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가 개입한 문화창조융합사업을 강하게 비판한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의 비망록이 공개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여명숙 위원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핵심 인물인 차은택씨 후임으로 지난 4월 8일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취임했다가 50여일 만에 타의로 강제 하차한 인물이다. CBS 노컷뉴스는 여 전 단장의 비망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핵심 내용을 공개한다. [편집자주]| 여명숙 전 단장 '내부비판 문건' 단독 입수 |
① 차은택 후임 "문화창조융합은 문화부판 4대강 사업"
② 차관급 인사 '허수아비'로 만든 차은택 카르텔
③ 김종덕, 7월부터 '국정농단 사태' 무마 시도 |
◇ 부하직원들의 노골적인 무시…"꼭 영수증 보셔야 되요?"여명숙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은 취임 초기부터 의욕적으로 업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차은택씨를 중심으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문화진흥원장으로 이어지는 '비리 카르텔'에 막혀 차관급인 여명숙 전 단장은 '허수아비' 취급을 받았다.
그는 부하 직원들의 노골적인 무시를 감내하면서도 '비정상적인 사업 추진'과 '불투명한 예산집행', '불명확한 지휘체계' 등을 바로 잡고자 했으나, 결국 타의에 의해 중도하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CBS 노컷뉴스가 23일 단독 입수해 공개한 여 전 단장의 비망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내부 비판문건'이 외부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 전 단장은 취임 직후 문화체육부가 파견한 이진식 부단장과 김경화 팀장에게 "정식 결재라인을 만들고 업무와 관련된 공문서 일체를 달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황당한 이유를 내세우며 철저하게 무시를 당했다. 그는 자신의 비망록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증거나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 (이진식)"우리는 문화부에서 파견된 사람으로서 기획과 관리만 할 뿐 조직적으로는 미래부 산하 소속이기 때문에 결재시스템이 없다" (이진식·김경화)"문화창조융합벨트의 모든 것은 차은택 전 단장이 기획한 것이므로 그가 명예단장으로서 (계속)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진식·김경화)부하직원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차은택씨가 여전히 명예단장으로서 우리를 지휘하니 당신은 업무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 전 단장은 업무파악을 위해 그동안의 예산집행내역서와 영수증 제출도 벤처본부 이현주 본부장과 문화창조아카데미 박경자 본부장에게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이 역시 쉽게 관철시키지 못했다.
송성각 당시 콘텐츠진흥원장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콘텐츠진흥원 임원회의 끝에 '기밀이라서 줄 수 없다'고 전하라고 합니다" (이현주·박경자)"꼭 영수증 보셔야 되요? 설마 영수증을 감사에 쓰시려는 건 아니시죠? 위원장님 정치하실 거예요?" (최보근 문체부 콘텐츠산업국장)여 전 단장은 거듭된 문제 제기 끝에 간신히 예산집행내역서와 영수증을 받았지만, 벌써 몇 주나 지난 뒤였다.
◇ "문체부판 4대강 게이트 수준…차 감독, 나랑 청문회 갈 거예요?"여 전 단장은 이때부터 '조직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지난 4월 13일 서울시내 P호텔에서 결국 차은택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문화부판 4대강 게이트'와 '청문회 출석'과 같은 거친 언사도 동원됐다.
이 자리에는 여 전 단장과 차씨 외에도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과 김상률 당시 문화교육수석도 함께 있었다.
다음은 여 전 단장이 기록한 당시의 대화록이다.
"이진식 부단장과 김경화 팀장이 '쉬쉬'하며 업무보고도 불투명하고 매우 비협조적으로 일한다" (여명숙)"게다가 취지며 예산이며 모두 불투명하다. 비전과 목표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여명숙)"이진식은 문제가 있다. 다음 주에 곧 다른 데로 보낼 것이니 염려말라" (김종덕)"절차 없이, 결재라인 없이 일하면서 무조건 청와대 수석실에서 시켜서 그런다고 말하는 문화창조융합본부 직원들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가?""수석실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김상률)"교육문화수석실입니다" (여명숙)"차은택 감독이 명예단장이라는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여명숙)"그건 차 감독이 다 만들어 놓고 길 닦아 놓은 것이니 도움을 잘 받으라는 뜻이다" (김종덕)"왜 공연만 강조하는가? 대체 그런 학예회 수준의 것들이 왜 문화창조융합이고 벨트까지 만들어야 하는가?" (여명숙)"공연은 정말 중요하다. 선순환구조를 이루어서 문화융성을 이루는 게 이 벨트의 핵심이고 이건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다" (차은택)"그럼 차감독님이 하세요. 도무지 한국말이 안 되는 얘기네요. 뽀로로가 뭡니까 뽀로로가!!!" (여명숙)"이거 이대로 가면 문화부판 4대강 게이트 수준입니다. 청문회 나랑 같이 갈꺼 아니면 그런말 하지 마세요. 그냥 본인이 하시던지. 난 이렇게 불투명한 일 못해요" (여명숙)"이제 온지 겨우 2주밖에 안되지 않았나? 좀 더 파악하고 차 감독한테 도움을 받아서 일하세요" (김종덕·김상률)◇ "문체부 내 차은택 라인은 이진식·최보근·김경화"
차은택.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비리카르텔'로 엮인 차은택·김종덕·김상률과 여명숙 사이의 3 대 1 싸움이었다. 하지만, 여 전 단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4월 27일 문화체육부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문화창조융합본부의 '궁(宮)프로젝트' 보고 자리에서도 공세적인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은 자신의 매형인 윤정섭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현 산학협력단장)를 30억 원짜리 대형 프로젝트인 '궁(宮)프로젝트' 총괄감독 자리에 앉혔다.
이후 윤 전 교수에게 이권을 몰아주려한 정황이 드러나 내부에서도 '특혜시비' 논란이 일었다.
여 전 단장은 이 자리에서 사업추진 절차와 예산집행의 불투명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종덕 전 장관은 처음에는 '잘된 기획이니 그대로 집행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투명성 논쟁이 일자 결국 재검토를 지시했다.
윤 전 교수도 이날 회의에 참석했으나 아무런 반론도 펴지 못했다.
여 전 단장의 강한 문제제기로 윤 전 교수는 결국 6월 초 이 프로젝트에서 빠졌고 사업권은 '유니원커뮤니케이션즈'가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