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 마스크를 쓴 남성 2명이 소녀상 주변에 쓰레기를 방치하고 철거하기 힘들도록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놨다. (사진=연합뉴스)
3일 오후 10시 20분께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는 김모(68)씨가 소녀상을 찾았다.
야간에는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이 없어 소녀상의 안위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그때 웬 남성 2명이 소녀상 주변에 '소녀상 이전하라' 등 내용이 적힌 선전물을 붙인 뒤, 차에 싣고 온 폐가구를 버리거나 비닐에 싼 페트병 뭉치 등 쓰레기를 가로수와 가로등에 덕지덕지 매달았다.
이 남성들은 지난 1월부터 소녀상 주변에 이 같은 선전물과 쓰레기를 붙여 이를 떼는 소녀상 지킴이 회원·시민과 갈등을 빚어왔다.
김 씨는 얼마 전 시민들이 깨끗하게 청소한 소녀상 주변을 다시 '쓰레기장'으로 만든 남성이 차를 타고 떠나려 하자 차량 번호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그러자 이 남성들은 차에 내려 김 씨에게 사진을 삭제할 것으로 요구했다.
김 씨가 거부하자 두 남성은 김 씨를 앞뒤로 가로막았다.
30대 청년 2명에게 둘러싸이자 위협을 느낀 김 씨는 때마침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로 뛰어가 탑승했다.
남성들은 근처 자신들이 타고 왔던 차에 올라타 이 택시를 뒤쫓았다. 때 아닌 추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김 씨는 택시기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산복도로 방면으로 올라가 뒤차를 따돌리려 했지만, 남성들은 끝까지 택시를 뒤쫓았다.
김 씨는 택시기사에게 다시 소녀상 인근으로 가자고 해 주차해놓은 자신의 차량에 올라타 문을 잠갔다.
남성들도 재빨리 차에서 내려 김 씨 차량을 가로막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차량 번호를 찍었다.
김 씨가 남성을 뿌리치고 달아나자 다시 추격전이 시작됐다.
김 씨가 있는 힘껏 차를 몰자 남성들도 무서운 속도로 쫓아왔다.
김 씨는 일본영사관 인근 인창병원 옆길로 차를 몰아 부산고등학교를 지나 영주터널 윗길까지 가서야 간신히 남성들이 탄 차를 따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쫓고 쫓기는 아찔한 상황이 계속됐다.
20여 분간 공포를 느낄 정도로 추격을 당한 김 씨 등엔 식은 땀이 흘렀다.
지난 1월 초부터 거의 매일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해온 김 씨는 "겁이 나서 당분간 소녀상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며 "남성들이 집을 찾아오거나 위해를 가할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