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을 받아든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을 고려해 요구를 바로 거절하기도, 전쟁 개입 위험 등으로 파견을 수용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은 '로우키'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靑 "진의 파악 중"…그사이 트럼프는 "참여 여부 기억할 것"
정부는 아직 미국의 '공식적인' 파병 요청은 없다고 판단하고 진의 파악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16일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번 사안은 아주 신중하게 대처하려 한다. 한미 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한미 간 긴밀하게 연락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그러면서 "미국의 입장이 우리에게 전달돼야 해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와 외신보도를 통해 군함 파견 요청 소식이 알려지긴 했지만, 미국 행정부 차원의 정식 요청이 온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식적인 반응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물밑 접속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한층 거세졌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보호하기 위한 다국적 연합 구성을 위해 7개국 참여를 요구했다며 "지원을 받든, 받지 않든 이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참여 여부를)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은 그들이 에너지를 얻는 실제 그들의 영토"라고도 주장했다. 호르무즈 해협 보호를 위해 공동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명분을 부여하면서, 참여하지 않는다며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던진 셈이다.
6년 전보다 훨씬 위험한 호르무즈…국론 분열 우려도
일각에서는 지난 2020년처럼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가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당시는 미국의 연합군 파병 요청에 '독자파병' 형식으로 한국 상선의 호위 임무를 수행했지만, 지금은 군사 위험이 훨씬 고조된 상태에서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UN이 결의해서 보내는 '평화유지군' 파병이 아닌 미국의 요구로 보내는 '다국적군' 파병은 전례가 거의 없다"며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기뢰 등 피격 위험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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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여론 분열도 우려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파병 요구를 규탄했다. 이들은 "한국이 군함을 호르무즈에 파병한다면 침략 전쟁에 동참하는 것"며 거부를 촉구했다.
아울러 우리 군이 다국적 연합 작전에 참여할 경우 국회 비준이 필요해 정치권의 논쟁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식 거래주의, 통상·안보에 영향 줄 수도
하지만 동맹의 기여와 통상·안보 현안을 연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 특성을 정부로선 무시하기 힘들다. 파견을 거부했다가 다른 사안에서 '대가'를 치를 위험이다.
미국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 등 16개국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하는 등 여전히 관세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 등의 안보 협상도 제대로 된 첫 발을 떼지 못했다.
정부에 고민을 이어갈 시간은 많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주' 중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을 호위하는 연합군 구성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오는 19일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만약 다카이치 총리가 전격적으로 파견을 결정할 경우, 정부가 받게 되는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