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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가 새터민이지?" 편견에 흔들리는 탈북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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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년 남한 정착기]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자료사진)

 

탈북학생이 대학생활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일까? 북한출신으로 대학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힘든 일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 자신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친구를 볼 때이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탈북민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그에 따르는 암묵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무모함이 될지도 모르는 그 용기로 해서 왕따 당할 수 있음은 탈북대학생에게는 상식이다.

얼마 전 우리 대학교에서 교내 탈북대학생 학업역량 강화를 위한 반나절 동안의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원래는 약 15명 정도 규모로 기획 됐었는데, 정작 참가한 학생은 5명밖에 안됐다.

프로그램이 워낙 훌륭한 강사 분들과 좋은 내용들로 구성 되어있어서 학교에서는 일반 학생들도 포함시키자고 제의를 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한 친구가 자기는 지금까지 탈북학생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어서 일반학생들에게 탈북학생임이 알려질 경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입장이 난처해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빠지겠다고 했다. 항상 자신의 출신이 알려져 불안정한 관계마저 언제 깨질지 몰라서 마음 조이는 그 상황이 나로서는 굉장히 안타까웠다.

나와 동갑인 한 친구가 있다. 누가 봐도 엄청 예쁘고 똑똑한 친구인데 대학교 새터(새내기 배움터) 때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숨겼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던 중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다. 처음에는 조금 더 친밀해지면 말해야지 하면서 하루 이틀 미루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하루는 어떤 경로를 통해 그 친구에 대해 알게 된 다른 학생이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얘, 너 여자 친구가 새터민이라며?!"

"하하 그래?! 그 친구가 예쁘긴 하지. 근데 새터 미인까지는 아니지. 듣기는 좋네."

"새터 미인이 아니라 새터민!"

남자친구는 그때까지도 자신을 숨겼던 여자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결국 그들은 헤어졌다.

종종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일들을 겪게 되는 원인이 결국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람직하고 제대로 된 관계의 기초는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에 기초한 관계만이 정상적이며 공고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부터 우선되어야 한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것에 대해 숨기거나 창피하게 여긴다면 자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혹독할지도 모르는 나의 주장이 가까운 친구에게도 자신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마음의 종양을 제거해주는 메스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상처에 기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대학교 새터 첫날 북한에서 왔음을 밝혔다. 물론 그로 인한 대가를 빼놓는다면 글의 신뢰성은 떨어질 것이다. 거의 한 학기동안 혼자서 학식을 먹어야 했다. 이 사회에는 분명 우리를 힘들게 하는 편견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을 인정하고 공개하는 순간 사명감이 생긴다. 그것은 매 순간 나를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살도록 추동해준다. 이 과정에서의 자기수양은 덤이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슬그머니 학식을 먹고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형님, 제가 형님 덕분에 이번 학기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개 두 마리를 잡아버렸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이요."

그 말이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편견극복의 시간을 이겨낸 것이다.

그렇다, 편견극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해소해 나가는 것, 이것은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통일의 비용을 이미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매 사람이 출신이나 학벌, 재산이나 지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인격적 가치에 따라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은 때가 되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감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우리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자기의 정체성에 기초한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만의 틀 속에 갇혀 산다면 오히려 더 좁은 세상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자신이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해 질 것이며, 당신의 눈앞에는 넓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탈북민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북한에서 왔습네다"라고 당당히 외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때 통일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으며 우리의 가치를 우리들 자신의 힘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온은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는 커뮤니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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