숲에서 너를 떠올리며 함께할 미래를 노래하는 두 번째 챕터 '하이드아웃'(HIDEOUT)는 '빅 걸스 돈트 크라이'(Big Girls Don't Cry) '노 다웃'(No Doubt) '슬립 타이트'(Sleep Tight) '빌스'(Bills) '문스트럭'(Moonstruck) '파라노말'(Paranormal) '블록버스터'(Blockbuster·액션 영화처럼) '모 아니면 도'(Go Big or Go Home) '퓨처 퍼펙트'(Future Perfect)(Pass the MIC) 등 9곡으로 구성돼 있었다.
세 번째 챕터는 투어명과 같은 '블러드 사가'로 '피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의 죄를 기꺼이 짊어지며 가장 뱀파이어스러운 사랑을 표출하는 구간이었다. 이때 엔하이픈은 '스틸러' '드렁크-데이즈드'(Drunk-Dazed) '바이트 미'(Bite Me) '페이트'(Fate) '크리미널 러브'(CRIMINAL LOVE)까지 5곡을 무대에 올렸다.
멤버 성훈이 예고한 것처럼 '뮤지컬적인 요소'가 많았던 세 번째 챕터 '블러드 사가'는 진하고 깊은 뱀파이어 세계관을 몸소 느껴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내용이 부실했다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VCR이 제 몫을 톡톡히 했다.
피눈물을 흘리던 성모마리아 동상이 별안간 조각나면서 감지되는 불길한 징조. 망토와 복면을 써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추격대가 위협해 오자,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간다. 뒤에서 기습하는 짜릿한 반전으로 커다란 함성을 끌어낸 선우, 손톱을 길게 만들어 적을 물리치는 니키, 칼로 공격과 방어에 나서는 성훈 등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이어진다.
세 번째 챕터 '블러드 사가'는 뮤지컬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빌리프랩 제공방금 본 이야기가 그저 영상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추격대는 스탠딩 구역을 거쳐 무대 위까지 올라와 관객을 여전한 '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쾌감을 일으키는 군무를 마치고 멤버들은 미니 7집 수록곡 '스틸러'를 콘서트에서 최초 공개했다.
왜 저주받게 됐고, 이것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회상한 끝에 비로소 운명을 깨닫고 각성한 소년의 서사를 다룬 '페이트' 무대는 절정이었다. 멤버들의 두 눈만 클로즈업한 화면만으로 시선을 붙잡고는, 마지막까지 홀로 남은 정원을 비춘다. 이윽고 정원은 뒤로 추락하고, 곧장 붉은 바닷속으로 뛰어든 그림자가 화면에 떠오른다. 무대는 비었지만 화면엔 나타나는 방식으로 유기적 구성을 꾀했다.
엔하이픈 세계관을 담은 '다크 문(DARK MOON) : 달의 제단' 두 번째 OST '크리미널 러브' 때는 떨어진 후 모습을 감췄던 정원이 등장한다. 조용히 잠든 듯 누워있는 모습이었던 정원은 일어나 무사히 무대를 끝냈다.
초반부 '노 웨이 백'(No Way Back)에서도 무대 위와 화면을 포개는 연출을 발견할 수 있다. 멤버들이 뒤돌아서 관객을 등지고 앞으로 걸어갈 때, 무대에서는 사라지지만 그들의 뒷모습은 화면에 그대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번 '블러드 사가'는 희승 탈퇴 후 6인조로서 처음 선보이는 단독 콘서트였다. 빌리프랩 제공앙코르 대기 시간에도 '세계관 과몰입'은 계속됐다. 추격전을 벌이는 여섯 멤버를 위해 박자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미션을 수행해 달라거나, 엔하이픈이 바른길로 찾아올 수 있도록 가장 큰 소리로 안내하라며 가사를 띄우고 응원법 따라 하기를 요청했다.
여정 끝에 도착한 미지의 섬에서 함께라는 믿음으로 우리의 세상을 새롭게 써 내려가자고 외치는 마지막 챕터는 '로스트 아일랜드'(LOST ISLAND)로, 멤버들은 동명의 곡으로 앙코르를 시작했다. 1층과 2층 사이 통로를 이동차(토롯코)로 돌며 관객과 더 가까이 호흡했다. '엑스오'(XO)(Only If You Say Yes) '멀어' '헬륨'(Helium)을 거쳐 '샤우트 아웃'(SHOUT OUT)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엔하이픈은 초중반 14곡을 모두 핸드 마이크로 소화했다. 세트 리스트도 도전적이었다. 앙앙코르를 뺀 '예정된 세트 리스트' 24곡 중 타이틀곡은 '나이프' '노 다웃' '퓨처 퍼펙트' '드렁크-데이즈드' '바이트 미' '엑스오'까지 6곡, 나머지 18곡은 전부 수록곡이었다.
보통 타이틀곡이 노출도와 인지도가 높기에, 수록곡 비중이 큰 세트 리스트는 그 '불친절함'으로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위험 부담이 있었을 텐데도 뚝심 있게 구성한 세트 리스트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성훈의 댄스 브레이크를 추가한 '노 다웃', 합주 중 '너무 신나겠다' 하는 마음에 완곡으로 준비한 '헬륨'처럼 시도와 배경을 짚어주는 멘트를 덧붙여 반가웠다.
이번 케이스포돔 공연은 회당 1만 750명이 들어 사흘 동안 총 3만 2250명의 관객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빌리프랩 제공전보다 두려움 없이 라이브에 임하는 멤버들의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핸드 마이크를 썼을 때 대개 전달력이 더 좋았지만 후반부 이어 마이크 무대에서도 라이브는 잘 들렸다. 무엇보다 4인조 밴드(기타 윤장한/베이스 최인성/드럼 박승한/디렉터 겸 키보드 홍소진)의 라이브 연주가 음악의 '듣는 맛'을 끌어올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너무 재밌다"라고 한 니키는 "오늘 하루가 짧게나마 엔진 여러분들한테 정말 행복과 내일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이번 공연은 여러분들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공연"이라고 운을 뗀 제이크는 "이게 다 여러분들이 즐겨주시고 응원을 해 주셔서 가능할 수 있었던 거"라며 "마지막까지 저희도 후회 없는 공연하고 가겠다"라고 예고했다.
투어를 시작하는 첫날 무대는 항상 아쉬움이 남았지만 지난 1일 '블러드 사가' 첫날 공연은 "역대급으로 좋았던 무대"라고 소개한 성훈은 "앞으로 뭘 더 해야 할지, 제가 뭘 더 도전할지를 좀 많이 배운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정원은 "엔진도 뭔가 진심으로 즐겨주고 우리도 어제오늘 진심으로 즐겨서 서로 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저희 여섯 멤버 전부가 진심으로 100%를 다 쏟은 공연"이라고 밝혔다.
빌리프랩 제공
선우는 "오늘 엔진분들 에너지가 사실 어제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 좋아가지고 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사실 오늘 공연 너무너무 재밌었지만 내일 막콘에서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친듯이 뛰고 다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콘에서 완전 에너지를 다 분출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엔하이픈이 했던 모든 투어가 저한테 너무 소중하고 또 의미 있고 하나하나가 그때만이 할 수 있는 좋은 공연이었다고 생각을 한다"라는 제이는 "(이번 공연은) 저희도 느끼는 게 다른 거 같고 엔진도 확실히 노는 게, 이 공연에 임하는 게 확실히 이번에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걱정도 많았지만 자신도 있었고 어떻게 보여줄지 생각도 많았는데 이틀 보내고 있는 지금 봤을 때 후련하다"라고 부연했다.
회당 1만 750명 기준 사흘 동안 3만 2250명의 관객을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엔하이픈은 오늘(3일) 서울 마지막 공연을 앞뒀다. 멕시코시티 공연 표가 빠르게 매진돼 두 차례 추가됐으며, 이에 따라 '블러드 사가'는 총 21개 도시에서 32회 공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