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입해서 좋아지면 괜찮은데, 오히려 개입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빠진 것을 정부실패라고 합니다. 최근 2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달았어요. 예측 가능하지 않은 정책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쏟아진 탓이에요."(고려대 경제학과 강성진 교수)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금융당국의 기습적인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조치와 최근 국토교통부가 검토중인 분양권 전매 제한과 같은 부동산 규제 강화 등으로 내 집마련을 계획하던 서민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어서다.
◇ 금요일 밤의 기습공지에 서민들은 한숨만
(사진='한국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 캡처)
지난 14일 밤 10시쯤 금융당국은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일환으로 내놓은 정책금융상품인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에 대한 심사 요건과 대출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보금자리론은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만든 정책금융 상품으로 10~30년간 원리금을 나눠서 갚도록 설계한 장기 주택담보대출이다. 무주택자나 주택 취득 30년 이내인 1주택자 등이 대상이며, 대출 금리는 현재 연 2.5%(10년)~2.75%(30년)로 시중은행보다 낮은 편이다.
보금자리론은 주택가격이 9억 원 이하면 소득 제한 없이 최대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누구라도 집을 사고자 결정했다면 장기 저금리로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선택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주택 가격 상한선은 9억 원에서 3억 원으로 급강했고, 대출 한도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거기에 이전에 없던 소득 심사 기준도 대폭 강화됐다. 부부합산 6000만 원 이하 소득자만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년 전 정부가 "돈 빌려 집 사라"고 등 떠밀기 시작하며 집값은 고공 상승한 탓에 수도권에서는 소형 아파트 말고는 사실상 구매가 불가능하다. 부부합산 6000만 원 이하라는 부분도 맞벌이 부부가 직면한 현실과는 동떨어진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정책을 펼치면서 '육아휴직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현실'을 방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순된 양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금자리론 판매 중단의 여파로 당장 11월과 12월에 내집 마련을 계획했던 구매자들은 집 구매 시기를 미뤄야 하는 상황"이라며 "부동산시장의 연착륙도 필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주택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를 위한 대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왜곡된 경제관, '부동산 경기 부양 = 경기 활성화'사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부는 대대적으로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펼쳤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를 기습적으로 완화했고, 이후 부동산 시장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장단을 맞추듯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떨어뜨리며 서민들의 빚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무장해제 시켰다.
돈을 많이, 그리고 싸게 빌려 줄테니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 완화 + 기준금리 인하’라는 정책조합으로 완성된 것이다.
당연히 이후 가계부채는 무섭게 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와 한은의 입장은 일관됐다. "관리 가능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금융권과 전문가들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한은 내부에서뿐 아니라 금융권, 심지어 금융 당국 내부에서는 "가계부채 대책이 없다. 이렇게 하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국가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이 없어요. 일관되지도 않고 '부동산 살리기=경제 살리기'라는 왜곡된 관점이 결국 가계부채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놨다"며 토로했다.
◇ 우려는 현실로…"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은 어디로"2년만에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음에도 가계부채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폭증했다.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 뇌관이 될 것이란 공포감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2013년 말과 비교하면 가계부채는 지난 6월 말 1257조2776억 원으로 23.4%, 238조 원 늘었다. 2013년 말 160.2%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올해 6월 말 173.6%로 폭증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면서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했던 공언은 허언이 된 것이다. 우리 경제 위기의 '뇌관'인 가계 부채를 줄여 경제를 균형감 있게 운용하겠다면서 구체적인 목표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5%포인트 낮추겠다고 제시했지만, 이는 허공속의 외침에 그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제로 시장에서는 가계 빚에 의존한 부동산 부양정책이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혼돈의 연속, 그런데도 "정책은 없다"2년 동안 정치적인 논리로 "관리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정부는 20대 국회가 야대여소 국회로 탈바꿈하자, 대응 논리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인 셈법에 의해 정책을 그때 그때 입맛에 맞게 짜맞추기 식으로 맞추다보니 새로운 논리를 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정부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조금 진전된 주택공급 물량 축소를 주 내용으로 한 가계부채 대책을 지난 8월25일 내놨다. 그것이 바로 일명 '8·25가계부채 대책'이다.
하지만 이 때에도 직접적인 분양권 전매제한, 집단대출 직접 규제 등이 빠진 대책을 내놔 "알멩이는 쏙 빠진 대책"이란 비판을 면치 못했다. 변죽만 울리는 간접적인 규제로 오히려 시장에서는 역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역시나 시장에서는 이 정책을 '집값 떠받치기' 대책으로 해석했고, 정부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집값이 더 뛰기 시작했다.
여론의 비판이 이어졌고, 금융위는 2주를 못 버티고 '조기 시행'을 골자로 한 '9·5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내놨다.
땜빵식으로 이뤄진 정부의 정책에 시장은 냉소적인 분위기였고, 결국 금융당국은 서민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정책금융상품인 '보금자리론'의 판매 중단이란 강수를 뒀다. 국토부도 전매제한, DTI 강화 등의 직접적인 규제 카드를 검토 중이다.
강성진 교수는 "지금의 가계부채는 우리나라 경제의 큰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정부가 유도한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최근 2년간 사례는 교과서에 실릴만한 대표적인 '정부실패'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도 이같은 예측할 수 없는 정부의 정책을 바라보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번 정책의 핵심은 부동산 시장 정책의 연착륙인데, 착륙 후에 발생할 우려가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이니 착륙 자체를 두려워해 시기를 놓치고 떠받치는 정책만 쓴 것이 문제"라며 "벌써 했어야 할 정책을 미루고 미루다 쓴 셈이니 집값은 이미 오를 대로 올라 투기는 막지 못했고, 결국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당국이 가계부채 문제를 인제야 심각하게 보는 것 같다"며 "본인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이번 정부의 개입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인지 그럼에도 올라갈 것인가는 물음표"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