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통상 전쟁'에 나서면서, 기존 한미FTA(자유무역협정)까지 재협상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시한부 경제팀'이 재협상 여부나 시점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초반부터 '퍼주기식' 저(低)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차기 정부의 부담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추진하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까지 공식 선언하면서, 다음 타깃은 한미FTA가 될 거란 관측이 많은 게 사실이다.
후보 시절부터 이들 협정을 묶어 "일자리를 빼앗는 협상"으로 규정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재협상 요구를 염두에 둔 '강온 병행 전략' 구사가 필요하지만, 실제 대응을 보면 초반 포석부터 '악수'(惡手)만 뒀다는 질책이 터져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우리 정부의 '넙죽 엎드리기' 행보는 그가 취임하기도 전인 연말연초부터 가시화됐다.
경제팀 수장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노력을 하려 한다"며 "미국 셰일가스를 사오는 걸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도 지난 연말 국내 에너지업계 사장들과 만나 "미국 셰일가스 수입을 계기로 양국 가스분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은 기조를 예고했다.
정부의 입장 표명이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상대국 비위를 맞추려 무역 흑자를 애써 줄이겠다는 정책 방향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셰일가스 수입의 경제성조차 의문인 상황에서 일종의 '조공 외교'로 비칠 수도 있어서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무역수지의 불균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자인할 뿐더러, 그 책임이 상당부분 한국에 있다는 걸 자인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압박이 있을 때마다 덜컥 선물을 내주는 식으로 해선 안된다"고 질타했다.
설령 한국이 대단한 무역 흑자를 보고 있더라도, F35전투기 등 미국 무기를 천문학적 규모로 구매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신중하고도 장기적인 시야의 협상 전략이 절실하단 것이다.
전 교수는 특히 "현 경제팀은 말 그대로 '순장조'이기 때문에 여러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협상을 시작한다거나 방향을 획정하거나 후퇴선을 공표해선 안된다"며 "차기 정부와 논의하라고 선을 긋는 게 책임있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송영관 연구위원 역시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면 우리는 굴복할 자세가 돼있다는 걸 보여준 것밖에 안된다"며 "트럼프가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송 위원은 "우리가 셰일가스를 사려는 걸 미국이 굉장히 반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꼼수로 비칠 수 있다"며 "미국이 멕시코나 중국과의 문제를 푸는 데도 오래 걸릴 것이므로 우리 정부는 지켜보면서 신중히 대응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미 관계는 안보 이슈로 강하게 얽혀있는 만큼,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미국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닌 것처럼, 우리도 트럼프 체제의 '글로벌 호구'로 자리매김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전성인 교수는 "건건이 협상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수밖에 없다"며 "무기협상과 방위비 분담 같은 이슈들을 한 테이블에 놓고 아젠다를 키워서 협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필요하다면 국민 여론의 힘을 빌려 재협상에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가는 등 '몸값'을 높여가는 정부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강력한 협상 카드의 하나인 '싸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너무 쉽게 내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송영관 위원도 "현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도 뭔가 하려 하니 자꾸 악수가 나오는 것 같다"며 "강하게 나오는 상대에겐 좀 세게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