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장애인가정 등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주택에서 불이 났다. 그 후 8개월. 집기 하나 챙기지 못하고 집을 떠난 그들은 지금껏 임시거처를 전전하고 있다. 그들은 왜 '주거난민'이 돼야 했을까. 매입임대주택 화재를 통해 드러난 현행 주거복지사업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
① "엄마, 불났어"…난민생활이 시작됐다 (계속) |
지난해 8월 화재가 난 대전 서구 괴정동 A 다가구주택. (사진=주민 제공)
"엄마, 집에 불났어."지난해 8월 18일 오후 6시 14분. 잠시 외출했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윤선이(52)씨는 그 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간 집은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집을 나올 때 입은 반팔차림 그대로 윤씨와 아들은 모텔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지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마련해준 임시거처에서 지내고 있다.
지낼 곳이 생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집기 하나 건지지 못했다. 이불도 없이 지내다 적십자에서 나눠준 모포 하나로 지난 겨울을 났다.
윤씨의 이웃 박상숙(52)씨는 화재 당시 집안에 있었다. "불이야"하는 소리에 창문을 열자 시커먼 연기가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3층에 살고 있던 박씨는 불이 번진 1층으로는 대피할 수 없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살려달라고 정신없이 소리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을지대병원 응급실이었다. 박씨는 지금도 화재의 순간이 떠오르면 두려움에 떤다. 그때 흡입한 연기 때문에 목과 가슴이 아프지만 치료비를 비롯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들이 살던 대전 서구 괴정동 A 다가구주택은 LH가 관리하는 '매입임대주택'이다. 매입임대주택은 LH와 지방공기업이 다가구주택 등 기존 주택을 매입해 취약계층에 저렴하게 빌려주는 곳이다.
전국적으로는 약 10만가구, 대전·충남에만 7천여가구가 이 매입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A 다가구주택에는 기초생활수급자 4가구, 차상위계층 3가구, 장애인가구 1가구를 비롯해 10가구가 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처한 상황 역시 윤씨 모자나 박씨와 다르지 않다.
불은 지상 1층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됐다. 화재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LH는 '건물'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해 거주민들의 피해는 보전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 불로 300만원에서 많게는 2600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재산피해에 포함되지 않은 물건들도 재와 소방수를 뒤집어써 사실상 사용은 불가능한 상태다. 10가구 가운데 김미숙(53)씨가 유일하게 개인 화재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의 피해액이 2천만원 이하라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상당수가 개인 화재보험에 들 여력이 안 되는데다 어렵게 가입했어도 보장범위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들의 막막함과 불안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A 다가구주택은 지난 1월에도 2층에서 불이 났다. 그때도 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A 다가구주택만의 문제일까. 김미숙씨는 옮겨간 다른 매입임대주택에서 최근 또 한 번의 화재를 겪었다.
인천의 한 매입임대주택에서는 3년간 10차례나 화재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화재 등 각종 재난에 취약한 반면 구제책은 없는 것이다. 주거복지사업의 일환으로 도입됐지만 주거 안정성 및 안전과 관련해서는 적지 않은 잡음이 일고 있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의 오훈 정책위원장은 "주거복지를 구현하고 실현한다는 LH가 주거의 안정성이나 주거안전, 재난이나 여타 피해로 인한 발생된 사항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주거복지에 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주민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불이 아니었지만, 그 책임은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적어도 이런 일이 앞으로는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목소리다. 이에 대해 사업을 담당하는 LH는 "도의적 책임을 다하고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