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박영수 특검팀 수사과정에서 "블랙리스트가 나중에 문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이 때문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 않고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구속)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시켰다고도 했다.
김기춘 전 실장에게 누가 보고했는지를 놓고는 피의자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결국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설계하고 총지휘했다는 점은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 '시한폭탄' 블랙리스트…상당수가 문제점 알고 있었다
24일 특검팀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돼 가급적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취지로 특검 조사 과정해서 진술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이 때문에 정 전 차관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는 것을 피하거나, 정 전 차관이 김 전 실장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보고 내용은 청와대가 만든 블랙리스트에 따라 실제로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해 예산 지원을 배제한 일종의 '실적'을 정리한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청와대에서 예산 전액을 깎은 것을 일부 삭감쪽으로 바꾸려 했지만, 김 전 실장의 위세가 너무 강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의 핵심인 김 전 실장을 제외하면 적지 않은 관련 인물들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개연성도 커 보인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유진룡 전 장관처럼 대놓고 반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이미 유 전 장관이 내쫓기는 등 정권이 공포 분위기를 만든 터라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마지 못해 따라 갔을 것"이라고 했다.
◇ 블랙리스트 그물에 갇힌 김기춘…여전히 '모르쇠'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전날 참고인으로 특검에 출석해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고위직들이 실무진에게)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 너희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며 "(양심에 반하는데도) 그런 지시에 따른 실무자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면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보고 체계상 실무진들이 올린 보고는 자신의 결재를 통해 청와대로 전달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말해 고발된 위증 혐의에 대해선 "블랙리스트 존재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인데 잘못 이해된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