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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김대중 TF 만들던 국정원 '20년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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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 국정원 전문기자 김당
- 최초 안기부 조직표 공개 장본인
- 대북공작원·내부고발자가 취재원
- 국정원 개혁 실패…김종필도 후회
- 댓글조작·간첩조작…'도로 안기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6년 10월 5일 (수) 오후 6시 30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당 기자

◇ 정관용> 국가정보원 흔히 국정원이라고 합니다.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기관,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고. 정권 안보를 위해 음험한 공작을 수행하는 탈법적 기관, 이런 시각도 있고요. 지금 국정원의 모습 어떤 걸까. <시크릿파일 국정원="">이라는 아주 두툼한 책을 써내신 분이 있습니다. 20년 탐사 취재의 결정판이라고 하는데요. 오마이뉴스 전 편집국장 김당 기자를 오늘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당> 안녕하세요.

◇ 정관용> 20년 탐사 취재의 결정판.

◆ 김당> 그런 과분한 추천서를 써주셨더군요.

◇ 정관용> 1995년부터 안기부 시절부터 여기에 관심이 많으셨죠?

◆ 김당> 95년도. 그러니까 안기부가 남산 시대를 마감하고 내곡동으로 이전을 했거든요. 이른바 인텔리전스 빌딩이라고 해서 이전을 했는데 그때부터 제가 관심을 가졌어요.

◇ 정관용> 그래서 국정원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특종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 김당> 97년도 대선을 앞두고 그때 안기부 북풍사건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오익제 씨가 8월 달에 망명하고 나서 계속 북쪽에서 편지라든가 비디오테이프라든가 이런 걸 공개함으로써 김대중 후보의 색깔공세 이런 것들이 있었죠. 그런데 제가 취재를 통해서 확보해 놓은 그런 취재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일주일 단위로 예보 비슷하게 보도를 했어요. 그러니까 편지가 곧 터질 것 같다. 또 비디오테이프가 아마 터질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추적보도를 했었기 때문에.

◇ 정관용> 그러면 정말 일주일 후에 그게 편지가 터지고 비디오테이프가 터지고?

◆ 김당> 그래서 그거 때문에 이른바 주류 언론 기자들이 도대체 김당이 누구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리고 이제 98년 2월 달에 그러니까 김대중 당선인 시절이죠, 그 당시는. 그때 이제 그동안 취재해 온 것을 토대로 해서 이른바 안기부 조직표라는 것을 그때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공개를 했죠.

김당 기자

 


◇ 정관용> 그 취재원들이 누구입니까?

◆ 김당> 북풍과 관련해서 소스를 줬던 취재원은 흑금성 공작원이라고 그 당시에는 저한테 딥스로트 역할을 해 줬었죠. 그밖에는 일부 간부들 그다음에 직원들인데. 그분들은 공개되지 않은 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성함을 말씀드릴 수 없고요.

◇ 정관용> 그러니까 재직하고 있으면서 자기네 조직이 하고 있는 일에 문제를 느끼니까 기자한테 말한 거 아니겠어요?

◆ 김당> 그랬죠.

◇ 정관용> 그런 분들이 있기는 있었군요, 그러니까.

◆ 김당> 있었습니다.

◇ 정관용> 일단 넘기다 보니까 제일 눈에 띄는 게 국정원의 이상은 CIA, 현실은 KGB. 무슨 뜻이에요?

◆ 김당> 창설 당시에 중앙정보부를 창설 당시에 김종필 전 총리가 그때 5.16 쿠데타 이후에 창설하지 않았습니까?

◇ 정관용> 그랬죠.

◆ 김당> 그래서 태생부터가 반혁명세력 자기들 명분은 반혁명세력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해서 만든 정보기구인데.

◇ 정관용> KGB적 성격이 강한 거네요.

◆ 김당> 수사권까지 가졌기 때문에 그런 거죠. 보통 일반 순수한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안 가지고 있는데 CIA나 모사드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그런데 순수 정보기관으로 출발하지 않고 수사권까지 가진 그런 아주 막강한 기관으로 출범을 했었기 때문에 원래 이상은 그러니까 그 CIA를 모델로 했는데 실제로는 KGB처럼 운영이 됐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작년인가 김종필 전 총리가 회고록에서 그 얘기를 썼더라고요. 처음에는 자기도 CIA처럼 하려고 했는데 반혁명세력에 대한 그런 감시와 견제, 이런 거 때문에 수사권을 한시적으로 가지려고 했다. 그런데 저희가 이제 그 수사권을 검경에 넘겨주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걸 못하고 나왔다. 그렇다 보니까 그게 지금 40~50년이 흘렀다 이런 후회를 하더라고요.

◇ 정관용> 지금까지도 수사권을 갖고 있죠?

◆ 김당> 가지고 있습니다, 대공수사권.

◇ 정관용> 이름만 중앙정보부, 그게 영어로 하면 CIA 아니겠습니까?

◆ 김당> KCIA라고 했죠, 예전에는.

◇ 정관용> 이름만 그렇지 사실 김종필 전 총리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처음부터 반혁명세력, 저걸 위해서 만든 거 아닙니까?

◆ 김당> 그랬죠. 그래서 그렇게 해서 만들었는데 다만 수사권을 검경이 가지고 있는 데도 추가로 정보기관이 갖고 있는 것, 이 자체가 사실 불법성을 일정 부분 내포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그 역사 속에서 제일 힘이 셌던 때는 언제라고 봅니까? 흔히들 안기부 시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세요?

◆ 김당> 저희가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지 70년대 중정 시절이 가장 셌다고 봐야죠. 잘 아시는 일입니다만 여당의 중진 국회의원을 중정으로 불러서 코털을 뽑는 고문까지 하고 그렇지 않았습니까? 실세 여당 국회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기부 시절도 물론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서 통제를 했습니다마는 기본적으로 6공화국은 검찰의 힘이 워낙 셌기 때문에 그전만큼은 못했다고 봐야죠.

1963년 1월 7일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본연의 임무는 남북관계가 있으니까 대북첩보 그다음에 국제정보. 이런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고. 우리가 지금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권안보 차원의 내부 정치적인 어떤 활동. 이게 처음 시작할 때는 어디가 몇 프로, 어디가 몇 프로였는데 이게 어떻게 변했다. 혹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나요?

◆ 김당> 양으로 따지면 해외정보가 분량이 많기는 많습니다. 그리고 국내 정보는 반의 반 정도. 결과물로는 그런데, 문제는 이제...

◇ 정관용> 그건 요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요즘. 과거 중정 시절은요? 또 안기부 시절은?

◆ 김당> 중정 시절의 문건은 제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다만 중정부터 안기부 시절까지는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대통령의 눈과 귀라는 특성을 가진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수십년간 이른바 ‘반 김대중국’이라는 게 실제로 명칭을 붙인 조직은 없지만 일종의 테스크포스처럼 움직였던 조직들이 늘 있었고.

◇ 정관용> 국 단위로?

◆ 김당> 단 단위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국정원 특히 국내 파트의 한 70% 업무는 ‘반 김대중국’이라고 할 정도로 그런 쪽에 정보 영역 역량을 쏟아 붓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런 국민들의 원성을 받고 이러한 것들이 많았죠.

◇ 정관용> 그러니까 실증적으로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과거에는 국내 정치 활동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고.

◆ 김당> 힘도 셌죠.

◇ 정관용> 점점 줄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 김당> 그렇죠. 그리고 형식적으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러니까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차장 단위를 1차장 또 2차장 순위를 바꿨어요. 그래서 국내 담당 차장이 원래 1차장이었는데.

◇ 정관용> 1이었는데 2로?

◆ 김당> 2로 바뀌고. 그다음에 해외가 1차장이 된 거죠. 1차의 1부장이 선임국장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조직이라든가 유사시 거기서 나타났죠.

◇ 정관용> 바로 그 김대중 집권 시절에 이름을 국정원으로 바꾼 거고.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도 개혁을 시도했고요. 그런데 김당 기자는 그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시죠? 왜 그렇습니까?

◆ 김당> 일단 대북송금 특검 관련해서 이게 일종의 정상회담도 정보기관의 국가공작이거든요. 그래서 정보기관이 성공적인 공작 끝에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만들어냈는데 그 회담을 민족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일종의 정파적인 문제라든가 혹은 지역적인 갈등, 이런 걸로 판단했던 분들이 그 당시에 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 정관용> 노무현 정부 시절에.

◆ 김당> 그래서 이른바 사법적인 잣대를 국가공작에 들이댔던 거고. 그다음에 이어서 대북송금 특검을 하다 보니까 자연히 국가의 관계도 소원해졌죠. 그러다 보니까 2차 정상회담도 거의 임기 말에 추진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추진 동력을 잃었던 거죠.

그리고 그 중간에 이른바 X파일 수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X파일 수사는 도청 문건이 드러났기 때문에 분명히 저는 그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사법처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인데. 문제는 도청을 수사하다 보니까 감청사건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도청과 감청은 엄연히 다르거든요. 도청은 그야말로.

 


◇ 정관용> 몰래하는 거고.

◆ 김당> 몰래하는 거고.

◇ 정관용> 감청은 영장 받아서 하는 거고.

◆ 김당> 영장 받아서 하는 거죠. 그런데 영장을 받아서 감청을 하는 과정에서 편의적으로 정치인이라든가 또 경제인이 됐건 간에 일부 인사들을 끼워넣기 식으로 감청을 했어요. 그것까지 드러나다 보니까 거기까지 칼을 들이댄 거죠. 그런데 전 세계 정보기관 역사에서 정보기관의 감청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해서 사법처리한 역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깊이 들어간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 점들이 저는 깔끔한 개혁을 하지 못하게 된.

◇ 정관용> 너무 깊이 들어가니까 그 조직 내에서 반발이 나왔다, 그래서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다 이건가요?

◆ 김당> 위축된 거죠, 그 조직 자체가.

◇ 정관용> 조직 자체가 위축돼서.

◆ 김당> 위축되고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 거죠.

◇ 정관용> 그리고 이명박 정부, 현 박근혜 정부 어떻게 변화해 오고 있습니까?

◆ 김당> 제가 이 책의 도입부를 지금 국정원의 시계는 몇 시인가, 어디쯤인가라는 콘셉트로 시작을 했는데요. 그러면서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그다음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교를 했거든요. 그 두 분이 각각 안기부와 국정원장 중에서 최장수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또 유일하게 개인비리와 정치개입 그 두 가지 사건으로 사법 처리된 분들이거든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관리했던 대선. 그러니까 16대 대선과 17대 대선이죠. 그때는 정치적인 시비라든가 정치개입 시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MB 정부 들어서 그러니까 원세훈 원장 시절에 이른바 댓글사건. 그래서 권영해 부장 시절에는 그때만 해도 PC통신 시절이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건 자체가 지금처럼 크게 비화되지 않았지만 그때도 국내 파트 상당수 직원들을 1인당 100만원씩 줘서 이른바 ‘귀향 구전홍보단’을 운영했거든요.

재미있는 건 또 전라도 출신 국내정보 직원들한테는 파견을 안 했어요. 전라도 지역에 가서 홍보활동을 하더라도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전라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 출신 국정원 직원들한테는 100만원씩 주고 이른바 ‘귀향 구전홍보활동’을 하게 했던 거죠. 그런데 이제 MB 정부 들어서 원세훈 시절에 했던 게 사실상 사이버 말하자면 홍보활동 아니겠습니까?

◇ 정관용> 귀향 홍보가 아니라 사이버로 전국 단위로.

◆ 김당> 그런데 그래서 사실상 과거로 회귀했다는 거죠,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래서 저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지금 국정원의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보는 거죠.

◇ 정관용> 그리고 간첩 조작 이런 것도 있었고.

◆ 김당> 그렇습니다. 간첩 조작 사건은 제 개인적으로는 제가 오마이뉴스 편집주간 부사장 시절에 터진 사건이고. 그러니까 현장 활동에서 떠나 있었습니다마는 돌이켜보면 별 의미를 하지 않았었거든요, 그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동아일보가 그 사건을 처음 아마 국정원발로 보도를 했었는데 그 사건에 대한 어떤 의심이라든가 이런 걸 하지 않았었죠.

간첩조작사건 다룬 영화 '자백' 스틸컷 (사진=시네마달 제공)

 


◇ 정관용> 진짜 간첩이겠거니.

◆ 김당> 설마 이런 세상에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가 있나?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도 건방진 표현일 수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전문가의 함정에 빠졌다고 그럴까요. 내가 아는 국정원이 이렇게까지는 아닌데, 라고 했었거든요.

◇ 정관용> 그런데 그렇게까지 했군요. 정말 과거로 간 거군요.

◆ 김당> 정말 과거로 간 거고.

◇ 정관용> 지금 국정원의 총 직원이 몇 명, 이런 거 다 공개됩니까? 안 됩니까?

◆ 김당> 지금 법으로 공개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 정관용> 김당 기자는 알아요?

◆ 김당> 제가 책에다 쓴 건 정규직 5000명 이상. 정확한 숫자를 쓴 건 아니고요. 5000명 이상,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쓴다고만 표현을 했죠. 한 7000명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1조 원 이상을 쓰는. 또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정보기구는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김당> 중요한 건 역시 사용권자. 즉 대통령 직속기관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그런 정치적 개입 시비가 없었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시스템이 일단 필요할 것 같고요. 예를 들면 정보기관장에 대한 지금 인사청문회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인준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보기관장에 대해서도 인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고요. 가능하면 임기제를 도입할 수도 있고. 또 추가한다면 이른바 내부고발자 시스템도 도입이 돼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전체적인 중립성이 훨씬 더 강화될 걸로 봅니다.

◇ 정관용> 아직도 개혁의 첫 단추도 제대로 안 껴진 상태다.

◆ 김당> 그렇습니다.

◇ 정관용> 바로 엊그제인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사저 문제를 국정원 외근 직원이 알아보고 있다 그렇게 했는데 우리가 추적하니까 그 직원을 내근 부서로 좌천시키고 우리한테 그건 앞으로 안 한다고 답이 왔다 이렇게까지 말했어요. 구체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마는. 이런 일도 합니까?

◆ 김당>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퇴임을 앞두고 대통령은 몰랐던 사안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권양숙 여사가 너무 안일한 판단을 했다고 보는데. 어쨌든 자식의 일이기 때문에 김만복 원장이 미국에 있는 국정원 직원들을 동원해서 자녀들의 주택을 알선해 줬다든가 이런 사례가 사실은 있었죠.

◇ 정관용> 그래요?

◆ 김당> 그리고 이제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경호업무를 해야 되기 때문에 경호실과 국정원 사이의 업무 협조 차원에서 얘기가 분명히 오간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를테면 부동산이라든가 이런 걸 안에서 떼어볼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국정원의 업무 협조를 받을 수가 있는 거죠.

◇ 정관용> 수고 많으셨고요.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당> 감사합니다.

◇ 정관용> 김당 기자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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