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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스스로 주체"…'박근혜 퇴진' 집회는 '촛불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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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진화하며 퍼져…정국 가르는 '대사건' 기록될 듯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1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12일 서울 광화문과 서울 시청 앞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는 역대 촛불 집회와 뚜렷이 구분되는 '대사건'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하야' 라는 큰 의제를 시민들이 스스로 발제한 데다, 참가 인원은 100만 명(주최 측 추산)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별다른 충돌 없이 비폭력 집회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 역대 최대 규모 집회…100만 시민 혁명

사전 집회부터 광화문 광장에 인파가 가득차 역대 최대규모를 예고했던 이 날 집회는 본 집회가 진행된 지 3시간 반쯤 지나 참석 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로써 이 날 집회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70만명을 훌쩍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 집회가 됐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백남기투쟁본부, 민주노총 등 1503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7시 30분쯤 광화문 일대에 100만 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면서 "부산 대구 등 전국 주요 도시에도 수만 명이 운집했다"고 밝혔다.

경찰 추산으로는 26만 명가량이다.

종전 최대 기록이었던 2008년 6월 10일 촛불집회 때의 기록은 주최 측 추산 70만 명(경찰추산 8만 명)이었다. 주최측은 물론 경찰 추산 역시 역대 최대치에 이른 것.

이번 집회는 시간이 가면서 진화하고 있다.

중·고등학생부터 유모차를 끈 주부, 젊은 연인 등이 먼저 움직였고, 운동가와 정치가를 불러냈다.

과거 6월 항쟁 때는 시위대가 시민을 향해 동참하라고 요구했던 것과 다른 점이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만 하다.

이는 과거 촛불 집회가 꾸준히 진화해 온 결과로 보인다.

◇ 시민이 중심이된 21세기 촛불 집회는 '진화중'

2000년 대들어 첫 촛불 집회는 '효순-미선 촛불집회'다.

2002년 6월 13일,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환호하고 있는 사이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 심미선 양이 미 육군 제2보병사단의 M60 AVLM에 깔려 현장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한 것이 원인이다.

당시 사고 차량 운전병이 무죄판결을 받자 시민들은 진상 규명과 함께 두 학생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었다. 네티즌들은 검은 리본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집회는 반미 시위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에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있다.

2004년 3월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이에 반발하는 촛불집회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는 촛불집회가 과거 추모의 성격에서 사회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디딤돌이 됐다.

당시 촛불 민심은 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참패라는 쓴맛을 남겼다.

2008년엔 광우병 촛불집회가 있다.

2008년 5월 2일 10대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약 2개월간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7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경찰이 차벽을 두텁게 쌓자 '명박산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가장 최근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집회가 있다.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한 집회 열기는 뜨거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시민들은 사회적 현안이 생길 때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민심을 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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