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황상민(황상민 심리상담소 소장)
덴마크 경찰에 체포돼서 구금 중인 정유라 씨. 정 씨의 진술, 국내 송환 여부 하나하나가 화제죠. 그런데 그 못지않게 화제인 것이 바로 정유라 씨가 경찰에 체포될 당시에 입고 있던 회색 패딩입니다. '정유라 패딩'이라는 키워드로 이게 하루가 아니고 며칠 동안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습니다. 어느 브랜드인지 이게 얼마인지 다들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죠.
이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의 패션을 '블레임룩'이라고 합니다. 범죄자가 입으면 뜬다, 블레임룩. 과연 어떤 심리가 대중들을 자극하는 건지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시죠. 황상민 심리상담소 황상민 소장 연결해보죠. 소장님, 안녕하세요.
◆ 황상민> 안녕하세요.
◇ 김현정> 아니, 물론 궁금할 수는 있어요. (웃음) 뉴스에 계속 나오던 인물이 뭐 입고 나타났는지 무슨 신발 신었는지 궁금할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블레임룩이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로 관심을 갖는 그 대중들의 심리가 뭔가요?
정유라 체포 당시 장면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 황상민> 사실은 정유라 씨가 처음에 체포됐을 때 얼굴보다는 옷이 아주 부각이 된 상황이니까요.
◇ 김현정>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죠?
◆ 황상민> 그렇죠. (그렇다보니) 대중의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이런 궁금한 걸 1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단서가 바로 그 사람의 옷이 되는 거죠. 또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에서는 대중적으로 유명하거나 그 사람이 심지어는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뭔가 좀 특별할 거야, 좀 다를 거야라는 그런 기대를 아주 쉽게 하는데요. 특히 정유라 씨 같은 경우에는 최순실이나 아버지가 돈이 엄청 많았다, 이런 식의 생각들을 우리가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 김현정> 재산이 10조다, 이런 상상도 못할 부자니까? (웃음)
◆ 황상민>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수저 정도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뭔가 특별한 옷을 입고 있을 거야' 이런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 거죠.
◇ 김현정>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 재산 10조 가진 사람 못 보잖아요, 우리. (웃음) 그런데 10조 가진 사람이 입은 패딩은 도대체 뭔가 궁금한 거에요?
◆ 황상민> 단순히 돈을 얼마나 가졌다라는 이슈도 되겠지만 유명세 측면에서만 본다면 10조가 아니라 100조 수준이라고 할 수 있고요. 또 대통령을 이모로 생각하고 진짜 엄마가 사이비 대통령 노릇을 하는 사람이니까 뭔가 다르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이런 식으로 정유라 패딩처럼 과거에도 블레임룩,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들의 패션이 관심을 크게 샀던 경우가 있죠, 많죠?
◆ 황상민> 옛날에 탈주범 신창원 혹시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어요.
◇ 김현정> 기억나죠. 무지개색 티셔츠?
◆ 황상민> 예. 그 티셔츠가 한동안 동대문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품목 중에 하나이기도 했고요.
◇ 김현정> 저는 요즘도 봤어요. 요즘도 걸려 있어요, 그런 디자인. (웃음)
◆ 황상민> 그래요? 요즘도 아직 있군요. 구해놔야 되겠네요. (웃음) 그 다음에 신정아 씨 패션 혹시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어요. 신정아가 공항에서 입었던 거, 들었던 가방.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옷을 표현하고 꾸밀 때도 '야, 이거 신정아가 입었던 거야' 이렇게 이야기할 때 본인이 최소한 그 정도 급의 인간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심지어는 그게 범죄인이 됐든 또 유명 탤런트가 됐든 그런 거와 관계없이 상당히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확인을 하는, 그런 심리가 있다는 게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 김현정> 제가 지금 그 질문 드리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관심을 갖고 찾아볼 수는 있어요. 뭐 입었어, 저 사람.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지금 정유라 패딩이 잘 팔리고, 장시호 패딩이 잘 팔리고 그냥 관심갖는 정도가 아니라 쓴다는 거에요, 산다는 거에요. 이 심리는 뭡니까?
◆ 황상민> 공통적인 거는 바로 그 사람이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사람이거나 심지어는 범죄자더라도 상관이 없어요. 유명하고 잘난 사람이니까 그런 무시무시한 또는 그런 대단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겠어, 이런 마음이니까 적어도 그 사람이 맞은 주사라도 내가 맞으면, 그 사람처럼 탱글탱글한 피부를 가지거나 아니면 그 사람 옷을 내가 입기만 하면 내가 그 사람만큼 그래도 '그 정도 급은 되지 않니'라고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지 마음이 편한 그 심리가 지금 대한민국의 대중들한테 아주 뚜렷하게 있다는 거죠.
◇ 김현정> 희한하네요.
◆ 황상민> (한국인들은) 거의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인하거나 표현할 수 없으니까 다른 유명한 누군가를 통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약간의 아바타심리, 또는 좀비심리를 한편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되는 거죠. 상당히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모두 다 노예나 개, 돼지처럼 만들고 또 좀비처럼 느끼게 만든 그 사람들의 주사나 옷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라도 내 자신은 마치 '주인님 같은 그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싶어' 하는 이런 한국인의 심리는 상당히 재미있는 심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현정> 재미있네요. 이건 그런데 다 그렇다고 얘기하면 되게 서운할 것 같아요. 저는 아니에요. (웃음) 지금 들으시는 분들 중에도 나는 아니야, 이런 분들 많을 거에요.
◆ 황상민> 그렇죠. 역시 진정한 한국인이시네요.
황상민 심리상담소 소장. (사진=황 소장 측 제공)
◇ 김현정> (웃음) 그러니까요. 내 얼굴을 잃어버린 한국인, 나 스스로를 잃어버린 한국인이 마치 아바타처럼 욕을 하면서도 그 사람을 흉내내는 그 심리가 반영된 게 이번의 블레임룩 현상이라는 말씀인데요. 소장님, 외국은 어떻습니까?
◆ 황상민> 없어요. 사실 외국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하지는 않아요. '나는 나다'라는 인식이 있어서, 나는 '쟤하고 비슷하게 보이는 게 너무 싫어'라는 마음을 아주 뚜렷하게 표현하는데요. 유달리 우리는 실제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또는 그 사람의 행동이 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보여지는 모습 또는 꾸며지는 거, 그걸 따라하기만 하면 나도 저렇게 될 거라고 믿는 것이 더 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 김현정> 자꾸 이렇게 블레임룩이 이슈가 되면 저는 이 사태의 본말이 전도되지 않을까 이것도 좀 걱정이에요?
◆ 황상민> 정확히 바로 그겁니다. 사실은 진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문제가 뭐냐,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진짜 저지른 범죄의 핵심이 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또 나중에는 알려고 조차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쉽게 생각하는 상태로 바뀌어버리는 거죠.
◇ 김현정> 블레임룩 현상을 오늘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서 이모저모 짚어봤습니다. 황상민 소장님, 고맙습니다.
◆ 황상민> 네, 안녕히 계세요.
◇ 김현정> 예. 연세대학교 전 교수시죠, 황상민 심리상담소의 황상민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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