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서울역과 고층빌딩 숲을 지나 5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이곳은 1200여 세대가 머물고 있는 서울 최대 규모의 쪽방촌이다.
쪽방촌 입구에 들어서자 20여 명의 주민들이 인근 공원에 나와 그늘 밑에서 무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60대 노인들이었다.
집 밖을 나와 공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주민들. (사진=송영훈 기자)
◇ 실내온도가 33도…정부 냉방비 지원은 0원
정부는 지난해부터 에너지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전기, 도시가스, 등유, 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가구 규모에 따라 지급액을 달리하고 있는데 1인가구는 8만 1000원, 2인가구는 10만 2천원 상당의 이용권을 지급한다.
하지만 문제는 에너지바우처가 동절기 난방에만 이용할 수 있게 돼있어 쪽방촌 주민과 같은 에너지 빈곤층은 여름 폭염 속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서울에 폭염이 맹위를 떨친 지난 4일, 취재진이 찾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 대부분은 집밖을 나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돈의동 한 쪽방의 실내온도는 33도로 실내생활이 불가능한 온도였다.
폭염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4일 쪽방의 온도. (사진=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제공)
공원에서 만난 이 모(67) 씨는 "수급비로 66만7000원을 받는데 방세 24만 원 빼고 공과금을 내면 한 달에 20만 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한다"며 "방세가 오를까봐 선풍기도 마음껏 틀지 못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쪽방은 방세에 전기료가 포함돼있어 전기사용량이 많아지면 방세도 자연스레 오르게 된다.
연일 최고온도를 갱신하고 있는 올 여름이지만 정부의 냉방비 지원금은 0원.
이에 대해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바우처 제도가 애초 난방비 지원개념이었다"며 "여름철 냉방비 지원도 향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책정된 예산도 난방비 지원하는 것뿐이라 당장은 지원이 어렵다"고 밝혔다.
불볕더위에도 선풍기도 못 돌리는 쪽방촌 사람들. (사진=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제공)
◇ 선풍기 돌려도 뜨거운 바람만 쌩쌩"쪽방은 한 평 남짓에 창문도 없는 방이라서 이런 폭염에는 안에서 못 지내…."달궈질 대로 달궈진 쪽방에서 선풍기를 돌렸지만 뜨거운 바람만 느껴졌다.
협소한 공간에 냉장고도 함께 있어 냉장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도 만만치 않다.
이 씨는 "자신은 그나마 창문이 있는 24만 원짜리 방에 살고 있어 나은 편"이라며 "일부 주민들은 선풍기도 없이 인근 쉼터에서 제공하는 차가운 생수로만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너지시민연대가 에너지빈곤층을 상대로 조사한 '2016 여름철 에너지빈곤층 실태파악'에 따르면 응답자의 10%는 선풍기나 에어컨 등 냉방기구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더 나아가 응답자의 49%는 냉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지러움 및 두통을 경험했으며 호흡곤란(11%), 구토(5%), 실신(1%) 등을 경험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연이은 폭염으로 인해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이 우려되자 이달 4일부터 6일까지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체크 및 여름나기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안병옥 기후변화연구소 소장은 "에너지바우처제도를 난방만이 아니라 냉방으로 확대하는 방법을 추진해야한다"며 "선풍기를 지급하고 냉조끼 등 냉방물품 지급을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쪽방촌 주민들이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취사도 같이하고 있어 실내온도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안전문제도 우려된다"며 "공동취사장을 쪽방촌 주변에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